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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Jan 23. 2024

나도 산부인과에서 웃어보고 싶었다

애 낳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우리 부부의 첫 아이는 심장박동이 제대로 뛰지 않았다. 완전히 멈춘 건 아니었지만, 거의 가망이 없다고 봐야 했다. 영양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는지 아기집의 난황 크기도 비이상적으로 컸다. 그 상태로 있기엔 아내가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늦기 전에 선택을 해야만 했다. 결국 아내는 소파술을 받기로 했고, 우리 부부는 남일만 같았던 유산이라는 쓰디쓴 경험을 하게 되었다. 


처음 임신테스트기에 빨간 두 줄을 확인할 때까지는 좋았었다. 하지만 그 후로는 산 넘어 산이었다. 초음파 검사를 처음 받으러 갔을 땐 아기집은 보였지만 난황이 보이지 않았고, 그다음 주는 난황은 보였지만 크기가 너무 커서 문제였고, 그다음 주는 심장은 뛰는데 너무 약하게 뛰어서 위험했다. 그 과정 속에서 난 '애기 낳는 게 정말 보통 일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난생 처음으로 하게 됐다. 


만약 산부인과를 옮기지 않았다면 아내는 좀 더 위험했을지도 몰랐다. 


처음 방문한 산부인과에서 만난 의사 선생님은 답을 시원하게 주는 편이 아니었다. 초음파검사 비용이 워낙 비싸서 매주 받으러 갈 때마다 적잖이 부담스럽기도 했다. 더군다나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만 할 것 같은 직감이 드는데도 불구하고 의사는 별다른 말은 않고 자꾸 다음 주에 또 오라는 말만 했다. 그분의 우유부단한 태도에 질린 나머지, 우리 부부는 다른 산부인과를 찾게 되었다. 


두 번째로 찾아간 산부인과는 집에서 걸어서도 갈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의사 선생님은 아내의 상태를 보자마자 다음과 같은 말을 해주었다. 


"아기가 살 수 있는 가망은 거의 없어요. 심장박동이 너무 약합니다. 이대로 좀 더 놔두기엔 산모가 위험해질 수도 있어요. 혹시나 심장이 정상적으로 다시 뛴다고 해도 정상적으로 자란다는 보장을 할 수도 없는 상태입니다." 


초면에 바로 건네기 쉽지 않은 말이었을 텐데, 의사 선생님은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우리에게 일러주었다. 그러면서 되도록이면 선택을 빨리 하는 게 좋다며, 당장 오늘이라도 결정을 하는 게 좋다는 말도 덧붙였다. 좋은 말을 듣게 된 건 아니지만, 의사 선생님의 솔직한 말 덕분에 속이 다 후련했다. 이때 난, 산부인과를 제대로 찾아가는 게 얼마나 중요한 건지도 알게 되었다. 


가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아이를 낳는 상황에서 산모를 선택할지 아이를 선택할지 결정해야 하는 위급한 장면이 나온다. 난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혼자 속으로 생각하곤 했었다. 


'내가 만약 저런 상황이라면 고민도 하지 않고 무조건 아내부터 살리고 보겠다' 


그런 나였기에 처음 다녔던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의 두리뭉실한 말들이 답답했고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아내가 조금이라도 위험하다면 고민할 것도 없이 아내의 건강을 위한 방향으로 결정을 내리고 싶었다. 그런 나의 바람과는 달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판단할 만한 거리는 제공도 하지 않고, 자꾸 병원만 다시 오라고 하는 그 선생님을 계속 찾았다면 어땠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다행히 그 덕에 두 번째 산부인과에서 좋은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지만 말이다.




그로부터 반년 하고도 약간의 세월이 더 흘렀고, 아내가 두 번째 임신을 했다. 임신테스트기의 두 줄을 처음 목격했을 땐 기쁜 마음보다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더 컸다. '이번에도 난황이 보이지 않으면 어떡하지', '이번에도 심장박동이 제대로 뛰지 않으면 어떡하지'와 같은 불길한 생각부터 들었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크게 신경이 쓰였던 건 아내의 멘탈이었다. 아내는 내가 아니기에 어떤 심정인지 정확히 알 수도 없을뿐더러, 임신과 관련된 어떤 상황에서도 나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 할 것 같진 않았다. 실제로 배 속에 아기가 들어서는 건 아내의 몸이니까 더 그랬다. 만약 이번에도 안 좋은 일이 일어나면 아내의 몸과 더불어 정신건강까지 안 좋아지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컸다.


초조한 마음을 안고 우리 부부는 이전에 유산 수술을 받았던 산부인과에 오랜만에 다시 찾아갔다. 접수를 하고 소파에 앉아 아내의 손을 잡고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우리 앞에 먼저 온 여성분이 진료실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우린 다음 차례를 기다렸다.


진료실 안에서부터 커다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방금 전 들어갔던 여성분의 웃음소리인 것 같았다. 무슨 일로 그리 호탕하게 웃었던 건지는 알 길이 없었다. 단지 부러웠다. 대기실까지 퍼지는 밝은 웃음소리를 듣자마자 정말 부럽다고 생각했다. 나도 산부인과에서 웃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좋게 생각하고는 싶었지만, 아무래도 이전의 안 좋은 일이 자꾸 떠오르는 건 막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평소엔 그냥저냥 살 만했는데, 이전에 슬픈 일이 고스란히 떠오르는 산부인과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자니 이전 생각이 날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아내의 이름이 호명되었고, 난 아내와 함께 진료실로 걸어 들어갔다. 의사는 단번에 우리 부부를 알아봤다. 반가움과 걱정스러움이 동시에 엿보이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참 감사하게도 그분은 우리만큼이나 혹은 우리 이상으로 걱정을 하는 듯했다. 남일 같지 않아 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위안이 되었다.


그간의 안녕과 약간의 담소 그리고 몸 상태에 관한 얘기를 나눈 후 아내는 초음파 검사를 받으러 들어갔다. 곧이어 남편분도 들어오라는 말을 듣고서는 나도 초음파실로 들어갔다.




다행이었다.


이번엔 착상도 안전한 곳에 잘 되고, 난황도 선명하게 보이고, 심장박동 수도 안정적이었다. 그제야 난 처음으로 산부인과에서 환한 미소를 얼굴에 띄울 수 있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우리보다 앞서 들어가 진료실 안에서 호탕하게 웃으시던 여성분이 정말 부러웠었다. 하지만 태아의 건강한 상태를 확인함과 동시에 부러운 마음이 싹 가시면서 드디어 산부인과에서 처음으로 웃어보게 되었다.


기쁜 마음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차오름이 느껴졌다. 의사 선생님은 단지 우리에게 자신이 본 걸 말해준 것뿐인데, 그저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할 따름이었다. 명분 같은 건 필요 없었다.


흔히 드라마에서 임신 통보를 듣고서 의사한테 감사하다며 허리를 숙이면서까지 감사해하는 장면을 볼 때면 억지스러워서 도통 공감하기 힘들었는데, 그런 심정이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건강하게만 자라달라는 마음이 내 안에서도 싹트기 시작했다.


사실 난 내가 웃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큰 문제없이 자라고 있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들으며 '다행이네요', '신기하네요'라고 말한 기억밖에 없었다. 그런 내가 배시시 웃어 보였다는 건 아내를 통해 전해 들었다. 정상적인 심장박동 수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 나를 아내가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나저나 의사 선생님은 초음파 검사를 하는 내내 우리 부부보다 더 초조하고 불안해하셨었다. 차마 약간의 이상증세라도 보일까 봐, 초음파 검사 화면을 확대하기를 망설이시던 그 인상적인 모습은 쉽게 잊을 수 없을 것만 같다.


생판 모르는 남일인데도 불구하고 어찌 그리 내 일처럼 귀하게 대할 수 있는 건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여러모로 자기 일을 사랑하고, 업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게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여하튼 첫 아이에 비하면, 두 번째 아이는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그럼에도 안도감과 희열보다는, 이전에 느꼈던 그 초조함과 긴장감이 날 더 크게 머금어 다음과 같은 생각을 떠올리게 했지만 말이다.


또 시작이구나.


이번엔 부디 건강하게 태어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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