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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Nov 22. 2023

이번 생에 워라밸 챙겨 먹긴 글렀다

좋아하는 일이 생기면 한쪽으로 쏠릴 수밖에


어릴 때는 잘 들어본 적 없었던 것 같은데, 사회생활 하면서부터 점점 들려왔던 게 '워라밸'이라는 말이었다. 일과 삶의 균형, 어감도 좋고 뜻도 좋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워라밸을 원한다. 악착같이 돈을 많이 버는 사람도 있지만, 대개는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쉬는 삶을 원하는 추세인 듯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쥐꼬리 만한 월급 모아봤자 현실적으로 크게 이룰 수 있는 건 거의 없고, 더군다나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은 요즘엔 모르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나도 워라밸을 원했다. 가뜩이나 물욕도 없던 나는 애초에 많은 돈이 필요 없었고, 회사에서 하는 일에 자부심이나 남다른 의미 같은 건 전혀 느끼지 못했다. 최대한 일을 덜 하고 싶었다. 서둘러 퇴근하고 편히 쉬는 삶을 원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요즘 난 새벽밤낮 가릴 것 없이 일주일 내내 일한다. 월화수목금토일, 글쓰기를 쉬는 날이 없다. 글쓰기는 마치 삼시세끼를 먹듯 내겐 당연한 일이 되었다. 날마다 어떤 대가가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글을 쓸 때마다 수월하게 맘 편히 잘 써지는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매일 뭔가를 자꾸만 끄적이게 된다. 그냥 좋다. 쓰는 게.


가끔 성공한 사람들의 영상을 볼 때면 그들은 쉬지 않고 일한다고 말한다. '주말은 쉬는 날'이라는 개념이 그들에게 없어 보였다. 예전엔 그런 사람들의 인생을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이젠 그들의 빈틈없는 빡빡한 삶이 이제서야 납득이 되는듯한 기분이 든다. 평일 주말 밤낮 가리지 않고 글만 생각하는 날 떠올리면 왠지 그들과 비슷한 궤도에 진입한 것 같기도 하다.




하루종일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건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글쓰기가 좋아서. 글을 쓰는 행위 자체를 좋아하지 않으면 새벽에 일찍 일어나면 글부터 쓰고, 직장에서 일하다가 틈이 날 때면 또 글을 쓰고, 것도 모자라 퇴근해서까지도 글을 쓰면서 하루를 채우는 삶을 살아가는 건 불가능하다.


우연히 발견한 글쓰기이지만, 인생의 과업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난 글쓰기를 좋아한다. 이유를 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만큼 내 생각을 타이핑하는 게 좋다. 다만 손글씨로 적는 건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쓰는 것도 귀찮고, 필체가 자꾸만 신경 쓰여서 마음을 꺼내는 과정에 집중하기 어렵다. 난 속도감 있게 타이핑하는 느낌이 더 좋다.


두 번째는 쓰고 싶은 글이 많아서. 가끔 사람들에게 '무슨 글을 쓰냐', '글감은 어디서 얻냐'라는 질문을 받는다. 그때마다 난 속 시원하게 대답하지 못한다.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말해버리면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난 그냥 쓰고 싶은 게 많다. 그래서 많이 쓰는 것뿐이다. 자꾸 마음 안에서 뭔가가 차오르는데, 그걸 싹 다 텍스트로 뽑아내고 싶은 욕구가 강한 편이다.


이전에 독서한 경험이 쌓이고 쌓여서 그런 걸 수도 있고, 원래부터 사유를 많이 하는 타입이라 그런 걸 수도 있다. 확실한 건 순전히 한 가지 이유만으로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복잡다단한 것들이 얽히고설켜서 지금의 상태에 이르게 된 거라고 생각한다. 어느 경지를 넘어서면 이유 같은 건 그리 중요하지 않게 된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하게 된다. 합리적인 이유보다는 오늘 지금 이 순간에도 쓰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세 번째는 글쓰기 실력이 부족해서. 글쓰기가 재밌는 건 쓰면 쓸수록 조금씩 성장하는 맛을 느낄 수 있단 점이고, 글쓰기가 힘든 건 쓰면 쓸수록 부족함을 느낀다는 점이다. 그래서 계속 쓸 수밖에 없다. 어쩔 땐 전보다 잘 쓴다는 느낌을 받는 반면에 어쩔 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것처럼 엉망인 글을 쓸 때도 있다. 글쓰기는 참 묘한 매력이 있다. 참 힘든데, 힘들수록 더 쓸 수밖에 없게 만든다.




지금은 회사에서 받는 월급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이기에 어쩔 수 없이 출근 전, 퇴근 후의 시간을 활용하여 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훗날 책을 출간하고 글쓰기로 벌어들이는 수입을 통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날이 오게 되면 아마 지금보다 거의 2,3배는 글을 더 많이 쓸 것 같다. 이런 나이기에 워라밸 챙겨 먹긴 글렀다. 나 같은 주인을 만난 죄 없는 내 몸이 불쌍할 따름이다.


'삶의 균형'은 생각과 의지만으로 맞출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생을 살다 보면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보다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매일 다짐한다. 밸런스는 운명에 맡기고 난 그냥 내가 좋아하는 일이나 계속하자고. 그럼 아마 죽기 전에 크게 후회할 일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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