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노을을 바라보다 문득 깨닫게 된 한 가지 사실
난 노을을 좋아한다.
길을 걷다가도, 집에 있다가도, 일을 하다가도 노을빛이 내리쬐면 잠시 멈추게 된다. 그 상태로 노을의 따스한 빛을 머금으려 갖은 애를 써 본다. 태어날 때부터 여지껏 계속 봐왔음에도 노을은 봐도봐도 질리지가 않는다.
한때 일이 내 삶을 갉아먹던 시절, '그럼에도 어떡해서든 버텨야 한다'라는 생각에 묶여 한창 괴롭던 때가 있었다. 그때 날 구해준 건, 가끔 노을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본다.
우연히 산책하던 도중에 갑자기 구름이 걷힌건지, 노을빛이 순식간에 세상을 한아름 품었던 순간이 있었다. 그 중심에 있었던 난, 노을빛이 내린 세상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비로소 나를 옭아매던 집착을 내려놓았다.
덕분에 한길을 고집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었다. 물론 그때 포기하지 않고 계속 했더라면 그 방향도 꽤 괜찮은 결과로 이어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오늘의 나를 돌아보면, 노을의 응원을 힘입어 과감하게 포기할 수 있는 용기를 발휘한 것이 참 잘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노을은 그 특유의 안온한 분위기만으로도 충분히 매력 있지만, 노을하면 떠오르는 개인적인 서사도 노을에 대한 애정을 높이는 데 꽤나 큰 영향을 차지한다. 그렇게 난 노을에 대한 마음이 변함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에 영원한 사랑은 없듯, 노을에 대한 내 마음도 변하게 된 계기를 맞이했다.
여느 때처럼 노을이 내리쬐고 있는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노을만 보고 있으면 온 세상이 느려지는 듯한 특유의 느낌을 한껏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문득 전에 없던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아, 난 노을을 좋아하는 게 아니었구나.
알고 보니, 난 노을을 좋아하는 게 아니었다. 노을은 그 자체만으로는 존재할 수가 없었다. 내 눈에 담기고, 내가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노을풍경은 노을의 모습이 아니라, 노을빛을 머금은 '세상'이었다.
노을이 비치는 하늘,
노을이 비치는 산,
노을이 비치는 건물,
노을이 비치는 나무,
노을이 비치는 사람들.
다시 말해 난 '노을이 비치는 세상'을 좋아했던 것이다.
어른이 되면서 점점 사는 게 힘들어진다고 생각했다.
나름 주변 사람들 보다는 꽤 편안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음에도 여전히 버티는 게 쉽지 않다고 여겨지는 세상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갖은 시련을 안겨주는 세상이 부담스럽고 버거웠다.
하지만 그런 세상이라도 한편으론 마음 깊이 애정하고 있었나 보다.
노을빛이 서린 찬란한 세계가 그렇게도 좋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