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보 Jan 06. 2024

난 내 삶이 그렇게도 좋다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을 떠올리다 보니


'잊을 수 없는 순간'이라는 주제로 문득 글이 쓰고 싶어졌다. 그간 살아온 날들을 떠올리며 여전히 머릿속에 선명히 새겨진 순간들을 몇 개만 적어보려 했다. 그런데 의외로 생각나는 게 많았다.


엄마 가방에서 3만 원 훔쳤다 걸려서 파리채 손잡이로 종아리 불이 나도록 맞았던 것. 그날 밤, 시뻘건 종아리 때문에 엎드려 자고 있던 내게 조용히 다가와 연고를 발라주던 부모님의 손길.


할아버지 돌아가신 날, 괴성에 가까울 만큼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눈물 콧물로 뒤범벅이 된 아버지의 얼굴.


1월 1일 첫눈 내릴 때, 첫사랑에게 고백하고 사귄 날.


서울로 취직하여 날 데려다 주시던 아버지 차 안.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던 길.


얼굴에 흉터가 생긴 날.


아내를 처음 만난 날.


망각회로에 소각되지 않은 지난 세월들을 곱씹다 보니, 우열을 가릴 것 없이 모두 하나같이 소중한 순간들이었다. 당시엔 좋은 일, 나쁜 일에 불과했지만 시간이 흘러 돌아보니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아주 고마운 일들이었다.




난 내 삶이 그렇게도 좋다. 내가 직접 살아온 흔적들이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딱히 부러울 것도 남다를 것도 없는 평범한 일상을 소비하고 있지만 관계없다. 일상은 평범해도 된다. 어차피 내가 특별하니까.


내가 유달리 물욕이 없는 게 어쩌면, 나를 대변하는 세월을 고이 간직한데서 오는 충족감이 욕망의 일렁임을 가라앉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아~

참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인생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고생 전혀 안 한 티가 나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