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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Jan 14. 2024

내겐 3명의 공주가 있다

내가 열심히 살 수밖에 없는 이유


내 인생 최초의 공주는 동생이었다.


세상이 눈에 들어오고 나라는 존재가 서서히 인식될 때쯤 이미 난 나보다 4년 뒤에 태어난 생명을 한없이 사랑하고 있었다.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 보호본능이 일어났고, 떼를 쓰는 모습은 그저 귀여웠다. 가진 것도 없으면서 모든 걸 내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동생을 바라볼 때면 깊은 애정이 차올랐다. 


새벽에 부모님이 부부싸움 하는 소리에 잠에서 깰 때면 두려움과 공포심부터 일어났지만, 그것도 잠시 동생이 그걸 보면 어쩔까 하는 마음과 제발 동생은 잠에서 깨지 않았으면 하는 걱정이 쓰나미처럼 금세 나를 뒤덮었다. 


세상엔 숨바꼭질 말고도 재밌는 게 훨씬 많다는 걸 깨달았음에도 동생이 숨바꼭질을 하고 싶어 하면, 그 어린 나이에 일부러 동생을 못 찾는 척하는 배려심을 발휘했다. 


아직도 내가 못 찾는 시늉을 하던 도중에 이불속에서 잠들어 버린, 한없이 사랑스럽던 그 아이의 새근새근 한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나의 두 번째 공주는 나와 평생 함께 하기로 약속한 지금의 아내다. 


아내는 바깥세상에서 보면 누가 봐도 여왕 같은 사람이다. 언제나 당당하고 성격은 무던하다. 주변 분위기에 쉽게 휘둘리는 편이 아니다. 그만큼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윗사람이나 다수 앞에서도 눈치를 보지 않는다.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땐 겨울왕국에 혼자 사는 여왕처럼 강인한 사람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알면 알수록 공주이고 싶어 하는, 알고 보면 누가 봐도 공주라고 할 만한 사랑꾼이었다. 그런 모습을 나만 알고 있다는 게 마치 특혜처럼 여겨진다. 


특권층이 된 것만 같다.  




도통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니, 더 이상의 공주는 없을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난 세 번째 공주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 공주는 지금 아내의 뱃속에서 세상에 나올 준비를 야무지게 하고 있다.

 

그 아이를 첫 번째, 두 번째 공주를 사랑했던 만큼 사랑할 수 있을지 혹은 그 이상의 특별한 감정을 느낄지는 가늠할 수 없다. 얼마 후면 곧 세 번째 공주를 만난다는 사실 자체도 실감 나지 않는다.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 내 습성으로 인해 별다른 애정이 생기지 않을까 봐 걱정이 되면서도, 그동안 공주들에게 쏟아부었던 메마르지 않는 사랑을 돌이켜 보면 내 오만 장기도 다 빼 줄 만큼이나 보살필 것 같긴 하다.

 

그런 내 미래가 어느 정도 예상이 되는지 아내는 벌써부터 내게 무언의 경고신호를 보낸다. 두 번째 공주와 세 번째 공주 사이에서 벌써부터 외줄 타기를 하고 있는 느낌이다.  


평소 주변 사람들에게서 여복이 많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그게 영 실없는 소리는 아니었는지, 이리도 섬겨야 할 공주들이 많다. 


도무지 열심히 살지 않을 수가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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