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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Jan 27. 2024

여보, 우리 아이가 태어나면 이거 하나만큼은

곧 태어날 딸을 생각하며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


여보. 아마 계절이 따뜻해지면 당신 배 속에 있는 하늘이 내린 선물을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소. 우리 사이에 곧 아이가 태어난다는 게 여전히 실감은 나지 않는다오.


다만, 그동안 아이에 관한 생각을 틈 날 때마다 곱씹고 이렇게 글로도 풀어내는 걸 보면 나름 마음의 준비를 혼자서 조용히 하고는 있는 것 같소.


부성애 같은 게 안에서 자라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소. 솔직히 아직 그런 마음이 막 느껴지진 않는다오. 아이들이 지나가면 확실히 전보다는 눈길이 간다만, 그렇다고 막 예뻐 보이는 건 아니라오. 아직까지는.


그럼에도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문득 생각나서 이렇게 글을 써 본다오. 나중에 아이가 태어나면 다른 건 몰라도 이거 하나만큼은 꼭 해주기로 합시다.


우리, 우리 아이를 믿어줍시다.


경제적인 지원도 좋고, 스스로 독립하여 자립할 수 있게끔 지혜롭게 인도하는 것도 좋지만, 자신을 낳아준 존재가 한없이 자신을 믿어 준다는 그 느낌을 고스란히 전하고 싶다오.


살다 보면 우리 사이에도 갈등이 일어나겠지. 아이와도 문제가 생기겠지. 그럼에도 우리, 아이를 믿어줍시다.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엇나간다고 해서, 속을 썩인다고 해서 믿음까지 내려놓진 맙시다.


끝까지 믿어줍시다.


아이의 상황을 제대로 살피지 않고 '이게 다 너를 위한 일이야'라며 부담 주지 맙시다. 우리보다 더 잘 알고 있을 아이에게 '이게 더 좋은 거야'라며 넘겨짚지 맙시다. '너도 이만큼은 해야지'라며 세상의 꼭두각시가 되는 길로 몰아세우지 맙시다.


우리도 하지 못했던 일을 아이에게 강요하지 맙시다. 정작 필요하지도 않은데, 꼭 필요할 거라고 여기는 우리의 생각을 이기지 못해 아이의 날개를 꺾는 일은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해 봅시다.


잘해주려고 하는 건 결코 아이를 위한 게 아닌, 우리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것임을 잊지 맙시다. 사랑할수록 보듬고 감쌀 게 아니라, 적잖은 시련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게끔 묵묵히 지켜볼 줄도 아는 게 더 깊은 사랑임을 잊지 맙시다.


집착 말고, 그냥 믿어줍시다.


난 부모님에게서 물리적으로 물려받은 건 없지만, 그분들이 날 믿어주는 그 마음만큼은 진하게 느끼며 자랐다오. 다정한 남편으로서 당신과 함께 풍요로운 일상의 행복을 만끽할 수 있는 건,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오.


그래서 말인데 여보. 조금 있으면 태어날 우리 딸만큼은 세상 누구보다도 알아서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시다. 우리보다 더 잘 해낼 거라고 믿어줍시다.


아이에게 필요한 건,

넘치는 사랑보다 담백한 믿음일 거라고.


우리 그렇게 한 번 믿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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