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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Feb 18. 2024

내게 결혼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부모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는 이유


도대체 회충인지 고름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탁도가 살짝 있는 듯하면서도 맑은(?) 빛을 뽐내는 무언가가 아버지의 등에서 뿜어져 나왔다. 어머니의 두 검지손가락 사이로.


어릴 땐 그 진귀한 장면을 보는 맛이 꽤 쏠쏠했다. 하얗다는 것 말고는 도통 알 길이 없는 것이, 구멍이라곤 눈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는 아버지의 넓은 등에서 실타래처럼 쑥쑥 나왔기 때문이다.


그걸 보고 있을 때면 나도 직접 쥐어짜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래서 어머니가 했던 것처럼 양손 검지를 아버지 등에 대고 꾹꾹 눌러본다. 하지만 죄 없는 아버지의 등짝만 시뻘게질 뿐이었다. 아무리 쥐어짜도 정체 모를 그 새하얀 건 나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는 아프면서도 아무 말을 하지 않고 허허 웃으신 건가 싶다.


그때 그 시절이 마냥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서로 맞춰가던(?) 시기였기에,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이라 하기에도 부적절한 빈도수로 부부싸움을 했다. 마음처럼 되지 않는 본인들의 삶을 쳐내는 것만으로도 바쁜 나머지 나와 동생은 안중에도 없었던 때였다. 사실, 우리를 챙기기는커녕 되려 화풀이를 하기도 했었다.


그 기간이 그리 길진 않았지만 하필 온 세상을 정통으로 받아들이던 유년기 때 겪어서 그런지, 그 암울한 시절은 여전히 마음의 흉터로 남아있다. 아마 동생도 비슷할 것이다.


그럼에도 '등'이라는 단어가 눈에 스치니, 어머니가 아버지 등을 눌러 하얀 무언가를 국수 뽑듯 뽑아내는 장면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그런 걸 보면 어린 시절이 기억하는 것만큼 아주 괜찮지 않은 시절이었던 건 또 아니었나 보다.




난 무슨 결혼하려고 태어난 사람처럼 원래부터 결혼에 대한 생각이 확고했다. 특별한 계기나 남다른 이유는 없었다. 사람이 태어나면 먹고 자고 배출(?)하는 게 당연한 듯, 내겐 결혼도 그러했다.


배우자와 함께 가정을 꾸리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한 가정의 가장이자 한 여자의 다정한 남편이 되는 건, 희망을 떠나 그것이 마치 나의 본질이라도 되는 것처럼 여겨왔다. 달리 말해 아내와 사이좋게 잘 지내는 건 하나의 의무였다.


그런 결혼관의 뿌리가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건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집이 부럽단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화목한 분위기를 조성했던 부모님의 노력 때문이 아닐까 한다. 특히 어머니의 공헌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재능인가 싶을 정도로 어머니는 주변인 모두를 웃게 만드는 독보적인 매력이 있었다.


이래 저래 말이 많아도, 부모님을 떠올리면 결국 감사로 매듭이 지어진다.


다른 건 몰라도 결혼에 대해서 만큼은 그 어떤 의심이나 걱정도 한 적이 없었으니까. 그만큼 나 자신의 문제를 개선코자 집중할 수 있었기에, 기적적으로 만나게 된 한 여자와의 인연이 연인으로 발전할 수 있었으니까. 덕분에 지금의 아내와 전에 없던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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