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죄가 없는 줄 알았다
상대방과 가끔 마찰이 생길 때면 남 탓으로 돌리고 싶었다. 솔직히 매번 그랬다. 난 항상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사람이라고 믿고 싶었다. 본능적으로 그런 자의식을 지키고자 내 잘못을 짚기 보다도, 상대방의 흠잡는 것을 꽤나 즐겨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알고 보니,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너와 나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생기는 일이었다.
남 탓은, 내 탓 없이는 성립될 수가 없었다.
때문에 남 탓을 따질 수 있다는 건 곧 내 탓도 짚어볼 만한 게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이런 원리가 모든 상황에 적용되는 그런 진리 같은 게 아닐 거라고, 난 잘못한 게 없는데 상대방이 무조건 잘못한 경우도 분명 있을 거라고 나를 다독이고 싶었다. 그러나 내 안의 본성은 그런 경우는 거의 없을 거라는 메시지를 개운하지 않은 감정을 전달함으로써 일침하였다.
경험상 내가 무심하게 따지고 들 때 상대방이 할 말을 잃거나, 잘못을 인정하면 아주 잠깐은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찰나의 순간이 지나고 나면 마음에 항상 찜찜한 기운이 맴돌았다. 동시에 좀 더 깊은 내면에서는 '내가 옳았다'는 관념이 강해지는 게 어렴풋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 관념은 마음 안에서도 꽤 은밀한 곳에 숨어 있기 때문에 웬만해선 쉽게 알아차리기 힘들었다.
문제는 망상에 가까운 관념이 쌓이다 보면 무너질 수도 있을 만큼의 커다란 상처를 불러오는 일을 스스로 자초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내 경우엔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이었다. 그것도 여러 번.
'난 누구보다도 이성적인 사람이니까, 무조건 내가 옳다'는 관념을 바탕으로 앞뒤를 가리지 않고 모든 잘못을 상대방 탓으로 돌려 내 사람을 무너뜨리길 좋아했던 그때 그 시절의 난 아무리 생각해도 끔찍한 놈이었다.
'상대방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
'내가 한 짓은 그대로 다 돌아온다'
라는 말의 진가를 그땐 몰랐다.
그 말들의 진가를 조금 더 일찍 깨우쳤다면, 문제의 탓을 남에게 떠넘기면서까지 나를 추켜세우며 보호하지 않았을 텐데. 상대방과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대로 받아들임으로써 건강하게 감정을 해소하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이라도 내 세계관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의 책임을, 내가 전혀 알 길이 없는 다른 차원의 세계로 무책임하게 떠넘기지 않게 된 것만으로도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지난 세월을 떠올리면 아쉬움이 많지만, 그나마 다행인 건 그 과정 속에서 '반성'과 '배움'을 통한 '개선'과 '실천'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덕에 난 지금의 나로 거듭날 수 있었고, 좋은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예전 그대로의 나였다면, 지금의 삶과 평안은 결코 누릴 수 없었을 거라고 감히 확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