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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Feb 08. 2024

이과예요, 문과예요?

난 실업계 나왔는데


"이과예요, 문과예요?"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래로 낯선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은근히 자주 받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난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내가 실업계 출신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대개 당황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 당황스러움이 나를 향한 것인지, 본일을 향한 것인지 궁금하지만 그 내막은 알 길이 없다.


확실한 건 사람들은 뭔가 특정 유형의 낌새를 감지하면 당연케도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으로 여기는 경향이 짙다는 것이다. 이과인지 문과인지는 모르지만, 본인들과 마찬가지로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으로 대하는 그들의 질문에서 그런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난 공부가 싫진 않았다. 그렇다고 책상에 오래 붙어 앉아 있을 만큼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런 내게 고등학교로 진학 후 3년 동안이나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공부하는 생활은 생각만으로도 벅찼다.


왜 해야 하는지도, 훗날에 어떻게 써먹게 될지도 확실치 않은 것들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긴 싫었다. 남들이 다 그런다는 이유로, 좋은 대학을 가야 한다는 이유로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을 쉽게 납득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담임선생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실업계를 지망하게 되었다.


실업계 고등학교로 진학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공부를 거의 하지 않는다. 그만큼 엉뚱한 곳을 바라보며 방황하게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경험해 보니 그렇더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좋아하는 게 뭔지도 모르는 그 어린 나이에 주변의 유혹을 이겨내고 스스로 인생의 방향을 짚어 나가기엔 무리가 있었다.


물론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이리저리 부딪히며 깨지다가 자신의 밑바닥도 보고 반성도 하는 그런 모든 과정이 인생의 일부이니까.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것도 좋지만, 공부에 쏟은 세월만큼 등지고 있었던 '그때 그 시절'의 세상은 놓치게 될 수밖에 없으니까.


사실 인문계와 실업계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조금씩 다른 경험을 하게 되는 것뿐이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 경험을 기준으로 '급'을 나눈다.


이과 졸업생인지 문과 졸업생인지 물어보는 질문에 '실업계를 졸업했다'라는 대답을 들은 사람들의 기분은 어땠을까. 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들의 고정관념 중 어딘가에는 균열이 일어났을 거라는 짐작을 감히 해본다.




사실 날 인문계 고등학교 출신으로 오해한 사람들은 대부분 독서모임에서 만난 사람들이었다(독서모임 말고는 따로 만나는 사람이 없긴 하다). 그들의 선입견은 나와의 교류에서만 드러나는 게 아니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독서모임에 참가한 다른 이들을 섣불리 넘겨짚고는 했다. 독서모임에 들었다는 이유로 다들 책을 좋아하고, 말을 잘하고, 글을 잘 쓸 거라고 말이다.


그러나 독서모임 안에서도 책을 좋아하는 이들은 의외로 찾아보기 힘들다. 여태 모임을 통해 만났던 사람들을 떠올려 봐도 인상 깊을 만큼이나 독서를 즐기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독서모임 안에서도 20:80 법칙은 존재하는 듯했다. 모임 인원 수가 30명이든 100명이든 절반 이하의 사람들은 모임 없이도 혼자서 책을 잘 읽는 반면에, 절반 이상의 사람들은 한 달에 한 권도 겨우 읽을까 말까 하는 이들이었다.


정기모임 당일 날, 약속시간보다 일찍 와서 지정도서의 남은 페이지를 숙제하듯 읽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독서모임의 취지를 '정해진 기한 안에 한 권을 완독하는 게 목표'라는 착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대개의 경우 그런 사람들에게서는 귀 기울여 들을 만한 이야깃거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런 장면을 마주할 때면 대한민국 교육 시스템의 폐해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여하튼 어느 독서모임을 들어가 봐도 크게 다르지 않은 그 패턴은 일종의 과학 같았다.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자 부단히 노력하지만, 대뜸 초면에 문과인지 이과인지 운운하는 사람들을 마주할 때면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의 수준을 가늠 짓게 된다. 머릿속에 숱한 고정관념이 들어찬 사람 같아 보여서 막 호의적이진 않게 된다. 좋지 못한 습관인 걸 알지만 반사작용처럼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이라 어쩔 도리가 없다. 그럼에도 그 판단에 굴복하지 않고자 끝까지 알아차리고 마음으로부터 흘러 보내려 한다.


그런 저항이라도 하지 않으면, 나를 근거 없이 유추했던 그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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