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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Feb 10. 2024

명절, 가족은 더 이상 가족이 아니다

피가 섞인 사람조차 꺼려지는 세상


아직도 명절이 다가오면 어릴 때 느꼈던 그 특유의 설렘이 가슴에 피어오른다. 60년 생인 아버지는 그 시대 사람답게 형제들이 많았다. 시골에 있는 큰 집에 가면 세뱃돈을 주는 쪽도, 받는 쪽도 줄을 서야 될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다.


어른이 되어 보니 '일 년에 두 번'은 일 년에 두 번이나 만난다는 거였지만, 어릴 적 '일 년에 두 번'은 그 간극의 세월이 가늠이 되지 않아서 적응하기 힘들었다. 때문에 매번 친척들을 볼 때마다 부끄러웠다. 설날에 봤어도 추석 때 보면 전에 만난 적 없는 처음 보는 사람들만 같았다. 하지만 제사를 지내고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부끄러워 눈도 잘 못 마주치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신이 나서 사촌들에게 소 밥 주러 같이 가자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 그 시절의 나로서는 납득하기 힘든 장면이 한 가지 있었다. 그건 바로 작은 방에서 몰래 숨어 자고 있는 큰 형들이었다. 어릴 적 내게 명절이란, 일종의 이벤트 같은 날이었다. 용돈도 받고, 반가운 친척들도 만나고, 맛있는 것도 먹는 그런 날이었으니까. 때문에 해가 중천을 넘어가지 않았으면 하고 속으로 바랄 만큼 시간이 흐르는 게 애석했다. 그런 나에 비해 형들은 마치 하루를 건너뛰기라고 하고 싶은 것마냥 구석에 박혀 누워있길 좋아했다.




그 후 한참의 세월이 흘렀고, 세상은 많이 변했다. 정신 차려 보니 예전에 몰래 빈 방을 찾아 잠 자길 좋아했던 형들의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을 어느새 내가 연출하고 있었다.


이젠 소 밥 줄 소도 없다. 소 밥을 같이 주러 갈 사촌동생은 생사도 모른다. 만약 옆에 있었어도 서로 어색한 나머지, 이젠 나부터가 소 밥 주러 가자고 할 마음이 생기지 않을 것만 같았다. 이런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아쉬울 따름이다.


가만 보면 기하급수적으로 변한 세상보다도 명절의 풍경이 더 많이 변한 것처럼 느껴진다. 북적북적거리던 예전 그 때의 분위기는 이젠 상상도 할 수 없으니까.


그 많던 아버지 형제들의 가족들은 아무도 큰 집을 찾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꽤 오래전부터 기별도 없이 큰 집에 오질 않았다. 아마 온다 해도 그리 반갑지도 않았을 것이다. 마주친 적도 없거니와 오가는 대화 한 번 없이도, 이리 가족들 간의 유대감이 자연스레 끊어질 수도 있다는 게 여전히 믿기지가 않는다. 하지만 직접 경험한 현실이다.


아니면, 아버지 형제 가족들 사이에 유대감이란 원래부터 없었는지도 모른다. 윗어른들이 살아계실 때 각자 마음에 품고 있는 뭔가를 지키기 위해, 서로들 연극을 한 것에 지나지 않는 건지도 모른다.


우리 아버지는 형제들 중 유일하게 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여전히 큰 집을 가고 있다. 다만, 그저 의무감 때문에 찾아가시는 것 같다. 습관처럼 말이다. 막상 큰 집을 가도 딱히 나누는 대화도 없이 가만히 티비만 보다가 온다.


이젠 그런 우리 아버지조차도 큰 집에 발걸음 할 일이 머지않았음을 어렴풋이 느끼는 바이다. 그런 기류가 흐르고 있음을 아버지와의 짧은 대화를 통해서 느낄 수 있었다.


가족은 더 이상 가족이 아니다.

가족이 되는 것도 이젠 조건과 대가가 따른다.




집집마다 가족들이 들끓었던 그때 그 시절은 내가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지금도 그리워하는 걸까. 만약 명절에 해외여행은 꿈도 못 꿀 만한 시절에 내가 어른이었다면, 다른 형들이 그랬던 것처럼 방구석에 누워 시간이 빨리 가기만을 바랐을까. 그럼 지금 같은 여운이 남지도 않았을까.


여하튼 확실한 건, 겉으론 유대감이 단단해 보였던 어른들 사이에 무슨 문제가 있긴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무리 세상이 180도 변했다 한들, 멀쩡히 살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남처럼 지낼 리가 없다.


이런 세태가 오히려 더 좋은지 아닌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전보다 더욱더 정신 차리고 제 앞가림 똑바로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로 이미 진입했다는 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을 것 같다.


가뜩이나 믿을 만한 사람도 없는데,

피가 섞인 사람조차 꺼려지는 세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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