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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Mar 24. 2024

누군가 내게 꾸준함의 비결을 묻는다면

굳게 마음먹으면 될 것도 안 된다


난 내가 꾸준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여태 살아오면서 뭐 하나 진득하게 한 것이 없다. 공부부터 시작해서 운동....... 음, 딱히 뭘 대단한 걸 시도조차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이리도 떠오르는 게 없는 걸 보면 말이다.


학창 시절 때 게임은 미친 듯이 했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젊음이 아까운 줄도 몰랐다. 새벽에 출근하는 아버지가 안중에도 없을 만큼 열중했었다. 여하튼 어릴 적 기억들을 떠올려 보면 결코 좋은 쪽으로 성실하거나 부지런을 떨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 내가 어느 순간부터는 주변인들에게 '부지런하다', '성실하다'는 말을 종종 들으며 산다. 최근엔 아내에게서 종종 듣는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시점은 아내가 임신한 지 25주 차이다. 그래서 밤마다 불룩 나온 배에 튼살방지오일을 듬뿍듬뿍 발라주고 있다. 그런 날 보며 아내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이렇게도 부지런한 남편을 만난 게 운이 좋소."

(우리 부부는 하오체로 대화한다)


"...?"


아내가 그런 말을 할 때면 묵묵부답으로 대응한다. 그냥 멀뚱멀뚱 쳐다본다. 겸손 떠는 게 아니라, 적응이 안 돼서 그렇다. 아내는 매일 빠지지 않고 오일을 발라주는 날 좋게 보는 모양이다. 하지만 부지런하다는 칭찬을 들을 때면 기분이 좋기는커녕 약간 아리송하다. '어안이 벙벙하다'라는 표현도 꽤나 적절하겠다.


이런 작은 일도 감사할 줄 아는 아내를 만난 게 행운이라 여기면서도, '내가 과연 성실한 인간으로 평가받아도 되는가'를 되뇌며 찰나의 순간조차 나를 옥죄지 못해서 안달이다. 나를 만난 난 참 불쌍하기도 하지.




생각해 보면 작정하고 꾸준하려 했던 건 모두 실패했었다. 공부, 운동, 일기 쓰기, 미라클모닝, 다이어트 등등 뭐 하나 제대로 성실하게 한 적이 없었다. 그런 내가 현재 꾸준하게 해내고 있는 것들은 독서, 글쓰기 그리고 새벽기상이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같은 텐션을 유지하진 못했어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몸에 배서 습관이 들었다. 아니, 습관이라기보다는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다고 하는 게 더 맞는 말일 것이다. 아마 읽고 쓰고 새벽 일찍 일어나는 라이프스타일은 죽을 때까지 안고 갈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꾸준히 하는 것들의 공통점으로 첫 번째는 이를 악물고 시작하지 않았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확실한 '수단'으로써 활용한다는 점이다.


이전에 작심삼일로 끝났던 새벽기상과 오늘의 새벽기상은 취지가 다르다. 전에는 오직 일찍 일어나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려 했다면, 지금은 '시간'이라는 재화를 벌기 위해 일찍 일어난다. 이유의 차이는 실로 엄청난 결과의 차이를 불러왔다. 나를 구하기 위해 시간을 벌고자 했다가, 글쓰기라는 인생의 과업을 발견한 것처럼 말이다.


글쓰기에 빠져드니 그동안 살짝 내려놓고 있었던 독서에 대한 의지마저 타오르게 됐다. 더 좋은 글을 쓰려면 더 많은 책을 읽어야 함을 꾸준하게 글을 쓰면서 몸소 느꼈기 때문이다. 이런 선순환이 세상에 또 어딨을까 싶다.




1년 동안 브런치에 매일 글을 발행하고, 그것도 모자라 그 이상의 글도 별도로 쓰고 있으니 남이 보면 꾸준하다고 할 만할 수도 있을 거라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난 끝까지 나를 그렇게 바라보지 않을 것이다. 난 나를 잘 안다. 절대로 난 꾸준할 수가 없다. 그냥 하고 싶기 때문에 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할 만하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는 것뿐이다. 그게 전부다.


누군가 내게 꾸준함의 비결을 묻는다면 다음과 같이 말해주고 입을 꾹 닫을 것 같다.


"괜히 각 잡지 말고, 할 만큼만 작게 쪼개서 해보세요."


아, 그리고

"좋은 배우자르 ㄹ ,만ㄴ..."


이만 글을 줄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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