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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Mar 29. 2024

부부사이에 신뢰가 깨진다는 건

PART 3. 원만한 결혼생활 ep.5


어느 날, 이색체험을 하기 위해 바닥이 유리로 된 다리를 건너기로 했다. 혹시라도 떨어지면 살아남을 수 없는 높이에 위치한 다리였지만, 안전하다는 말만 믿고 한 걸음씩 내딛으며 천천히 건너본다.


바람이 강하게 분다. 다리도 많이 흔들린다. 다리 밑으로 보이는 계곡은 휩쓸리면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을 만큼 물살이 거세게 흐르고 있다. 그에 불안감은 점점 커지지만, 괜찮다며 안심하라는 말 한마디에 애써 의지한 채 한 걸음씩 내딛는다.


그런데 잠시 후 갑자기 바로 앞에 있는 유리에 금이 가 쩍 벌어지더니, 이내 와장창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이 난다. 깨진 유리 파편들이 저 멀리 아래 계곡으로 떨어지는 게 보이면서 다리가 후들거린다. 천만 다행히도 목숨은 건졌지만, 심장이 철렁할 정도로 아찔한 상황이었다.


만약 그런 다리를 다시 건너라고 한다면, 건널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부부간의 신뢰가 깨진다는 건 이와 같은 상황이다. 아무리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어지고 평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한 관계라고 할지언정, 둘 사이에 신뢰가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허망한 게 바로 부부사이라는 인간관계다. 신뢰를 저버린 자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더 이상 믿을 수도 의지할 수도 없을뿐더러, 가깝게 있고 싶지도 않은 껄끄러운 존재로 거듭나게 된다.


신뢰가 무너졌다는 건 곧 안전하지 않은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과 결부된다. 신뢰할 수 없는 사람과 함께 지내면 돌발상황이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기에 내내 초조하고 불안한 상태로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불안감을 품고 있는 사람에게 행복감이 깃들리 만무하다.


생존을 최우선적으로 여기는 인간으로서는 불안감을 야기하는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애를 쓰는 게 당연하다. 때문에 신뢰가 없는 사람과는 아무리 같이 살고 싶어도 도무지 함께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생각과 의지로 어찌 통제하려 해 봐도 본능적으로 생존에 위협을 느끼는데 어찌 그런 사람 옆에서 얌전히 지낼 수 있을까.


물론 일부러 부부간의 신뢰를 깨뜨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단지 신뢰에 금이 가는 행동을 일삼으면서도 최악의 결과가 자신에겐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에 의지한 채, 무책임한 짓을 기어코 저지르고야 마는 사람만이 있을 뿐이다.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 먹어봐야 아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아무 문제가 없었던 사람조차 특정한 계기로 인해 망상에 빠지기 시작하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사람은 이토록 어리석은 존재다. 가족과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세상과 인간에 대하여 부지런히 사유하고 공부해야 하는 이유다.




배우자의 신뢰를 저버리는 짓을 감행하는 건 책임회피와도 관련이 있다. 결혼생활에 뭔가 불만이 있거나 나름의 결핍이 있는데 그 탓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는 것이다. 그러면서 스스로 문제를 극복할 생각은 않고 배우자와 함께 해결할 생각은 더더욱 하지 못한 채, 바깥에서 갈망을 채우고자 겉돌게 된다. 그런 사람들이 빠지는 게 바로 바람이나 도박, 쇼핑중독 같은 것들이다.


건전하지 못한 방법들로 공허한 마음을 어느 정도 채울 수 있을진 모르겠으나 아주 잠깐 뿐이며, 그 찰나의 순간이 지나고 나면 더 큰 공허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마음의 원리가 그렇다. 때문에 평범의 범주를 넘어서는 자극에 의지하게 되면 잘 돼도 문제고 안 돼도 문제다. 효과가 좋으면 좋을수록 중독에 빠질 것이고, 혹시라도 일이 꼬였을 때 치러야 하는 대가는 가히 치명적이다.


매일 감사해도 모자랄 만큼 중요한 것들의 가치를 꼭 사라져야만 깨닫는 사람들이 있다. 있을 땐 그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다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의 커다란 죄를 짓고 곁에 있던 사람이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눈을 뜨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만약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운이 정말 좋지 않고서야, 사랑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철저히 외면받게 될 것이다.




모든 상황을 막론하고 내면의 결핍을 채울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할 일'을 찾는 것이다. 이를테면 취미 같은 것들. 단, 시간 남으면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그런 가벼운 활동이 아니라(소비를 부르는 유행 타는 취미도 말고),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하고 싶을 정도로 몰입할 수 있는 거리를 찾는 게 좋다. 취미가 없는 사람보단 취미가 있는 사람이 더욱 안정적인 일상을 보내는 건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물론 좋아하는 일을 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갑자기 좋아하는 일을 찾는 건 결코 쉬운 게 아니다. 오히려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그 생각이 되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족쇄가 될 수도 있다. 보통은 어떤 것을 꾸준히 하다 보면 좋아지게 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그러니 마음의 공허를 채우고픈 마음에 뭔가를 찾는다면 '할 만한 일을 작게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관건은 별다른 기대 없이 꾸준히 해보는 것이다.


집중할 만한 일이 생기면 그간 자신을 괴롭히던 대부분의 문제들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건 할 일을 찾음으로써 원래 있던 문제가 절로 해결되는 마법이 일어나서 그런 게 아니라, 사람이 어떤 것에 몰두하다 보면 그 외 다른 문제들에는 신경 쓸 겨를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살면서 마주하는 대부분의 문제들은 관심을 주지 않으면 금세 사라진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문제'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문제들은 문제를 문제로 바라보는 생각들이 만들어낸다. 고로 생각은 애초부터 내 것이 아닌데 본인이 직접 떠올렸다는 이유로, 그런 생각들을 온전한 내 것이라며 철석같이 믿어버리는 게 진짜 문제다. 그 여파로 모든 문제의 원인은 외부에 있다고 착각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생각엔 주인이 없다.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생각들은 우연한 반응이자, 곧 스쳐 지나갈 무의미한 자극에 불과하다.


할 게 없는 사람일수록 쓸데없는 생각에 휘말리기 십상이다. 그에 비해 자기만의 할 일이 뚜렷한 사람은 그런 허망한 것들에 관심조차 기울일 여지가 없기 때문에 쉽게 말리지 않을 수가 있는 것이다. 불안할수록 바쁘게 살아야 하는 이유다.


무미건조하고 지루한 삶으로 이끈 게 과거 본인의 선택에 의한 결과라는 건 전혀 고려치도 않고, 그저 자신을 제외한 주변 상황만을 탓한다면 생각과 마음은 엉뚱한 곳으로 향하는 법이다.




상대방에게 진심을 다해 잘해주거나,

나부터 올곧게 살아가거나,

바라는 게 없거나.


배우자와 사이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으려면 위의 세 가지 조건 중 최소 한 가지 이상은 충족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중 '나부터 올곧게 살아가기'가 단연코 으뜸이다. 가장 어렵고 난감한 부분이지만, 그 하나만 제대로 취한다면 다른 문제들은 자연스레 해결될 만큼 상당한 영향력을 인생에 불러오니까 말이다. 요컨대 나만 똑바로 살면 상대방도 달리 보이기 마련이다.


금실 좋은 부부관계는 그냥 이루어지지 않는다. 두 사람의 숱한 고민과 노력의 흔적들이 일군 기반이 없다면 결코 성립될 수가 없는 사이다. 서로를 위해 그리고 가정을 위해 어느 정도의 헌신과 얼마만큼의 희생을 치러야 하는지는 처한 환경에 따라 다르지만, 중요한 건 뭐든지 가만히 앉아서 해결되는 건 단 하나도 없단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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