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보 Mar 22. 2024

여보, 우리 통장에 거의 1억 가까이 모였어

PART 3. 원만한 결혼생활 ep.2


"여보, 우리 통장에 거의 1억 가까이 모였어."


첫 번째 결혼기념일을 맞이한 후 채 반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 아내가 한 말이었다. 그 정도의 돈은 매 달 서로의 월급에서 각종 비용을 제하고 남는 금액으로 저축하는 걸로만 따지면 쉽게 모으기 힘든 액수였다. 하지만 어느새 생각지도 못한 돈이 통장에 쌓여 있었다.


평소에 불필요한 지출을 하지 않고자 신경을 쓰며 살긴 했다. 그럼에도 이렇게 이른 시기에 그 정도의 돈이 모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결혼하면 밑 빠진 독에 돈을 들이붓는 짓만큼은 하지 않으려 했는데, 그 염원을 품은 게 아주 의미가 없진 않았던 모양이다.


곱씹어 보면 결혼식에 들어가는 비용을 아껴서 저축을 했던 게 컸다. 차에 관심도 없는데 새 차를 굳이 빚까지 져가며 사긴 싫어서 중고차를 산 것도 도움이 많이 됐다. 성과급 같은 보너스라도 들어오면 일말의 고민도 않고 즉시 저축통장에 이체하고선 잊어버리는 것도 잘한 일이었다.


꼭 대기업 정도의 연봉이 아니어도, 갚을 빚이 거의 없고 평소의 소비가 귀여운 수준이니 확실히 돈 모으는 속도가 빠르긴 했다. 아마 남들 하는 거 다 따라 하며 살았으면 결코 지금처럼 돈을 수월케 모으진 못했을 것이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건, 우리 부부는 뭔가를 참아가면서 저축을 한 게 아니었다는 점이다. 우린 돈을 모은답시고 아등바등 살지 않았다. 하고 싶은 것들, 먹고 싶은 것들은 웬만큼 다 즐기며 지낸다. 


단지 지출하기에 앞서 타당성을 따져보고, 안 써도 될 돈이라면 쓰지 않기로 선택하며 지내온 게 비결이라면 비결이었다. 쉽게 말해 돈을 모으는 데 혈안이 되지 않고, 불필요한 지출을 하지 않는 데만 신경을 썼는데도 돈이 잘 모였다는 말이다.


앞으로 지금처럼만 살아도 부자는 되지 못할지언정, 결코 가난해질 일은 없을 거라고 감히 확신해 보는 바이다. 그럼 다른 건 몰라도 최소한 내가 겪었던 가난의 고통만큼은 자식에게 대물림하지 않을 수가 있을 터였다.




남들이 다 그렇게 산다고 해서 따라 할 필요는 없다. 괜히 남들 따라 했다가 애꿎은 가랑이만 찢어질 뿐이다. 용기를 좀 내야겠지만, 충분히 본인 상황에 맞는 생활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하면 남들이 이상하게 볼 것 같지만, 정작 남들은 남들의 인생에 전혀 관심이 없다.


그러니 남들이 이상하게 볼 것 같다는 이유로, 주변에서 다들 한다는 것을 해야만 할 것 같다는 압박감 때문에 괜히 무리할 필요가 없다. 남들 다 한다는 것들을 덩달아해보고 싶겠지만, 그들과 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철저히 각자의 느낌만을 서로 가져갈 뿐이다. 평점 높은 천만영화가 내겐 재미가 없을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전통이나 문화를 따라야 한다는 생각도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현실을 둘러보면 그런 것들은 이미 어긋난 지 오래다. 아버지는 양복을 입는데 왜 어머니는 여전히 한복을 입을까. 이런 부분을 진지하게 곱씹어 본다면, 애초부터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세상에 정답은 없다. '모든 건 끊임없이 변한다'라는 것 외에는.


돈은 있다가도 없을 수 있다. 당장엔 돈이 없어도 두 사람이 힘을 합치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게 돈 문제이다. 하지만 당장에 돈이 차고 넘쳐도 두 사람의 합이 맞지 않으면 얼마든지 순식간에 타버릴 수 있는 것도 바로 돈이다.


돈이 행복을 보장하진 않지만, 가난은 불행으로 이어지기에 적합한 삶의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꼭 돈을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굳이 쓰지 않아도 될 돈을 쓰는 자극적인 소비습관은 가정의 파멸을 불러온다.


소비는 결핍을 채울 수 있는 가장 쉬우면서도 자극적인 행위다. 아무리 서로 죽고 못 살아도 둘 사이에 경제력이 받쳐주지 못한다면 그 애틋한 관계도 언젠가는 바스러질지도 모를 일이다.




가난해지는 이유는 많은 돈을 벌지 못해서가 아니다. 벌어들이는 수입 이상으로 무리하게 소비를 하기 때문에 가난해지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러니 그건 본인이 직접 가난을 삶으로 초대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간다고 여긴다. 하지만 알고 보면 사회적 분위기, 문화, 주변인들의 견해를 자신의 생각으로 착각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가령 지인들이 전부 큰 예식장에서 화려하게 결혼식을 치르니, 나도 그에 맞춰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주변인들이 대출빚을 내서라도 역세권 근처의 신축 아파트에 입주하니, 나도 그에 맞는 집을 무리를 해서라도 사는 것처럼 말이다.


인생의 방향성이 애매모호하고, 삶의 가치관이 뚜렷하지 않은 사람은 경제관념도 바로 서 있지 않을 확률이 높다. 그럼 본인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선택지는 외면한 채, 무리를 해서라도 남들 뒤꽁무니만 따라가는 삶을 살게 된다.


남들처럼 살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당장 근처에 부자가 많은지 아니면 아등바등 겨우 생계만 유지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많은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삶의 형태가 현재 본인의 상황이거나, 곧 다가올 미래의 모습일 확률이 높으니까.




난 두 사람이 결혼을 했으면 이전보다 더 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리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믿는다. 난 고생길에 접어들기 위해 결혼하지 않았다. 한 가정의 가장이라는 이유로 나의 모든 가능성과 기회를 헌납할 마음은 없다. 어느 정도의 희생은 불가피하겠지만, 그런 희생이 곧 불행이라고도 생각지 않는다. 결혼 후의 생활이 힘들기만 하고 되려 더 궁핍해질 거라 여겼으면 차라리 혼자 살고 말았을 것이다.


난 보다 풍요롭고 더 나은 인생을 맞이하기 위해 결혼을 결심한 거였다. 때문에 만약 연애상대가 충동적인 소비습관을 지녔다면, 그 누구라도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 성격차이도 극복할 수 있다고 여기는 나이지만, 비이성적이고 정립되지 못한 경제관념이 내면에 뿌리 박힌 사람은 당해낼 재간이 없다. 책임감이 결여된 경제관념은 한 가정을 블랙홀로 밀어 넣기에 충분한 스탠스를 내뿜는다.


가난이 진짜 무서운 건 '서서히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가난을 알아차리게 되는 순간은 대부분 때가 늦은 경우가 많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가난해져가고 있음을 체감하지 못하는 건,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간다는 이유를 들먹이며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곧 배에 물이 들어차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주변에서 다들 얌전히 있으니 자신도 가만히만 있으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래놓고 정작 상황이 심각해지면 모든 탓을 세상 탓, 주변 탓으로 돌리기 일쑤다. 가난의 탓을 외부로 전가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겠지만, 애석하게도 대부분의 경우 가난은 본인에게 가장 많은 책임이 있다.

 

이전 11화 성격차이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