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 원만한 결혼생활 ep.3
나와 아내는 사이가 좋지만, 예전만큼 뜨겁진 않다. 전처럼 종일 카톡을 주고받는다거나, 주말만 되면 나들이를 간다거나, 밤마다 술잔을 기울이지 않는다. 대신 서로의 하루를 응원하는 메시지를 간단하게 주고받거나, 볼 일이 있으면 각자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전처럼 술잔을 기울이기보다는 저녁을 간단하게 먹고 편히 쉬는 쪽을 택한다.
뭐가 더 나은지는 단정 짓기 어렵다. 뜨거울 땐 뜨거운 대로, 지금은 지금대로의 미지근한 매력이 있다. 그럼에도 굳이 고르라면 지금이 난 더 좋다. 뜨거우면 그만큼 열이 나고 데이기도 쉬울뿐더러, 다른 일들에 신경 쓰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요즘은 전보다 자극은 미약할지언정 안정감이 물씬 풍기는 나날들을 보냄으로써 더없이 안녕한 상태를 꾸준하게 유지하고 있다.
우리 부부는 서로가 연애경험이 많은 덕분에 이런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편이다. 오히려 연애초기처럼 계속 뜨겁기만 했다면 둘 중 한 사람은 미심쩍게 여겼을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피곤해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누구나 결혼할 때는 평생 함께 할 거란 약속을 한다. 그 약속이 보란 듯이 깨진 사례는 숱하게 많지만, '우린 다르겠지'라는 믿음을 품고 감히 결혼이라는 절차를 기어코 밟고야 만다. 두 사람 사이의 애정이 전과 같지 않음을 느끼는 경험은 그 누구라도 피할 수 없다. 이유는 단순하다. '상황'이 변하기 때문이다.
만약 꼬르륵 소리가 날 정도로 배가 고플 때, 우연히 라면 먹방이라도 본다면 냄비에 물부터 올리고 싶은 충동이 일 것이다. 하지만 소화가 되지 않을 정도로 과식한 후에 먹방을 본다면 라면을 쳐다도 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애정이 변하는 것도 비슷한 원리다. 상황이 변하는 만큼 마음은 달라지게 되어 있다.
'사랑이 식었다' 혹은 '애정이 식었다'라는 표현은 오류를 내포하고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보통 그런 말들을 접하면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던데, 오히려 인간이라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변화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물론 상황에 따라 사랑이 변했다는 건 마음이 뜬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보통의 부부관계에서 사랑이 변하고 애정이 식는 건 대부분 이상할 게 전혀 없는 일이다. 그런 단계로 접어들면 섭섭해하기는커녕 오히려 평화를 만끽할 때가 되었음을 알리는 신호로 받아들여도 무방하다.
열띤 사랑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 세상 전체를 멈추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멈추는 법이 없다. 영원하지 않은 사랑에 비해 시간은 영원토록 흐른다. 내가 죽더라도 세간의 굴레는 계속해서 돌아갈 것이다. 그러니 결혼 후에 관계의 농도가 달라지는 건 막을 수 없는 일이다.
애정이 식었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방을 탓하는 건, 세상과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서 오는 무지함을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애초에 당연하지도 않았으며 본인이 통제할 수도 없는 것에 괜한 기대를 걸면, 그 대가로 실망이라는 탐탁지 않은 감정을 고스란히 떠안게 될 뿐이다.
내 생각에 오랜 기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말은 곧 상대방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내 생각이 무조건 맞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겠다는 것과도 같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만의 기준으로 정의한 옳고 그름의 잣대를 남에게 견주게 된다. 그럼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라는 관념만 강해지는데, 그때부터 마찰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사실 그게 정상이긴 하다. 남을 판단하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으니까. 그만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건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부부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 자연스레 콩깍지(?)가 벗겨진다. 그러면서 이전엔 보이지 않았던 상대방의 다양한 모습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때 오히려 생각보다 괜찮은 면들을 마주하기도 하지만, 눈에 거슬릴 만큼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들을 발견하기도 한다. 보통 이런 상황에 이르면 '애정이 식었다'라거나, '상대방이 변했다'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갈대처럼 이리저리 흔들리기 쉬운 마음에 비해 사람 자체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달리 말해 상대방은 원래부터 그런 사람이었는데, 상대방을 바라보는 본인의 마음이 변했기 때문에 달라 보이는 걸 수도 있다는 말이다. 상대방이 얌전하게 가만히 있어도 마음은 충분히 변할 수 있다. 상황이 변하면 마음도 따라가는 법이다. 비단 이건 그 누구의 탓도 아니다. 인간의 마음이 원래부터 그렇게 생겨먹었을 뿐이다.
'이렇게 하는 게 맞다'라는 생각이 깔려 있지 않으면 불만이 생길 일은 거의 없다. 근데 그렇지가 않고 본인만의 합당한 기준을 내세워 남에게 강요하기 시작하면 없던 문제도 우후죽순 생겨난다. 세상에서 가장 합리적인 나만의 기준이 있는데, 그런 부분들을 전혀 충족하지도 못할뿐더러 되려 반대로만 행동하고 있으니 속에 천불이 나는 것이다.
꼴 뵈기 싫은 행동만 골라서 하는 사람일지라도, 정작 본인은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애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그동안 살아오던 방식대로 살아온 죄밖에 없을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간다. 그리고 그럴 권리가 있다. 때문에 상대방에게 불만을 품는 건 자유이지만, 그것이 '잘못됐다'라고 단정 짓기엔 무리가 있다고 본다.
서로 맞지 부분이 있다면 대화를 하거나 규칙 같은 걸 정해서 조금씩 맞춰갈 수는 있다. 하지만 배우자를 대하는 관점부터가 맑지 못하면, 그 어떤 타협도 성에 차지 않을 게 뻔하다. 상대방과 조율하는 것도 좋지만 배우자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존중하려는 마음을 다지는 게, 서로가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 가장 현명하고도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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