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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Mar 27. 2024

아내를 만난 건 인생의 행운이었다

PART 3. 원만한 결혼생활 ep.4


"여보, 고맙소~"


아내는 평소에 고맙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럴 때면 흐뭇한 미소로 답하곤 한다. 난 그저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 할 도리를 다 하는 거라 여기며 지낼 뿐인데, 매번 작은 것에도 감사의 표현을 아끼지 않는 아내를 만난 건 천운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평소에 주로 하는 일들은 대단치 않다. 설거지, 빨래, 청소하기(아내가 시키는 대로), 층간소음 안 일어나게 살포시 걸어 다니기, 분리수거하기 등 대개의 남편들이 하는 것들이다. 다만 눈앞에 일이 쌓이는 걸 가만히 두고 보는 성격은 아니라서 시키지 않아도 밀리지 않게끔 처리하는 편이긴 하다. 야무진 살림꾼인 아내에게 배운 것들은 그대로 답습하고자 노력도 한다. 기존에 해오던 방식이 있더라도 더 좋은 방법이 있으면 배우고 시도해 본다.


글을 쓴다고 새벽에 일어나면 까치발을 들고 아내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커피를 태운다. 그렇게 글쓰기 삼매경에 빠져 있다가도 아내가 일어날 시간이 다가오면 몰래 아내가 자는 방으로 조심스럽게 걸어가서 여전히 잠이 덜 깬 아내를 따뜻한 기운으로 감싼다.


퇴근하면 항상 웃는 얼굴로 반겨준다. 재미난 볼거리가 있으면 글쓰기에 대한 욕망을 살짝 내려놓고 옆에서 같이 즐긴다. 아내와 평생을 함께 살아가기로 결정한 이상, 내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아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라 여기고자 한다.


특별한 이벤트는 하지 않는 편이다. 아내를 기분 좋게 해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해주는 것으로 나의 욕망을 채우는 것을 경계하는 편이다. 굳이 상대방의 마음을 붕 띄우는 건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더 좋은 것보다는 편안한 게 최고의 가치라고 믿으니까.




난 잔잔하게 없는 사람처럼 있다가도, 필요할 땐 든든하게 옆을 지켜주는 남편이 되고 싶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도 너무 붙어 있거나 의지하게 되면 관계에 균열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내도 이런 부분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린 서로의 개인시간을 너그럽게 존중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아내를 배우자이기 이전에, 한 명의 여자이기 이전에, 한 명의 인간으로서 대하고자 한다. '나와 결혼한 사람이니까 이 정도는 해주겠지'라는 개념은 머릿속에 들여본 적이 없다. 매 순간마다 '한 인간으로서의 타당성'을 고려해 사리분별을 하려고 애를 쓴다. 그래서 그런지 아내와 여태껏 한 번도 크게 싸운 적이 없다.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나는 바람에 감정이 격해진 적은 몇 번 있었지만 매번 잘 넘겼다. 그런 날들이 쌓일수록 우리 사이는 더 돈독해졌다.


남들이 나를 보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사람들의 머릿속엔 보편적인 남편상의 이미지가 있지만, 내 모습은 왠지 그런 '평균'과는 거리감이 있어 보일 것 같다. 실제 주변인들에게서도 '넌 어째 결혼하고 나서 거꾸로 가고 있냐'라는 말도 종종 듣곤 한다.


다른 건 몰라도 관계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선 뭐든지 할 각오가 되어 있다. 내가 결혼하기로 결심한 건 배우자와 함께 더 잘 살기 위해서다. 매일 끊임없이 세상을 탐구하며 하나라도 더 배우고자 하는 건, 보다 더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게 배우자와 오래도록 원만하게 지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난 오로지 나를 위해서만 생각하고 움직인다. 아내와 함께 잘 살아가려 하는 것도 결국, 아내와 함께 사이좋게 지냄으로써 얻게 되는 행복감이나 충만감을 얻기 위함이다. 난 어쩔 수 없는 나이기에 모든 행위의 근거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게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참 다행이다. 서운함을 느끼기에 충분한 이런 고백조차 너그러이 받아줄 줄 아는 지금의 아내를 만났으니 말이다.




누구는 내가 신혼이라서 그런 거라고, 시간이 지나면 다 똑같아질 거라고들 한다. 하지만 난 옛날부터 그런 말들을 신뢰하지 않았다. 보다 앞서 경험한 자들의 발언은 자신들의 과거를 떠올리며 푸념하는 것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때문에 본인들이 겪었다는 이유로 나도 똑같이 그리 될 거란 말은 거의 흘려듣는 편이다. 같은 일을 겪는다고 해서 같은 경험을 하게 되는 건 아니니까.


난 세상에서 유일한 나만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아무리 너와 나의 삶이 엇비슷해 보일지언정, 엄연히 다른 세계관을 각자 살아간다는 점을 잊지 않으려 한다. 그저 오늘 하루에 감사하고, 곁에 있는 사람에게 감사하며 매 순간에 충실하고자 한다.


다만, '결혼하면 삶의 중심이 바로 잡힌다'라는 건 어느 정도 맞는 말이었다. 요즘처럼 글쓰기로 점철된 행복한 일상을 보낼 수 있었던 건 아내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절대 경험하지 못했을 일이니까. 만약 혼자였다면 지금처럼 이렇게 꾸준히 글을 쓰고 또, 무너질 만한 상황에서 스스로 마음을 다잡는 힘 같은 건 발현되지 않았을 테니까.


난 그저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이다. 난 오직 나만을 위해 살아가는 것뿐이다. 그럼에도 그런 나에게 항상 고맙다는 말을 아끼지 않는 아내를 만난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인생 최고의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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