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보 Apr 01. 2024

내가 결혼하기로 마음먹은 이유

epilogue


요즘은 고개만 까딱하면 결혼하지 않는 사람들이 눈에 확 들어올 정도로 혼자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뜻이 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결혼하지 못한 사람도 있고,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겠단 뜻이 확고한 사람도 있다. 나도 한편으로는 혼자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종종 하기 때문에 결혼하지 않는 삶도 존중한다. 세상에 정답은 없고, 모든 건 선택사항일 뿐이기 때문에 결혼여부의 문제는 왈가왈부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내가 배우자와 가정을 꾸려서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건 아주 단순한 이유에서다. 그건 바로 인생에서 겪을 수 있는 '아주 특별하고도 풍부한 경험'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원래는 혼자 사는 게 장점이 훨씬 더 많을 것 같긴 했다. 신경 쓸 게 없어서 편하고, 돈을 적당히 벌어도 될 것 같고, 하고 싶은 일 눈치 안 보고 할 수 있고, 갈등이 생길 일도 없을 테니 말이다. 나만 잘 챙기면 될 것 같았다. 


근데 좀 더 생각해 보니 혼자 있으면 더 이상의 특별한 경험은 하지 못할 것 같았다. 몸과 마음이 편한 대신에, 남은 여생 동안은 이전에 해왔던 것들만 계속 되풀이하며 살아갈 것만 같았다. 이미 충분히 겪어봐서 뻔히 예상되는 것들 말이다. 이를테면 직장을 다니고, 게임을 하고, 친구들과 술 마시고, 어쩌다 한 번 쌈짓돈으로 가성비 따져가며 소극적으로 여행을 다녀오는 패턴을 반복하는 그런 삶 말이다.


아마 혼자 살면 굳이 뭔가를 더 할 필요도 없고 무리할 것도 없으니 쉽고 편하겠지만, 그만큼 따분하고 무미건조한 삶이 이어질 것만 같았다. 노는 게 아무리 좋아도 매번 같은 방식으로 논다면 금세 지루해질 것 같고, 평생 관계를 이어갈 것 같았던 친구들마저도 나이가 들다 보니 언제 어떻게 사라질지 모르는 바람 같은 존재들이라는 걸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결혼생활은 이전의 모든 경험을 뒤덮을 만큼의 강렬한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누군가와 함께 평생을 살아가는 건 힘들겠지만, 그만큼 보람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배우자와 충분히 잘 지낼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기도 했었다.


결혼하면 행복하게 잘 살아가는 사람보다는 얼굴이 폭삭 늙거나, 이혼하거나, 가족들과의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끙끙 앓는 사람들이 훨씬 더 눈에 많이 띄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모습들은 참고사항일 뿐, 내 미래와는 전혀 관계없다고 생각했다. 그건 그들의 삶이었고, 난 나대로의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될 거라고 믿었다.




주변 사람들은 날더러 고집이 세다는 말을 자주 건넨다. 그들은 내가 자신들의 말을 순순히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잘 새겨듣지도 않는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난 남들의 말을 웬만해선 흘려듣지 않는다. 오히려 귀에 들려오는 모든 목소리를 일종의 지표라고 여길 정도다. 단지 그들이 시키는 대로만 하지 않을 뿐이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자 하는 건 좋은 건 가져가되, 그들과 같은 실수는 하지 않기 위함이 크다. 가령 부부간의 갈등을 해결하지 못해 신세한탄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잘 새겨듣고 궁금한 건 물어도 본다. 어떤 갈등이 일어났고,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해왔으며, 왜 결국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지금에까지 이르렀는지를 말이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런 일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혹시 내가 비슷한 상황에 처한다면 어떻게 해야 현명하게 대응할 수 있을지를 말이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며 고충을 토로하는 사람들은 날더러 결혼을 할지 말지 신중하게 잘 생각해 보라며 바란 적도 없는 친절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결혼에 대한 의지가 꺾이기는커녕 오히려 더 타오르기만 했다. 이유는 자명했다. 그들처럼만 하지 않으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남들이 다 그랬기 때문에 나까지 그럴 거라는 생각으로 해보고 싶었던 것을 하지 않겠다는 건, 내 인생의 주도권을 남들에게 맡기는 무책임한 태도라고 여겼다. 물론 사람 사는 건 비슷하니, 내가 결혼해서 마주하게 될 일은 나보다 먼저 결혼한 사람들이 겪었던 일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같은 일'을 겪는다고 해서 '같은 경험'을 하게 되는 건 아니라고 본다. 우린 모두 비슷하지만 철저히 분리된 별도의 세계관을 안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런 확고한 신념이 있었기에 결혼은 내가 직접 해 보고 경험해 봐야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결혼을 상상하면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날 거라는 기대보다는, 충분히 겪어봄직한 더딘 일들이 떠올라 두려운 마음이 더 크게 일어나곤 했다. 그럼에도 결혼에 대한 의지는 쉽게 꺾이지 않았다. 물려받을 게 없어도, 모은 돈이 없어도, 사놓은 집이 없어도, 그것들이 결혼을 가로막는 문제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결혼이든 뭐든 간에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으니까.


결혼에 대한 환상은 애초부터 없었다. '결혼'은 실재하는 무언가가 아니라, 머릿속으로 창조해 낸 개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결혼이 갖는 의미이자 현실은 두 사람이 함께 살아가며 겪는 모든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이혼도 결혼에 포함된 일부라고 본다.


결혼은 결과이자 상상인 반면에,

현실은 과정이자 일상이었다.


고로 그 현실을 직접 살아내는 나 자신을 철석같이 믿었을 뿐이다.


거창해 보이는 결혼도 실상 알고 보면 별 거 없다고 생각한다. 그냥 부딪히고 경험하면 될 일이라고 본다. 책임감을 갖고 어영부영 살지만 않으면 그것만으로도 결혼할 수 있는 자격은 충분하지 않을까.


결혼이 인생에서 겪을 수 있는 가장 특별하고도 풍부한 경험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미 결혼이라는 진귀한 경험 속 한가운데에 있으면서도, 혹은 결혼할 만한 자격을 충분히 갖추고 있으면서도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그 무언가 때문에 가능성과 기회를 포기하는 건 너무 아깝지 않을까.


다시 한번 말하지만,

같은 일을 겪는다고 해서

똑같은 경험을 하게 되는 건 아니다.


그러니 결혼은 기꺼이 해봄직 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신혼이지만 각방을 씁니다 펀딩 오픈

에세이 <신혼이지만 각방을 씁니다>의 펀딩을 시작했습니다. 결혼의 본질인 '서로 잘 지내는 것'에 초점을 맞춘 저희 부부만의 독특한 결혼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결혼을 맘에 품고도 망설이거나 행복한 결혼생활을 지향하는 분들에게 추천드리며, 또 그런 분들에게 선물하기도 좋은 책이에요.

후원자분들에게는 저자 사인본과 온/오프라인 북토크 참여권을 무료로 드리고 있으니 많은 후원 부탁드릴게요 :)


<신혼이지만 각방을 씁니다> 후원하기

https://tumblbug.com/newlyweds


이전 15화 부부사이에 신뢰가 깨진다는 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