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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Jun 04. 2024

새벽에 일어났을 뿐인데

ep 1. 내 인생의 특이점


전 노을이 질 때면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특유의 따스한 기운에 유달리 마음이 쉽게 뺏기는 편입니다. 그 황홀한 장면을 보다 보면 명확한 경계를 짚을 수 없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합니다. 근데 인생에서 마주하는 대부분의 일들이 그러한 것 같아요.  가령 제가 언제부터 세상을 인지하기 시작한 건지 확실치 않거나, 한 친구와 즐겁게 놀다 헤어졌는데 그게 그를 본 마지막 순간이었던 것처럼요. 어떤 일이 언제쯤 시작되고 어떻게 끝나는지는 잘 모르고 지나칠 때가, 그러지 않을 때보다 더 많은 듯합니다. 


그런데 제가 처음 글을 썼던 날만큼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2022년 6월 23일. 아직도 그날의 새벽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어쩌면 한 번도 생각지 못한 일이 벌어졌기에, 가뜩이나 기억력도 나쁜 제가 이리도 잘 외고 있는 걸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땐 이전에 수없이 실패했었던 새벽기상, 소위 미라클모닝을 다시 한번 도전하기로 하여 일찍 일어나기로 한 첫날이었습니다. 다만 새벽에 일어나서 뭘 할지 정해놓진 않았었습니다. 읽을 책을 미리 준비하긴 했지만, 과연 좀 더 일찍 일어나서 고작 독서 하는 것만으로 삶에 유의미한 변화가 일어날지 미심쩍었던 게 그 당시의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더군다나 그땐 젊음을 직장에다 온전히 갖다 바치기 싫은 마음에, 연봉을 포기하면서까지 시간을 벌 수 있는 곳으로 이직을 한 상태였습니다. 젊을 땐 좀 없이 살더라도 늙어서는 돈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 까닭에 예전에 비하면 마음가짐이 남다르긴 했습니다. 어떡해서든 개인적인 시간을 확보해서 세상에 내세울 만한 나만의 무언가를 찾아야만, 남은 여생을 괜찮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 다른 건 몰라도 새벽에 일어나는 습관 하나만큼은 꼭 내 것으로 만들자는 집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게 바로 블로그였습니다. 블로그에 새벽기상 인증글을 올리면 단 몇 명이라도 보는 사람이 있을 테니, 그럼 이전처럼 새벽기상이 작심삼일로 끝날 일은 없지 않을까 했던 게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인생은 참 살다 보면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나더군요. 얼떨결에 시작한 블로그였는데 거기서 제가 글쓰기를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애초에 블로그 자체가 글 쓰는 공간이긴 했으나, 분명 저는 '2022년 6월 23일, 미라클모닝 1일 차'라는 정도로만 적고 끝내려 했습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노트북 화면에는 공백포함 497자의 텍스트가 찍혀 있었습니다. 지금에서야 그 정도 분량의 글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때 당시로서는 꽤 낯선 일이었어요. 제 의지대로 쓴 글이 아니어서 더 그랬던 걸지도 모릅니다. 사람의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왜곡되기 쉬우니 호언장담할 순 없지만, 그럼에도 분명 그땐 손가락이 저절로 움직여서 글을 썼다고 감히 주장하고 싶습니다.


다음은 새벽에 처음으로 일찍 일어나서 블로그에 썼던 '미라클모닝 1일 차'의 글입니다.


얼마 전, 내 인생에 있어서 하나의 특이점으로 남으리라 생각될만한 큰 결정을 하였고 그 결과 나는 시간을 벌었다. 시간 자체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내가 시간을 대하는 자세가 이전과는 달라졌다. 시간을 한 번 잃어보니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다.

나는 시간이 생기면 미라클모닝을 꼭 하고 싶었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내 하루의 주도권을 쥐는 기분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미라클모닝을 하긴 했었는데 그때는 단순한 호기심에 의해서 몇 번 시도를 했다면, 지금은 나에게 꼭 필요한 자기계발 도구 중 하나라고 생각해서 마음가짐이 남다르다.

오랜만에 일찍 일어나는 것은 역시 쉽지 않았지만, 이전 날 저녁부터 내가 일어날 시간을 스스로 결정하고, 이른 새벽에 스스로 일어나서, 어설프지만 계획했던 일들을 스스로 해내니 역시 뿌듯하기 그지없다.

이것조차도 작심삼일이 될 수는 있지만 그런 건 그때 가서 생각하겠다. 나는 성장을 원하고 있다.


이후에도 전 그냥 '내가 이런 글을 쓰다니, 별일이 다 있네' 정도로만 생각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계속해서 비슷한 형식으로 글을 쓰는 희한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새벽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하는 게 양치하고 세수하고 커피포트에 물을 받는 거였어요. 물이 끓는 동안에는 거실로 쏟아 내리는 달빛의 기운을 가만히 머금으며 멍을 때렸고요. 근데 아마 그 감성에 젖어 들어 저도 모르게 글을 쓰게 된 게 아닐까 하는 것이 어렴풋하게나마 유추해 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어쨌거나 그렇게 일주일쯤 글을 쓰다 보니 이젠 오기가 생겨서 '그래 언제까지 써지나 한 번 보자'며 저를 제 풀에 쓰러질 때까지 한 번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근데 그로부터 2년이 다 되어가는 2024년 5월 13일, 지금 이 글을 쓰는 날까지도 이어져 올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땐 진짜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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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이지만 각방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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