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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Jun 18. 2024

하마터면 출간 계약할 뻔했다

ep 5. 생애 첫 출간 제안


브런치에 등록된 작가의 메일로 누군가가 메일을 보내면 '새로운 제안이 도착했습니다.'라는 알림이 뜹니다. 브런치 작가에게 메일을 발송하는 목적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단순 신간도서 리뷰도 있고, 매체 기고도 있고, 필진 작가 모집을 하기도 합니다. 제가 최초로 받았던 메일은 도서 리뷰였는데, 그건 이미 블로그에서 질리도록 썼기 때문에 단칼에 거절했었습니다. 제안 의도가 다양한 만큼 새로운 제안 메일이 도착했다고 해서 무조건 좋아할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브런치를 시작한 지 채 반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 맘 속으로 간절히 바라 마지않던 일이 일어났습니다. 바로 '출간/기고' 목적의 새로운 제안 메일이 도착한 것입니다. 그때 전 퇴근 후에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던 중이었는데, 브런치 알림을 보자마자 곧바로 내용도 확인 않고 짐을 싸서 튀어나갔습니다. 아내에게 소식을 알리고 싶었습니다(그 와중에 알림이 뜬 잠금화면을 스크린샷으로 남기는 건 잊지 않았습니다).


집을 향해 거의 경보 수준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러다 커다란 도서관이 보이는 큰 사거리에서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느라 잠시 멈춰 서 있었습니다. 서 있다 보니까 들뜬 마음이 좀 가라앉아서 메일 본문을 한 번 슬며시 훑어봤습니다. 정말 출간 제안 메일이 맞았습니다. 이전에 썼던 브런치북 <인생을 밝혀주는 글쓰기의 마법>을 책으로 내보자는 내용이 실려 있었습니다. 드디어 내게도 이런 일도 일어나는구나 싶었습니다. 생각할수록 신기했습니다.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하지만 현실이었습니다.


다만 메일을 다시 한번 꼼꼼히 읽어보니 뭔가 음? 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일단 반기획 전자출판제안이었습니다. 그건 살아생전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이었습니다. 더군다나 그 당시엔 기획 출판에 대한 개념도 생소하던 때였습니다. 그리고 작가 부담비용이 있다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이내 맨 처음의 설렘은 온데간데없이 찝찝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출간 제안이라는 건 처음 받아봤음에도, 살짝 이상한 제안을 받은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직감적으로 들었습니다. 그제야 정신이 좀 들어서 아내에겐 말을 하지 않기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낌새가 이상한 듯하기도 했지만, 반기획 출판이 뭔지도 몰랐기 때문에 좀 더 확실히 알아본 다음에 아내에게 말하는 게 좋겠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 회사로 출근하자마자 일할 생각은 않고, 제안을 해 온 출판사에 질문할 내용부터 정리했습니다. 반기획 출판이 무엇이며, 비용은 얼마나 부담해야 하는 건지, 출간 절차는 어떻게 진행되는 건지 등을 출판사 측에게 물어봤었습니다. 답변 메일은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습니다. 확인해 보니 작가가 부담할 금액이라는 게 그리 부담스러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전자책이어서 종이책보다 인세도 세 배 이상 높았습니다. 염려했던 것보다 아주 나쁜 제안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반나절 가량 좀 더 고민하다 보니, 계약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단 쪽으로 마음이 점차 쏠렸습니다. 출간이 간절하기도 했고 조건을 떠나서 흔치 않은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어물쩡거리다가 놓치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도 같았기에 계약의사가 있다며 회신을 하였습니다.


참 우매하게도 전, 그리 메일을 보내고 나서야 출판사에 대한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단 걸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급한 마음에 구독하고 있던 밀리의 서재(전자책 독서 플랫폼)부터 들어가서 해당 출판사가 만든 책을 검색해 봤습니다. 그런데 결과가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책들이 한눈에 봐도 대충 만든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우선 책의 기본적인 정보가 너무 성의 없이 기재되어 있었고, 20페이지도 채 되지 않는 것도 있었습니다.


가뜩이나 해당 출판사의 홈페이지와 블로그를 둘러보면서 표지 디자인이 하나같이 구린 건 익히 알고 있었는데, 밀리의 서재에 등록된 책들을 한 권 한 권 들어가서 살펴보니까 속은 더 별로였습니다. 꼭 편집을 전혀 거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원고를 발행한 것만 같았습니다. 안 그래도 밀리의 서재를 구독하면서 종이책보단 전자책을 훨씬 더 많이 읽고 있던 터였기에, 다른 전자책들과의 퀄리티 차이가 더욱 확연하게 드러났습니다. 혹시 출판사의 이름을 잘못 입력했나 싶어서 메일을 다시 확인해 봐도 틀림없이 똑같은 출판사였습니다.


아무리 제가 출간이 간절한 작가지망생이라 할지라도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그렇게 책을 만드는 곳에 저의 소중한 원고를 넘기고 싶진 않았습니다. 근데 그럼에도 망설여졌습니다. 모든 면에서 내키지 않는 출판사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치 못하고 있단 사실 자체가 언짢았습니다. 더불어 내 이름으로 된 책을 서둘러 내고 싶은 욕망에 눈이 먼 나머지, 사전조사를 꼼꼼하게 하지 않은 제 자신이 한없이 어리석게만 여겨졌습니다. 그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사이에 미처 예상치 못한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매우 좋은 기회를 제시했고 질문에 답도 충분히 줬는데, 답도 빨리 없으니 별로 출판을 진행하고 싶지가 않다. 종료하겠다.


그땐 출판사로부터 마지막 메일이 도착한 후 약 5시간이 지났을 때였습니다. 순간 카톡 답장하듯이 즉각 회신을 했어야 했나 싶었지만, 무려 출간 계약이 걸린 중요한 일 앞에서 그건 또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냥 그 출판사 자체가 이상한 곳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주고받은 메일을 처음부터 다시 살펴보니 그는 자신이 누군지 밝히지도 않았었습니다. 아마 출판사 대표님이었을 거라 짐작은 됩니다. 여하튼 출판을 진행하지 않겠다는 메일을 받고서는, 기분이 나쁘기는커녕 섣불리 계약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에게 미리 말하지 않은 것도 잘한 일이었습니다. 둘이서 김칫국을 사발째로 함께 들이켰다가 게워낼 수도 있을 뻔했습니다.


비록 출간의 기회가 날아간 건 아쉬웠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깨우치고 반성할 만한 요소가 많았던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다만 그 일이 계기가 되어 출처를 알 수 없는 복잡 미묘한 욕망이 내면에서 꿈틀거리게 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에세이 출간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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