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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Jun 20. 2024

같은 공간, 다른 세상

달보의 짧은 소설 2

2026년 4월 20일
고운햇빛촌 103동 1405호


박진감은 어제 다 쓴 초고를 퇴고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우측 하단 작업표시줄에 있는 시계로 눈이 절로 옮겨갔다. 어느덧 밤 10시 2분이었다. 그는 좀 더 글을 쓰고 싶었지만, 슬슬 하루를 마감할 준비를 해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괜히 시간 끌었다가 새벽에 일어나지 못할 수도 있을 거란 마음에 노트북을 닫고 침대 위에 누워 눈을 감았다.


그는 잠이 쏟아지는 정도로 졸리진 않았지만, 왠지 10분 이내로 금세 잠들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잠시 후 눈을 떴다. 여전히 방은 어두웠는데, 왠지 방 안으로 쏟아지는 달빛의 밝기가 이전과 다르단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머리맡에 스마트폰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3분이었다. "꿈도 꾸지 않고 잤나 보네." 그는 조금 더 잘까 고민하다가, 이내 첫 번째 알람이 약 27분 뒤에 울릴 걸 감안하여 그냥 일어나서 화장실로 걸어가 잠을 깨우기로 했다.


3분이라는 시간을 되뇌며 2분 안에 양치를 끝냈다. 그리고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 찬물로 몸을 적셨다. 면도까지 하고 나오니 아직 새벽 4시 27분이었다. 곧이어 4시 30분, 4시 40분, 4시 50분에 울릴 예정인 3개의 알람을 다 끈 다음에, 노트북 앞에 앉아 어제 쓰던 글을 이어서 쓰기 시작했다.




2026년 4월 20일
고운햇빛촌 106동 2103호


박치기는 퇴근 후에 친구들과 곱창에 소주를 곁들였다. 마음 같아선 자정을 넘어서까지 놀고 싶었지만, 본인을 포함하여 주변인들도 체력의 한계를 느낀 나머지 밤 10시쯤 서로의 집으로 각자 흩어졌다. 그는 생각보다 일찍 집에 들어와 알 수 없는 공허함을 느꼈다. 씻어야 했지만 그마저도 귀찮아 세수만 하고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아직 11시도 되지 않았으니, 최소 2,3시간 정도는 뒹굴거려도 된다고 생각했다. SNS어플을 켜고 손가락을 몇 번 휘적거렸을 뿐인데 어느덧 시간은 자정을 넘어 새벽 1시를 향하고 있었다. 침대에 누울 때만 해도 한 시간만 폰 보다가 자려고 했던 조금 전의 기억이 떠올라 약간 짜증이 났다. 그런 마음을 안고서 하던 걸 계속하다 보니 새벽 2시 3분이 넘어갔다. 이제는 더 이상 안 되겠다는 생각에 폰을 땅바닥에 집어던지듯 내려놓고 눈을 감고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그는 쉽게 잠들 수 없었다. 양을 세어도 봤지만, 몇 마리 셌는지 자꾸 까먹기만 하고 오라는 잠은 오지도 않았다. 아까 바닥에 던졌던 폰을 다시 주워서 이번엔 ASMR 수면 영상을 찾기 시작했다. 지난번에 듣던 것들은 이미 적응을 한 바람에 새로 업로드된 영상을 찾기 시작했다. 검색하는 데만 20분 정도가 지났다. 머리맡에 놓고 눈을 감기 전 시계를 보니 2시 37분이었다. 그는 살짝 위기감을 느꼈다.


잠이 잘 온다는 제목의 영상을 튼 지도 꽤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잠들지 못했다. 그렇다고 아예 정신이 멀쩡한 건 또 아니었다. 그런 생각을 한참동안 하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가 싶어 폰을 들여다보니 이미 6시 30분이었다. 출근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었다.


해가 지기 전까지 컨디션이 별로인 상태로 지내야 한다는 불편한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순식간에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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