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5. 퇴고를 거듭할수록 나아지는 글
글을 쓰다 보면 원치 않아도 저 자신과 끊임없이 마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탈고의 과정에서 전 저와 겨루기를 했다고 해야 할지, 이인삼각으로 함께 나아갔다고 해야 할지 확신이 서질 않았습니다. 어쩌면 둘 다 어느 정도의 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는 저를 이겨야 했습니다. 가령 새벽에 일찍 일어날 때가 그랬습니다. 새벽기상은 글쓰기와 함께 시작한 습관이기에 이젠 적응이 되고도 남아야 할 테지만 여전히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전날 일찍 잠에 들었어도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금세 다시 잠들기 일쑤였습니다. 그만큼 마음을 독하게 먹어야만 했습니다. 얼굴에 물 묻히기 전까지 끊임없이 울리는 '좀 더 자자'라는 내면의 속삭임을 묵살하지 못했다면 오늘의 저는 없었을 겁니다.
반면에 글을 쓸 때는 저와 합을 맞춰야 했습니다. 글쓰기는 저 혼자만의 힘으론 역부족이었습니다. 저 자신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고 나서야 겨우 한 문장 끄적일 때도 있었고, 내면의 목소리가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면 그걸 받아 적듯 써 나갈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가끔 글을 다 쓰고 나서 읽어보면 제가 써 놓고도 낯선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전 저와 전에 없던 친분을 다질 수 있었습니다.
매 꼭지마다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원고의 80% 정도까지는 퇴고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근데 그즈음은 원고를 넘긴다고 약속한 날짜를 겨우 이틀 정도 앞두고 있던 때였습니다. 남은 부분까지 다 만지려면 최소 일주일 이상은 더 필요할 것 같았습니다. 앞서 예견했던 상황이긴 했습니다. 한참 퇴고하는 와중에도 이대로라면 마감을 맞추지 못하겠단 생각을 계속 했었거든요. 그럼에도 딱히 개의치 않았던 건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시원하게 마무리 짓자고 다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우려했던 상황에 처하고 보니 그런 다짐은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만약 뭔가 진행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퇴고를 마치지 못한 거라면 그대로 원고를 넘기고 말았을 것입니다. 정말 그런 거라면 어차피 시간을 벌어봤자 크게 달라질 게 없었을 테니까요. 그런데 글은 수정할수록 괜찮아졌습니다. 퇴고를 거친 꼭지를 읽어보면 글이 환골탈태라도 한 것마냥 이전보다 훨씬 나아 보였습니다. 그러니 퇴고하지 못한 글을 가만히 놔둘 순 없었습니다. 하던 건 끝까지 매듭짓고 싶은 욕심이 났습니다(사실 당연한 일이지만요). 마무리를 제대로 짓지 않고 원고를 넘기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습니다.
다만 출판사 대표님께 시간을 좀 더 달라는 연락을 취하려니 선뜻 손이 움직이질 않았습니다. 평소 약속 지키는 걸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인 것도 있었습니다. 근데 그보다는 이런저런 매체에서 마감 기한을 넘기고야 마는 경우를 접할 때면 '나라면 저러지 않을 텐데'라는 생각을 해왔어서 그런 게 더욱 컸습니다. 어찌 보면 꼭 알량한 자존심을 세우는 것 같았습니다. 출간 계약하던 날, 최종 원고를 넘기는데 한 달 정도면 충분하다며 호언장담했던 게 떠올라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체면 차릴 때가 아니었습니다. 밤을 꼬박 새도 남은 이틀 안에 차질 없이 탈고하는 건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더군다나 시간을 투자하는 만큼의 작업량이 나온다는 보장도 없는 게 바로 글쓰기였습니다. 때문에 단 며칠이라도 시간을 더 벌어야 무사히 탈고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더 이상 물러설 데도 없었기에 겨우 용기 내서 시간을 좀 더 달란 말을 출판사 대표님께 전했습니다.
어떤 반응이 돌아올지 궁금했습니다. 미루는 건 곤란하다고 할지, 기꺼이 그러라고 할지 쉽게 예상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경우는 처음이기도 했고 제가 그런 부탁을 하게 될 거라곤 미처 몰랐기에 더 그런 것도 있었습니다. 다행히 대표님은 제 청을 흔쾌히 들어주었습니다. 그런 상황을 한두 번 접한 게 아닌 듯 제 상황을 너그럽게 이해하시는 듯했습니다. 원래는 양심상 며칠 정도만 양해를 구하고자 했으나, 대표님이 먼저 이 주 정도면 괜찮겠냐고 하시길래 덥석 물어버렸습니다. 그 정도면 조급하게 굴지 않고 작업을 순조롭게 마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그 결과, 약 한 달 하고도 보름동안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퇴고에 퇴고를 거듭한 끝에 기어이 탈고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미소가 배시시 흘러나올 정도로 막 신이 나진 않았지만, 형언할 수 없는 묘한 충족감이 내면 깊은 구석에서 차올라 온몸을 감싸는 듯했습니다. 그런 기분은 태어나서 처음 느껴봤습니다.
[에세이 출간 안내]
당장의 지금이 괜찮다면 굳이 더 괜찮아지고자 애쓸 게 아니라, 훗날의 괜찮지 않을 법한 상황을 대비하는 게 맞다고 여겼다. 숱한 우여곡절을 겪어왔고 또 이미 잘 지내고 있는 부모님보단, 가늠할 수 없는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며 꿋꿋이 잘 살아가야 할 날이 끝도 없이 남아 있는 우리가, 우리에겐 더 중요하니까.
- <신혼이지만 각방을 씁니다>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지 않기로 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