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6. 글쓰기를 시작해서 다행이다
출판사에 최종 원고를 넘기고 나면 좀 쉴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쉬기는커녕 탈고 후 곧바로 시작한 게 지금 쓰고 있는 <방구석 글쟁이의 출간 기록서>입니다. 저는 투고와 탈고하는 과정에서 앞서 출간한 선배 작가님들이 남긴 기록 덕에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분들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글도 없었을 테고 출간 계약도 다른 출판사와 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 까닭에 저도 이렇게 출간 경험을 글로 남김으로써 누군가에게 일말의 도움이라도 된다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안 그래도 글쓰기가 인생의 과업이라 여기고 있긴 합니다만, 이런 제 모습을 볼 때면 확실히 글쓰기는 '내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이젠 하루라도 뭔가를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터널에 제대로 진입한 것만 같습니다. 아마 그 터널은 제 삶이 끝날 때까지 계속 이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단언컨대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았다면 이만큼이나 글쓰기가 제 인생에 뿌리내릴 일은 없었을 겁니다. 최초로 글쓰기를 시작한 곳은 블로그였지만 제게 알맞은 무대는 브런치였습니다. 블로그가 숙제 같았다면 브런치는 의무이자 생활이었습니다. 글쓰기에 최적화된 플랫폼이 어디냐고 하면 흔히들 브런치를 많이 꼽습니다. 저 또한 그에 동의는 하는데 실은 그 근거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설명하진 못하겠습니다. 다만 최소한 저로서는 브런치를 시작한 이래로 방대한 양의 글을 써왔으니 글 쓰는데 브런치만 한 게 없다고 여길 따름입니다.
매일 한 편씩 짧은 글을 쓰는 건 글쓰기를 습관으로 들이기에 좋았습니다. 반면에 최소 10개 이상의 에피소드로 한 편의 브런치북을 엮는 건, 그러니까 긴 글을 써 보는 건 스스로를 돌아보기에 좋았습니다. 경험상 브런치북을 쓰다 보면 내면에서 갖가지 격변이 일어나기도 하고, 평소엔 잘 보이지 않던 이상한 글버릇 같은 것도 눈에 잘 들어왔습니다. 요컨대 단편 에세이를 쓰는 게 '유지'라면, 특정 주제를 관통하는 여러 편의 이야기를 하나로 묶는 건 '나아감'이 아닐까 합니다.
탈고하는 과정에서 제가 겪고 느낀 것들은 평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많은 차이가 났습니다. 좀 더 격하게 저와 다퉈야 했고, 좀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저를 받아들여야 했으며, 좀 더 큰 창작의 고통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머리가 굳은 듯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아도, 하루종일 노트북 앞에 앉아 있었는데 겨우 한 문장을 쓰는 게 전부여도, 끝을 보기 전까진 어떡해서든 버텨야 했습니다. 평일이고 주말이고 편히 쉴 새도 없었습니다. 일말의 여유를 부릴 만한 마음의 여지가 없었기에 어차피 쉬어도 쉬는 게 아니었을 겁니다.
굳이 겪어보지 않아도 책을 쓰는 게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닐 거라고는 진작부터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권의 책을 쓰는 과정에서 내면적으로 얼마나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또 그만큼 성장하게 되는지는, 직접 경험해 본 바로는 가히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숨이 턱 막히게끔 버거우면서도 가슴이 벅차오를 만큼이나 각별한 체험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잘난 것 하나 없는 제가 책을 출간할 수 있었던 비결은 여태껏 꾸준히 글을 써 온 덕분이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물론 여러 가지 상황이 운 좋게 맞물려서인 것도 있겠지만 매일 글을 쓰지 않았다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제 기억이 어그러진 게 아니라면 2022년 6월 23일 새벽에 우연히 글을 쓰기 시작한 이래로 오늘까지도 글쓰기를 빼먹은 날이 손에 꼽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글을 쓰면서 다양한 생각의 변화를 겪고 그 여파로 인한 의지가 샘솟지 않았다면, 감히 작가의 삶을 꿈꾸고 책을 써 볼 엄두는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람마다 지닌 성향과 처한 환경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 같은 경우엔 바라는 것 없이 그저 쓰는 게 좋아서 쓰다 보니 큰 힘 들이지 않고 글 쓰는 습관을 몸에 들일 수 있었습니다. 별다른 목적 없이 그저 마음에 있는 걸 꺼낸다는 생각으로 끄적였기에 오늘에까지 이르게 된 거라고 봅니다. 근데 그렇지가 않고 만약 어떤 원대한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루고자 했거나, 뭔가 특별한 것을 얻기 위해 글을 썼다면 아마 도중에 포기하고 말았을 겁니다. '그냥 하는 것'의 의미는 생각보다 깊고, '그냥 하는 것'의 힘은 생각보다 강했습니다.
평소 책을 읽다 보면 가끔 'OOO에게 이 책을 바친다'는 문구를 접할 때가 있는데, 사실 저와 관계없는 자이기도 하고 크게 공감도 되지 않았기에 무심코 넘어가곤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비슷한 상황에 닥쳐보니 왜 사람들이 기껏 힘들게 책을 써 놓고 누군가에게 바치려고 드는지 이제야 어렴풋이 알 것만 같습니다. 이 글을 쓰는 시점으로부터 두 달 뒤에 정식 출간하게 될 제 책은 고스란히 아내에게 바치고자 합니다. 만약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면 글쓰기는커녕 먹구름이 드리운 제 인생에 빛이 내리쬘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단언컨대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건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 덕분이었습니다.
비로소 탈고의 여정은 끝이 났지만 여전히 할 게 많습니다. 조만간 아내 뱃속에 있는 저희 아들이 세상빛을 보게 될 예정이라 더 정신없을 예정입니다. '책 한 권을 썼다'라는 건 끝이 아니라 꼭 시작인 것만 같습니다. 목은 여전히 마릅니다. 다작이 목표인 만큼 두 번째 책도 얼른 쓰고 싶습니다. 그래야 그나마 그럴듯한 작품을 쓰게 될 확률이 높아질 테니까요. 글쓰기에 푹 빠져 살아온 지난날들은 참 힘들었지만 곱씹어 볼수록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오늘도 자기 자신과 힘겹게 겨뤄가며 자판에 지문을 남기고 있을 모든 분들을 마음 깊이 응원합니다.
[에세이 출간 안내]
난 이만하면 됐다. 이젠 아내와 곧 태어날 우리 아이를 위해 기꺼이 헌신하며 하늘이 허락한 울타리를 넘지 않는 선에서 그들에게 내가 받은 모든 걸 돌려주리라.
34년 만에 쓰게 된 첫 책과 남은 여생의 전부를, 먹구름이 드리웠던 내 세상에 더없이 아늑한 빛을 내려준 사랑하는 아내에게 고이 바친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를 마주한 건, 생애 최고의 행운이자 영광이었다.
- <신혼이지만 각방을 씁니다> '행복의 비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