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을 책은 내가 정한다
난 뉴스를 보지 않아서 세간의 뜨거운 감자를 잘 모른다. 평생 글 쓰며 살겠다는 각오를 지닌 입장으로서는 세상만사에 어느 정도 관심을 기울일 법도 한데, 아직까진 세상만사에 그다지 관심이 가질 않는다. 내 주된 관심사는 여전히 '오늘 글을 썼냐 안 썼냐'를 벗어날 생각이 없다. 물가가 연일 치솟고 날씨가 종일 흐려도 양껏 글을 썼다면 그날은 훌륭한 날이 된다. 반면에 주식잔고에 파란 불이 빨간 불로 전환되고 뜻밖의 보너스가 통장에 꽂혀도 평소처럼 글을 쓰지 못했다면 그날은 우울한 날이 된다. 현재의 내 삶은 그렇다.
그럼에도 일말의 인간관계로나마 종종 전해 듣는 것들은 있다. 이를테면 영향력이 너무도 막강한 나머지 가만히 있어도 여기저기 카톡방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소식 같은 거. 근데 최근에 오래간만에 그만큼 핫한 뉴스거리가 하나 있었다. 바로 한강 작가님의 노벨 문학상 수상이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한강이라는 분의 존재를 몰랐는데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두말할 것 없이 실로 대단한 업적이다. 노벨 문학상이라니.
근데 난 거기까지였다.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그분을 자세히 알아볼 마음은 들지 않았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사람의 저서라고 해서 지금 읽고 있는 책들을 모조리 덮으면서까지 읽어 볼 생각도 나지 않았다. 보통의 상을 탄 게 아닌 만큼 한강이라는 사람에게 어느 정도의 호기심이 일긴 했어도, 무엇보다 난 내 할 일들을 평소처럼 해내는 게 더욱 중요했다.
한강 작가님의 소식이 온 세상을 도배한 다음 날 회사로 출근했더니, 팀장님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인사말 대신 다음과 같은 말을 건넸다.
"한강 작가님 소식 들었지? 참 대단하셔. 너 책 좋아하니까 얼른 사서 읽어봐야겠네."
"아, 아직은 별생각 없어요."
"에이 그러면 쓰나!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잖아. 그게 보통 일이야? 책 좋아하고 글도 쓰면 당연히 무조건 읽어 봐야지 않겠어?"
팀장님은 내 반응이 탐탁지 않았던 모양인지 약간의 흥분이 가미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에 난 팀장님의 말을 한 귀로 흘림과 동시에 한 가지 생각으로 머릿속을 메웠다.
'내가 왜?'
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사람의 책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좋게 볼 생각은 없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직접 읽어보지 않았으니까. 설령 대부분의 사람들이 극찬하는 명저일지라도 내겐 그닥일 수도 있는 게 바로 책이었다.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칸에 진열되어 있는 책을 구입했다가 당한(?)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물론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것과 대형서점 베스트셀러에 등극하는 게 같은 맥락은 아니지만, 내가 아닌 남들의 평가에 의한 것들이라는 공통점은 부인할 수 없었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사람의 책이라면 아무래도 다른 책들보단 읽게 될 확률이 좀 더 높긴 하겠으나, 노벨 문학상을 받은 책이라고 해서 무조건 읽어 볼 생각은 없었다 난.
팀장님은 그런 내게 '태도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그러면서 본인도 모르는 사이 은밀하게 날 설득시키려고도 하는 것 같았다. 그런 팀장님을 보면서 바로 후회했다. 대충 듣고 싶은 답 내어주고 조용히 넘어갈걸. 아님 차라리 침묵으로 응수하는 게 더 나았을지도.
팀장님이 내게 건넨 말들에 담긴 의중대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사람의 책을 의무적으로 읽어야 했다면, 난 내 서재에 담긴 모든 책을 뒤로하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전들만 우선적으로 탐독해야 할 터였다. 모르긴 몰라도 최소한 내 세계관에서 그건 자연스럽지 못한 일이다.
나도 한 명의 한국인이자 글을 즐겨 쓰는 사람으로서 한강 작가님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싶다. 근데 그래서 더욱더 그분을 있는 그대로의 그분으로 대하는 게 맞다고 본다. 나중에 그분의 책을 읽게 된다면 한국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사람의 책이 아닌 한강이라는 작가가 쓴 책으로서만 읽고 싶다. 그게 한 명의 독자로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예의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