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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Nov 18. 2024

내 손으로 거절하게 될 줄이야

letter 5


가끔 '청천벽력'이라는 단어를 접할 때마다 저런 말은 언제 쓰이나 싶었는데, 니가 친구를 데리고 온다 했을 때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지'라는 말이 뇌리를 번쩍 스치더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나로선 상상하기 힘든 제안이었거든. 제안이라는 표현이 맞는진 모르겠지만 여튼 그래.


혹시 친구들에게 날 같이 봐 달라고 했을까. 아니면 눈치껏 떨어지라는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정말 순수하게 친구들과 같이 놀고 싶어서 그랬을까. 굳이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씩이나 데리고 와서. 뭐, 세 가지 중 뭐가 됐든 간에 일단 내 입장에서는 우울한 통보가 아닐 수 없더라. 주말에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연락을 받고서 주말까지 내내 설렜는데, 당일에 갑자기 친구들을 데리고 온다고 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 원래부터 같이 오려고 했던 건지 당일날 즉흥적으로 친구들이 따라붙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라도 끼고 싶긴 했지. 어쨌든 너를 처음 본 날 이후로 계속 만나고 싶었으니까. 겨우 반나절 만에 한 번꼴로, 그것도 단답형으로 답장 보내는 니 번호를 일말의 미련도 없이 지우던 때와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마음이 커졌는지.


근데 있잖아. 그럼에도 차마 거절할 수밖에 없더라. 기다리고 기다리던 너와의 만남이었어도 니 친구들에게 양보할 수밖에 없었어. 왜냐하면 그때가 난 마지막일 것 같았거든.


왠지 두 번째 만남에서 강한 인상을 남기지 않으면 어지간해서는 너와 세 번째로 볼 일은 없을 거 같았어. 둘이서 만나도 니 마음을 건드릴 수 있을지 미지순데 니 친구들을 데려오면 승산이 없다고 생각했어. 그 사이에 낀다는 건 죽으러 전쟁터에 나가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으니까. 난 너만 보면서 너랑만 얘기하고 싶지, 니 친구들까진 보고 싶진 않아. 당장에는 말이야.


근데 말이 쉽지. 너한테 못 간다고 하는데 이게 맞나 싶더라. 제 발로 기회를 걷어차는 거 같고. 고집부리는 거 같기도 하고. 누군지도 모르는 니 친구들이 괜히 원망스럽기도 하고.


난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 데 있어서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는 게 최선이라고 믿어. 그런 만큼 솔직한 내 마음을 네게 보여주고 싶어. 널 만나고 어떤 심정의 변화가 있었는지, 널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리고 난 어떤 사람인지. 비록 이제 겨우 한 번 본 사이이긴 했어도 나쁘지 않은 전략이라고 생각해. 앞으로 만날 기회가 한 번 뿐일지도 모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이나.


여튼 그래서 그날 못 갔어. 처음 보는 사람들 사이에 껴서 네게 이도 저도 아닌 모습만 보여줄 바에는 그냥 안 보고 마는 게 낫겠더라고. 설사 너와 그대로 끝이 난다 한들.


참 별 일이 다 있네. 널 언제 볼 수 있을까 오매불망 기다렸는데 내 손으로 직접 널 거절하게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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