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ter 6
너와 만나기로 한 당일에 약속을 취소했을 때 가장 우려했던 건 그날부로 연락이 끊기는 거였어. 물론 니가 난데없이 친구 두 명을 데려온다길래 안 간 게 아니라 못 간 거긴 했지. 그럼에도 친구들을 데려오는 게 혹시 나보고 나가떨어지라는(?) 눈치를 주는 건가 했어. 그래서 연락이 안 올 수도 있겠다 싶었지. 다행히 최악의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네.
소개남 평가단으로 친구들을 부른 것.
눈치껏 떨어지라고 친구들을 부른 것.
정말 같이 놀려고 친구들을 부른 것.
이 세 가지 중에 순수하게 같이 놀려고 친구들을 불렀다는 게 가장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나중에는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 싶더라. 너랑 연락을 주고받다 보니까 그냥 그런 느낌이 들더라고. 내가 너무 쓸데없이 생각이 많았나 봐. 너에 대해 아는 거라곤 키가 크고, 잘 웃고, 백화점에서 일하고, 텐션이 보통 사람들을 웃도는 수준이라는 것 정도 말고는 없는데도 아직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사람이라는 게 느껴져. 희한하게도.
기분 탓인가. 너와 연락을 주고받는 텀이 짧아진 것 같아. 단답형으로 오던 카톡도 조금씩 개선(?)되어 가는 것도 같고. 여태까지 일어난 상황만 놓고 보면 오히려 더 길어질 법도 한데. 뭐, 나야 좋지. 근데 그렇다고 해서 감히 그린라이트라고는 이제 생각하지 않으려고. 넌 아무것도 한 게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벌써 몇 번도 당한 기분이 들거든. 역시 김칫국을 함부로 들이켜서는.
처음 만난 날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일주일이 지났네. 늦어도 이번 주가 지나기 전엔 한 번 봤으면 좋겠다. 물어보기가 겁나긴 해. 그래도 이거 다 쓰면 보자고 말은 해 봐야겠어. 조건도 확실하게 걸고. 아주 당연한 얘기지만 너와 나 단 둘이서 보는 걸로. 그리고 이번엔 술을 마시자고 할 거야. 카페에서 보면 왠지 밍밍할 거 같고, 술집 정도는 돼야 보다 속 깊은 얘기를 주고받을 수 있을 것 같거든. 넌 어떤 마음가짐으로 날 만나러 올진 몰라도 난 이번이 마지막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름 필사적이야.
앞선 편지에서 말했듯 소개로 사람을 만나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야. 이쯤 되니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일처리(?)들을 할지가 궁금하네. 모르긴 몰라도 나처럼 이렇게 한 번 만나고 편지 쓰는 정신 나간 놈은 없을 거 같은데. 아닌가. 세상엔 별의별 사람이 다 있으니 나보다 더한 놈도 있긴 하겠다.
이번 주 주말쯤 니가 나랑 보기로 한다면 99.9%의 확률로 내가 지금 쓰고 있는 것들을 받아보게 될 거야. 니 반응이 궁금한데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 편지들을 만나는 와중에 줄 지 아니면 헤어지면서 줄 지는 못 정했거든. 아마 상황 봐 가면서 줘야 될 것 같아. 어떻게 될진 나도 잘 모르겠다.
여하튼 많이 당황할 거 같으니 미리 사과할게. 두 번째 만남이 마지막일 확률이 매우 높다는 직감을 차마 무시할 수가 없었어. 그래서 뭐라도 해야겠더라. 비록 한 번 본 게 다이지만 이런 글을 쓸 만큼이나 니가 어떤 사람인지 좀 더 천천히 알아보고 싶거든. 널 떠올리며 일어나는 생각들을 종이에 옮겨 적다 보니 마음이 더 커진 것 같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