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ter 7
니가 보내는 카톡, 며칠 사이에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 같아. 좋은 쪽으로. 하루에 카톡이 채 열 번도 오지 않는 것도 모자라 단답형으로 오던 거에 비하면, 이젠 연락하는 빈도수도 늘어난 듯하고 아예 단답형도 아니니까. 고작 그거 하나 갖고 그린라이트라고 확신할 순 없지만 내 입장에선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호재야. 그래서 주말에 보잔 말을 또 한 번 꺼내는 게 그리 어렵진 않더라. 그리고 지난 주말에 니가 갑자기 친구들 데려오는 바람에 우리 선약이 깨진 거에 대해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것도 같길래 왠지 보자고 하면 본다고 할 것 같았어. 그럼에도 아쉬운 건 여전히 내쪽이어서 거절당하는 거에 대한 불안감이 서려 있었는데 다행히 니가 흔쾌히 만난다고 해서 한시름 내려놨지. 꼭 큰 고비 하나를 넘긴 기분이더라.
난 여태껏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랑 만나고 헤어지다 보니 한 번의 만남에 이리도 간절해 본 적이 없었어. 정말 이만큼이나 애가 탄 적이 있었나 모르겠네. 서로 멀리 사는 것도 아닌데 사람 한 번 만나는 게 이리 힘들 줄이야. 근데 또 어찌 보면 그게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 불과 일주일가량 전만 해도 전혀 다른 세계선을 살고 있던 너와 내가 갑자기 부딪히게 된 거니까. 이쯤 되니 소개팅으로 만난 인연이 연인이 된다는 건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 같기도 하네. 애초에 그리 될 운명이라거나.
아, 혹시 민영이가 말했으려나? 보석에 널 팔아넘긴 거라고.
한날 민영이한테 게임 설치하면 보석 300개를 준다는 게임 메시지가 왔었어. 내가 알기로 보통 그런 메시지는 여러 명한테 한꺼번에 보내서 별도로 부탁까진 하지 않는 거로 알고 있거든. 근데 민영이는 개인톡까지 왔더라고. 자긴 보석을 꼭 받아야겠으니까 게임 좀 설치해 달라며.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어. 보통 게임 메시지는 읽씹하기 마련인데(안 친한 친구가 그런 메시지 보내면 바로 차단하기도 하고) 개인톡까지 보낸 정성을 봐서라도 설치를 해줘야겠더라고. 마침 지하철 타고 이동 중이라 여유도 있었고. 그러다 순간적으로 장난기가 발동한 거야. 그래서 이런 답장을 보냈어.
'여자 소개해주면 깔아줄게.'
그걸 보내자마자 게임은 이미 설치하고 있었어. 나도 게임을 좋아해서 한편으로는 그 절박한(?) 심정이 이해갔거든. 그런데 그런 내 문자를 받고 바로 너한테 연락했나 봐. 중간 과정도 없이 바로 니 번호를 넘기더라니까. 말은 내가 먼저 꺼냈지만 정말 예상밖의 일이었지. 민영이랑 평소에 연락을 자주 하는 사이도 아니었는데. 고등학교 때 어느 복지관에서 열린 캠프에 친구 따라갔다가 만난 게 민영이거든. 그나저나 니 친구, 게임에 참 진심인 것 같더라. 고작 보석 따위에 친구를 팔아넘기다니. 물론 그 덕에 널 알게 됐지만.
이번 일로 느낀 게 있어.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항상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는 것. 민영이한테 여자 소개해달란 건 즉흥적인 장난에 불과했지만, 사실 난 평소에 맘 속으로 누굴 만나게 될까 항상 궁금해했었어. 또 그리 늦지 않은 시기에 누군가를 만나게 될 거라고도 믿었고. 근거는 없지만 못 만날 것 같진 않더라. 그래서 기다렸지. 그 사람이 나타나기를.
그래서 말인데 내가 민영이한테 느닷없이 여자 소개 해달라는 말을 던진 게 이제 와서 보면 우연은 아닌 것 같아. 평소 누군가를 만나고 싶단 생각을 내내 하고 살았기에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말 같거든. 뭐, 미친놈 소릴 들을 수도 있었겠지만 어쨌든 성과는 있었잖아.
어디서 들은 말인데 준비된 우연은 필연이래. 그게 지금 같은 상황에 들어맞는 말이 아닐까 싶다. 넌 어떻게 생각할까. 나중에 물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