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라이킷 40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썸을 탈 바에 이왕이면

letter 8

by 달보 Nov 28. 2024


비록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이렇게 몰래 편지를 쓰고는 있지만, 우리가 정석적인 루트(?)를 밟았더라도 내 전략은 다르지 않았을 거야. 상대방을 진지하게 알아보고 싶단 마음이 든 이상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보여주는 것. 난 그게 한 인연과 연인으로 발전하는데 최선이자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거든. 내가 나를 보여주는 것 그리고 상대방이 자신의 모습을 내보이려면 전제 조건이 사귀기로 약속한 사이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 소개팅을 탐색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지.


마음이 한쪽으로 약간이라도 쏠렸다면 질질 끌어봤자 좋을 건 없다고 봐. 가까운 가족 관계도 속내를 알 수 없는 게 사람인데 어떻게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을 고작 몇 번 보고 알 수 있겠어. 사귀는 건 시작일 뿐이지 어떤 결과라고는 생각 안 해. 그러니까 '날 보여줄 테니 너도 너를 보여줘.'라는 부탁 같은 제안을 난 네게 하고 싶은 거야(설마 앞선 편지를 보고도 예상 못한 건 아니겠지?). 대놓고 사귀자는 말 같아 보여도, 물론 그런 뜻이 다분히 내포된 말이긴 하지만 그래도 일반적인 고백과는 결이 다르다고 생각해. 달리 말하면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겠네.


'썸을 탈 바에 이왕이면 사귀고 보자.'


이런 내가 자칫 연애 못해서 안달 난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게 내 솔직한 마음이야. 진심을 전할 수만 있다면 그 정도 리스크쯤은 감수할 수밖에. 그리고 난 이런 마인드로 접근하는 게 되려 더 천천히 다가가는 길이라고 생각해. '사귀기 전에 상대방의 모든 걸 판단하려 들지 않고, 사귀면서 알아가겠다.'라는 태도가 서려 있으니까.


주변에서 지인의 소개로 사람을 만났다가 흐지부지된 경우를 많이 봤어. 들어보면 다들 하나 같이 갖가지의 핑계를 들먹이며 썰을 풀지만, 내 귀엔 그저 '10점 만점 중에 8점 이상인 사람이 아니어서 별로다'라는 걸로밖엔 들리지 않더라. 그들 앞에선 침묵으로 답했지만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이제 막 처음 본 사람에게서 본 것들이 진정 본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또 그 사람이 내보인 속내가 본심(本心)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난 감히 아니라고 생각해. 왜냐하면 인간인 이상 그럴 리가 없거든.


진심은 보여주고 싶다고 보여줄 만한 그런 간단한 게 아닌 것 같아. 고작 너보다 4년 더 살았지만 겪어보니 그렇더라. 제대로 된 진심은 함께 하는 시간이 누적되면서 나도 모르게 비치는 것들, 그중에서도 일부에 불과하다고 생각해. 더군다나 상대방에게 내보이는 진심은 상대방이 진심이라고 받아들이겠다는 조건도 필요하고. 이처럼 진심에 대한 건 진심으로 가볍고도 간단한 게 아닌 것 같아. 근데 서로 사귄다는 건 진심을 주고받는데서 일어나는 신뢰를 기반으로 유지하는 관계잖아.


자칫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 확률이 결코 적진 않지만, 이렇게라도 내 마음에 있는 솔직한 생각들을 옮겨 적어서 너한테 보여주려고 해. 대뜸 진지하게 만나보자는 사람이 대충 어떤 유형의 인간인지는 너도 파악이 필요할 테니.


넌 어떤 사람일까. 모르긴 몰라도 진심을 꽁꽁 감추는 편은 아닌 것 같더라. 그래서 이렇게 평소에 자주 생각나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점점 끌리는 걸지도 모르겠다.

이전 07화 준비된 우연은 필연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