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보 Dec 05. 2024

만약 우리가 이어지지 않는다 해도

letter 10



이 편지를 쓰는 이유를 요약 정리하자면 이래. 난 널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은데, 넌 내가 싫진 않지만 딱히 좋은 쪽으로 생각하지도 않는 것 같길래, 이번 주 주말에 보는 게 왠지 마지막 만남일 수도 있을 거란 생각에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소위 썸을 타면서 알아가는 것도 흥미진진하고 좋지. 근데 뭐 썸은 나 혼자 타나. 아무리 봐도 너랑 썸 타는 건 힘들어 보였어. 넌 일하느라 바쁘기도 바쁘고 약속도 워낙 많은 데다가 나한테 크게 관심도 없는 게 느껴졌거든. 하여 쓸데없는 말로 카톡 몇 번 주고받고 일주일에 겨우 한 번 보는 것 정도로는 승산이 없다고 생각했어. 그러다 보니 편지를 쓰게 된 건데 그래도 이 정도로 많이 쓰게 될 줄은 몰랐네. 이렇게 많은 편지를, 그것도 이런 내용으로 채워 쓴 적은 태어나서 처음이고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 같아.


널 겨우 한 번밖에 보지 못했지만 그 한 번만으로도 이리 많은 내용을 편지지에 옮겨 적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내가 써놓고도 그러네. 이 진심 어린 편지들이 부디 내가 상상하는 그림을 현실로 맞이할 수 있게끔 끌어당겨줬음 좋겠다. 비록 탐탁지 않은 상황이 일어난다 해도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긴 해. 이 정도면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니까. 물론 아주 많이 아쉽기야 하겠다만, 이 이상으로 안 되는 거면 그건 인연이 아니라고 보는 게 맞겠지. 살다 보니 무리해서 좋을 건 별로 없더라.


우리, 내일이면 보겠네. 내일 난 최대한 발톱을 감출 생각이야. 첫 만남 이후로 널 자세히 알고 싶어지기도 했고, 편지를 쓰다 보니 그 마음이 많이 커지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건 내 사정이니까. 보름 동안 얼굴 한 번 본 것 말고는 고작 카톡 몇 번 주고받은 게 전부인데 다짜고짜 들이대면 되려 일만 그르칠 거라고 생각해(사실 한편으로는 지금 내가 하는 짓거리(?)가 보통 이상으로 들이대는 것 같기도 한데).

 

그럼에도 널 만나면 나름 최선을 다하겠지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담백하게 있다 오려고. 어차피 내 진심은 이 편지들에 담았고 그 이상으로 통제하려는 건 욕심이니까. 널 만나러 가는데 편지를 까먹고 들고 가지 않았거나, 널 만나는 와중에 편지를 까먹어버리는 게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인데 설마 그럴 일이 일어나진 않겠지. 왠지 헤어지면서 니 손에 슥 쥐어줄 거 같긴 한데 어떻게 될진 만나봐야 알겠다.


고마워. 이만큼의 편지를 쓰게 된 것만으로도 나한텐 좋은 경험이었어. 누가 판을 짜놓지 않고서야 이런 상황을 두 번 다신 겪지 못할 거야. 너 같은 사람도 더는 없을 거고, 시간이 지나면 나도 그만큼 많이 바뀔 테니까. 오직 이 시절에 지금의 상태로 마주친 너와의 마찰이 빚어낸 추억이니까.


혹시 이 편지가 우리 인연의 끝점일지도 모르니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을 남기며 이만 줄일게.


어디서든 잘 지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