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가 관심을 두게 된 식물이 생겼다. 이름은 아이비, 생긴 모습은 초록잎이다. 화분을 사던 날을 잊지 못한다. 로컬푸드에 갔다가 처음에는 화려한 색감을 자랑하는 꽃화분을 하나 사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꽃이 시들면 이별할 준비도 없이 헤어지는게 싫었다. 그래서 고른 것이 수경 식물과에 속하는 아이비였다.
식물을 키우는 데 똥손인 내가 화분을 골라놓고 불안해 하자 화원 주인이 아이비를 건네면서 주인을 배신하지 않는 식물이 아이비라고 말했다. 생명력이 강하다는 그 말에 힘이 실린 듯 아이비는 사무실 내 책상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매일 진한 연둣빛 새 잎을 틔우며 나를 설레게 한다.
물을 어떻게 줘야 할지 공부하다보니 이렇게 작고 여린 것이 뿌리를 내리고 잎을 틔우는 일에도 우주의 모든 기운이 함께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경이롭다. 그렇게 지금 우리 주변은 바햐흐로 긴 겨울잠에서 깨어난 식물들이 서로 기지개를 켜는 봄을 정신없이 맞이하는 중이다.
현란한 도심의 어디서든 피어나는 여린 꽃이지만 오가는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을 만큼 힘이 세다. 메마른 나뭇가지 어디에 숨어 있다가 얼굴을 들이미는지 생각할수록 신기하다.
꽃 한송이 피우는 일에도 바람이 불고 비를 맞고 햇살이 살을 찌워주는데 하물며 사람사는 곳은 어떠하랴. 때론 내가 너의 바람이 되고 때론 네가 나의 봄비 되어 혈관을 타고 내리며 영양분을 실어 나르다가도 긴장의 보폭을 맞추지 못하고 감정이 북받칠때가 허다한데 하늘과 땅 사이 무한한 그 공간에 살포시 기대어 공존하는 우리는 어떠한가.
겨울 내내 눈 한번 휘날리지 않고 비 한방울 오지 않은 가뭄속에서도 매화가 조심스레 눈을 뜨고 그에 질세라 노란 산수유도 고개를 들고 상춘객들을 맞는다. 아파트 한 귀퉁이 자투리 땅에 심겨진 목련나무도 하얀 목화솜같은 꽃눈이 햇살에 방긋 입을 열고 긴 숨을 토한다. 잎보다는 꽃을 먼저 내 보내기로 한 약속을 지키느라 꽃피우는 데만 열중하는 데 얼마전 끝난 대선리그가 떠오른다.
우리는 왜 지키자고 약속한 수많은 도리와 예의와 법규들을 지키지 못한채 어긋나는데만 앞장서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국민을 위한다고 떠드는 정치권 사람들이 걸리면 니탓이요 안걸리면 그냥 묻어가니 할말이 없다.
현재도 물론이요 과거의 역사를 돌아봐도 늘 무한한 경쟁속에서 자신들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넘어뜨리고 딛고 일어서려는 이기심이 세상을 어지럽게 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미얀마의 내전과 러시아가 벌인 상식밖의 전쟁놀이로 많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삶의 터전에서 부서지고 있는 걸 보면 인간과 인간, 나라와 나라사이의 끝없는 욕심이 겁이 난다.
아이비에서 눈을 들어 창밖을 보니 봄맞이하려 애쓰는 가로수들이 보인다. 나무들은 새 힘을 모으기 위해 나뭇가지에 붙어있던 마른 낙엽들을 다 떨궈내고 새봄을 맞이할 준비가 다된것 같은데 나는 미련스럽게도애착을 못 끊고 부둥켜 안고 살아간다. 그러다보니 할일도 많고 늘 바쁘다. 그런 나를 보며 나무들이 무어라고 수군거릴지 귀가 간지러운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