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 Sep 17. 2019

33. 단어 사전 pt.3

방탄소년단 덕후 일기 33


 오후 1시 30분. 서둘러 왔더니 예정 시간보다 30분 일찍 도착했다. 너른 주차장이 텅텅 비어있다. 강연장인 대강당 입구 가장 가까운 곳에 차를 주차하곤 가방에서 종이 뭉치를 꺼냈다. 오늘은 학부모 대상의 3시간 진로 강연이 예정돼 있었고, 이 강연의 강연자가 바로 나였다. 


 500석 규모의 대강당 좌석이 속속 채워졌다. 예정된 시간을 5분 정도 넘겨 강연이 시작됐다. 사회자의 소개가 끝난 뒤 마이크를 건네받고 파워포인트 파일이 연계된 커다란 화면 옆에 섰다. 주제는 진로 선택의 핵심이었고 소재는 내 덕질의 역사였다. 오늘 나는 3시간 동안 이 주제와 소재를 적절히 섞어 아이들을 대변하는 동시에 학부모들을 안심시키고, 그 안에서 진로 선택의 핵심을 설명해야 했다. 선택의 몫은 엄마나 아빠가 아닌 아이의 것으로 넘겨주도록,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부모의 판단으로 재단하지 않도록, 다만 동기 부여와 목표 의식을 인지할 수 있도록 적절한 관심과 대화를 해주시기를 몇 번이고 강조한 시간이었다. 


 강연 후 상담 비슷한 것을 요청한 몇몇 분과 얘기를 마친 뒤 나와 차에 시동을 걸었다. 오랜 시간 혼자 말을 했더니 목이 타 생수 한 병을 그대로 원샷했다. 태풍이 북상하고 있다더니 회색 빛으로 무겁게 내려앉은 하늘에서 기어코 빗방울을 뿌리기 시작했다. 외부 활동 신청서를 제출하고 나온 터라 회사에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오후. 비가 오기 시작하자 집으로 돌아가 낮은 조도의 조명을 켜놓곤 노래를 들으며 와인을 마시려는 욕구가 더욱 강해졌다. 아직 몇몇 카페에서 정국이 컵홀더를 껴주는 이벤트를 하고 있는데. 몇 카페를 둘러볼까 하다가 망설임 없이 내비게이션에 집 주소를 입력했다. 오늘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했으니, 집에 가서 마시고 싶은 만큼 마시고 쉬어야겠다 싶어 져서.


 "강연은 잘 끝났어?"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엄마가 나를 맞이해주었다.


 "세 시간을 어떻게 채우나 했는데 그래도 끝내긴 했어."


 냉장고로 달려가 냉수를 벌컥벌컥 마신 뒤 엄마 옆에 자리를 잡았다. 알아서 잘하겠거니 하고 내 어떤 덕질에도 부정적인 말 한마디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엄마다. 무료 콘서트를 보기 위해 공연장 앞에서 밤을 지새우겠다던 나를 위해 학교에 전화를 해주고 공연장에 직접 데려다주었던 엄마다. 믿음을 기반으로 한 적당한 무관심과 방조는 내가 하고 싶은 걸 무한히 하면서 스스로 책임을 지는 능동형 인간으로 자라게 했다. 엄마는 더 궁금한 것 없다는 듯 무심히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렸다. 덕질의 참맛을 아는 사람으로 클 수 있게 해 줘서 고맙다는 말은 쑥스러우니 몰래 삼켰다. 방탄소년단을 향해서는 좋아한다 사랑한다 보라한다 말은 잘하면서 엄마한테는 그게 잘 안된다.


 휴대폰 화면을 켜 위버스에 접속했다. 휴가 중인데도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는 석진이의 센스 만점 답글을 확인하고 브링 더 소울 다큐 예고편을 봤다. 오랜만에 본 보야지 북유럽 편을 다시 봐 볼까. 


 아이스 버켓에 와인을 담아 노트북 옆으로 끌어 왔다. 대부분 봤던 영상들이지만 그 안에 깨알같이 보지 않은 영상들이 몇 숨어 있다. 쪼르륵. 잔에 와인을 따르곤 영상의 재생 버튼을 클릭했다. 의미를 덧붙여 새로운 단어를 탄생시켜가는 이 덕질이 새삼스레 더욱 소중한 밤이다.




 1. 근지너대



 암전이 된 무대. 붉은 조명이 켜 지고 현악기의 묵직한 선율이 교차되며 흘러나온다. 카메라의 흐릿한 포커스가 점점 선명해지자 블링블링한 무대 의상을 입은 지민이 뒤편에서 걸어 나오고 있다. '내게 말해' 노래의 첫 소절이 시작되며 지민이 자신의 솔로곡 <Lie>의 퍼포먼스를 시작한다. 웃음 장벽이 0에 수렴하는, 너무 웃으면 눈이 붙어 앞이 하나도 안 보인다며 귀엽게 불평하는 망개 지민이는 그 즉시 사라졌다. 불안하고 위태롭고 상처 입어 금방이라도 어떻게 될 것 같은, '구해 달라' 온몸으로 외치는 인물로 분한 그 어떤 한 사람이 서 있을 뿐이다. 


 무대 위에서의 지민이는 정말 대단하다. 몸짓 하나, 표정 하나, 심지어 머리카락 한 올까지 지민이의 움직임에 맞춰 연기하는 듯하다. 모든 세포가 무대 위에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재정립되어 새로운 형체를 만들어낸 느낌으로 발휘된다. 지민이가 아닌 무대를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만드는 지민이의 솔로곡 <Lie>와 <Serendipity>를 환호보단 감탄으로 바라보게 되는 이유다. 지민이만 할 수 있는 퍼포먼스다. 이런 지민이를 매일 앓기에도 모자란 법. 어떤 한 팬이 이런 지민이를 한 네 자로 함축했다. 근지너대. "그러니까 모든 말을 다 차치하고 말이죠, '근데 우리 지민이 너무 대단하죠.'" 


 앞머리를 댕강 잘라 캡 모자를 쓰니 꼭 초등학생처럼 짓궂은 얼굴로 귀염 뽀짝 하게 <작은 것들을 위한 시>의 안무를 하는 매직샵 무대의 지민이와 투어 회차가 늘어날수록 꽉 맞게 떨어지는 안무의 합이 덜 해지는 것 같다는 스태프의 말에 변명의 여지가 없다며 바로 수긍하는 지민이와 지민이의 마니또 선물로 직접 만든 <약속> CD를 건넨 호석이에게 잔뜩 떨리는 목소리로 "너무 감동이에요"하며 몇 번이고 고마움을 표현하는 지민이를 보면 모든 수식어를 빼고 이렇게 말하게 된다. 근지너대.


  방탄소년단(BTS) 지민, 솔로곡 '약속' 1억 6천만 스트리밍 앞둬... '근지너대' / 2019.07.10.

  [2018 MAMA] 방탄소년단 지민 '근지너대' / 2018.12.15.


 이젠 이렇게 기사에도 쓰이는 말이 된 네 글자. 한 팬이 혹시 근지너대의 뜻을 알고 있냐고 묻자 곰곰이 생각하더니 '근심 지민이 너구리 대머리' 아니냐던 지민이를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러니까 모든 말을 다 차치하고 말이죠, 정말 근데 우리 지민이 너무 대단하죠. 




2. 민빠답



 발목이 드러나는 슬랙스에 로퍼를 신고 다리를 꼰 채 가만히 멤버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조용히 소주를 마신다. 소주잔을 들어 입에 가져다 대는 손가락은 희고 곧다. 안 듣는 듯 무심해 보이지만 사실 모든 이야기에 다 귀 기울이고 있다. 눈을 쌜쭉하게 뜨며 불안해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하다가도 티키타카 오가는 말장난에 어깨를 들썩이며 웃는다. 자신이 태형이와 정국이에게 사랑한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한다. 그러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푹 숙이며 부정하지 않는다. 품이 크게 입은 녹색 상의는 몸 선이 드러나는 까만 슬랙스와 대비되어 그의 댄디함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방탄 회식> 편을 오늘 또 본 모든 이유다.


 민빠답은 '민윤기에게 빠지면 답이 없다'의 준말이다.


  https://brunch.co.kr/@cantabilej/19


 구구절절 썼던 브런치 편으로 민빠답의 설명을 대신한다.


 이건 제가 산증인입니다.

 민빠답. 무섭습니다. 조심하세요.




3. 야채튀김소년단



 한때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던 사진이 있다. 스웨덴 버스정류장 사진으로 마치 손을 뻗어 공간을 확보한 것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넓게 서 있는 사람들을 찍은 사진이었다. 상대방과 나 사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심리적 공간 '퍼스널 스페이스'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였다. 타인이 침범하면 불쾌하게 느껴지는 거리가 바로 이 퍼스널 스페이스라고 한다. 적당한 거리감. 아주 친한 사이라도 지켜야 하고 또 무의식적으로 지키고 있는 이 선. 그러나 방탄소년단에게 퍼스널 스페이스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말 같다. 


 넓은 소파 놔두고 1인용 자리에 둘이 꼭 끼어서 앉는다거나, 멤버 허벅지를 베고 눕는다거나, 편하게 떨어져 앉아도 될 걸 무릎을 겹쳐 놓을 정도로 붙어있다거나, 손깍지를 끼곤 신이나 흔든다거나, 게임만 했다 하면 하이파이브하고 안고 기대고 부딪히는 것이 방탄소년단에겐 일상이다. 매일을 붙어 있으면서도 이렇다. 쉬는 날 함께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낚시를 다녀오기도 하고, 영화를 보러 다니는 그룹답게 스킨십에 스스럼이 없고, 스스럼이 없는 것 이상으로 거리감이 없다.


 이런 방탄소년단을 야채튀김소년단이라고 부른다. 꼭 고구마, 당근, 양파 등이 서로 뒤엉켜 붙은 채 한꺼번에 튀겨진 야채튀김 같다고.


 <Map of the soul:Persona>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설명하는 라이브 방송 중에 남준이는 본인의 작업실 컴퓨터 옆에 항상 두고 있다는 사진을 직접 보여주었다. 연습을 막 끝낸 듯 홍조로 적당히 붉어진 얼굴에 세팅되지 않은 머리, 편안한 옷차림을 한 일곱 멤버의 사진이었다. 남준이는 왜인지 모르게 너무 귀여워서 제일 좋아한다는 이 사진을 <작은 것들을 위한 시> 공개 방송에 참여하는 팬들에게 역조공 선물로 준비하기도 했었다. 


 한 프레임 안에 들어오기 위해 남준이와 정국이는 앞줄에서 편안하게 다리를 뻗었고, 뒷줄엔 윤기 지민 태형 석진 호석의 순으로 무릎을 굽혀 앉았다. 회색 후드를 머리에 쓴 윤기가 오른손으로 브이를 한 채 지민의 어깨에 기댔고 지민과 태형이는 턱에 댄 브이자를 하며 붙어 앉았다. 그 옆의 석진이는 꽃받침을 한 채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정국이의 허리에 손을 감았다. 사랑의 총알을 쏘고 있는 호석이와 손가락을 볼에 콕 찍은 남준이 역시 몸을 옆, 뒤 멤버에게 몸을 붙인 채였다. 


 땀냄새가 나건 말건, 살이 닿건 말건 '이렇게' 함께 있음이 숨 쉬는 것처럼 당연한 듯 옹기종기 붙어 모여 앉은 멤버들. 그리고 이 모습이 너무 귀여워 작업실에 항상 놓아두는 리더가 있는 한 야채튀김소년단이 눅눅해질 일은 없을 듯하다. 




4. MC 자두



 3주년 팬미팅 머스터(Muster)를 준비하는 연습실. 안무를 맞춰보고 있는 멤버들 사이 휴대폰 속 가사를 읽으며 열심히 연습하는 태형이가 있다. 이번 머스터에서 태형이가 준비한 무대는 무려 <Cypher pt.3>.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싸이퍼 타령(!)을 했던 싸이퍼 성애자 태형이의 꿈이 실현되려 하고 있었다. 


 슈가의 옷까지 빌려 입고 리허설 무대에 섰다. 곧 <Cypher pt.3>에 맞춰 리듬을 타기 시작한 태형이. 불분명한 발음으로 어설픈 랩을 쏟아내지만 표정과 마음만은 이미 RM, 제이홉, 슈가다. 세상 진지하게 래핑을 하는 태형이를 보던 랩 라인 형들은 흥을 주체 못 하고 덩실덩실 리듬을 타는 태형이를 보며 웃음을 참지 못한다. 혹시 소리 내어 웃으면 기가 죽을까 입을 가리며. 


 정규 2집 <Wings> 발매 기념 브이 라이브 방송에서 남준이는 <Cypher pt.4>를 아주 간단하게 소개했다. 이번 싸이퍼의 특징은 태형이가 좋아한다고. 그 말에 최고라고 응수한 태형이는 신이 나서 어깨춤을 췄다. 팬사인회 현장에서, 대기실에서, 무대에서, 형들의 랩에 가장 크게 반응하는 태형이에게 MC 자두란 이름이 붙었다. 날렵한 태형이의 얼굴형에서 따온 '자두'에 힙합 수식어 'MC'를 붙인, 래퍼 태형이에게 하사된 이름이다. 


 그동안 방탄소년단을 무시하고 질투했던 헤이러들(Haters)을 향해 '여지껏 무시해줘서 고맙다'며 '덕분에 스타디움 돔 빌보드 많은 것들을 얻었다'고 통쾌하게 대답한 <땡>이라는 곡이 2018 페스타 기간에 공개됐다. 랩 라인 남준, 윤기, 호석이 만든 <땡>은 국악적 요소가 섞인 중독적인 비트에 시원한 가사가 합해져 공개 즉시 팬들의 엄청난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 <땡>을 처음으로 선보일 머스터 무대 준비를 위해 모인 연습실. 그 연습실에서 제일 신난 사람은 첫 무대를 준비하는 랩 라인 멤버들이 아닌 바로 지민이와 태형이었다. 연습을 더 해달라 조르고, 랩 하는 형들 옆에서 가사를 따라 부르며 잔뜩 흥이 올라 어쩔 줄을 몰라하며 춤을 췄다. 마이크를 들고 추임새를 넣는 사람도 지민이와 태형이었다.


 2019년 매직샵. 공연이 중반쯤 이르러 태형이 '가장 열심히 준비한 무대'라는 다음 곡을 소개했다.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향한 태형이. 그렇게 흘러나온 음악이 바로 <땡>이었다. 골격이 자란 어른의 얼굴이 되어, 내리깐 시선으로, 어깨를 양쪽으로 흔들며 리듬을 타며, 박자에 맞춰 멋들어지게 손을 움직이며, 자신의 파트를 만족스럽게 끝마쳤는지 미소를 씨익 흘리는 태형이의 <땡>은 <Cypher pt.3>를 불렀던 그때보다 훨씬 좋아진 실력이었다. 


 MC 자두의 성장은 싸이퍼에서부터 땡까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다음 MC 자두 무대가 기대되는 부분이다. 매직샵 무대는 MC 자두가 일부 찢었다. 스웩. 




5. 아레미온느



 <Love yourself>에 이어 <Speak yourself> 월드 투어까지 쉴 새 없이 달려온 방탄소년단이 한 달이 넘는 휴가에 들어갔다. 이렇게 장기간의 휴가는 멤버 전원에게 처음 주어진 휴식이었다.


 멤버들이 휴가는 잘 보내고 있을까, 휴가 기간에 무얼 하고 있을까 궁금해하던 그때. 남준이의 목격담이 들려왔다. 오스트리아 빈이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문화유산과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을 감상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하며 다음 여행지로 오스트리아를 고민해보려는 때, 또다시 남준이의 목격담이 들려왔다. 이번엔 이탈리아 베니스였다.


 남준이를 생각하면 진부한 이 표현이 떠오른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평소에도 미술관에서 작품 감상하는 것을 즐기는 남준이는 여유가 생기면 미술관에 자주 방문하는데 방문하는 미술관의 범위가 전국구다. 한가람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원주 뮤지엄 산, 동대문 디자인플라자 등 <Map of the soul:Persona> 앨범을 발매하고 해외 투어를 도는 와중에 국내에서 틈틈이 찾은 곳만 해도 이렇다. 투어 중엔 그 나라, 그 도시의 미술관도 당연히 찾는다. 작가의 마음이 되어 작품을 그렸던 때를 상상해보고 작가의 생애에 맞춰 작품이 변화하는 모습을 살펴보는 것이 '재미'라는 남준이답다고나 할까.


 미술관을 가는 것 외에도 남준이가 즐기는 것들은 다양하다. 종종 찾는 곳은 한강. 시간이 날 때면 자전거를 타고 한강 너머를 조망하곤 한다. 힙합에서부터 인디까지 스펙트럼 넓게 음악을 듣고 본인이 좋다고 생각되는 곡들은 팬들에게 자주 추천하다. 책도 읽는다. 대기실에서 쉬는 동안 틈틈이 활자를 읽어 낸다. 팬들과 같이 <BTS World> 게임도 해보고, 맛있는 식당을 찾아가기도 한다. 당시 화제였던 드라마 <스카이 캐슬>도 챙겨봤다. 팬카페나 트위터, 위버스에 마음을 담은 긴 글을 작성해서 올리기도 한다. 음악과 책, 영화와 드라마, 음식과 글을 넘나드는 취미를 즐기는 남준이를 보며 이런 의문이 샘솟는 건 당연하다. 남준이는 대체 시간을 어떻게 쪼개 쓰는 거지? 하고. 하루를 누구보다 바쁘고 알차게, 널리 쓰는 남준이에게 팬들은 시간을 거꾸로 돌리며 꽉 찬 하루를 보내는 해리포터 속 헤르미온느에 빗대어 아레미온느(RM+헤르미온느)란 별명을 붙여주었다.


 베니스 산 마르코 광장 노천카페에서 올려다본 하늘이, 공용 자전거를 타고 다녔을 빈의 거리가, 베니스 비엔날레와 빈 미술관이, 가림 없이 다녔던 곳곳이 남준이에게 많은 것을 남겼으면 좋겠다. 주어진 시간을 누구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우리 아레미온느 답게 이번 휴가 정말 잘 보내고 있는 것 같아서 무척이나 기쁘다. 우리 남준이의 다음 가사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라고 마무리했는데. 밀라노, 베니스, 빈에 이어 코펜하겐을 다녀온 남준이의 사진이 다음날 업로드됐다. 정말 아레미온느의 영역은 예측의 범위를 늘 가뿐히 넘는다. 




 6. 삼겹살



 9월 1일. 생일은 정국이가 맞이했는데 그 누구보다 바쁘고 의미 있고 활기찬 주말을 보낸 아미들. 각자 정국이의 생일의 여운을 아쉽게 맞고 있었을 9월 2일 저녁. 방탄소년단 트위터 알람이 연속해서 울리기 시작했다. '밥 도착하기 전 흥얼거림' '흥얼거림 2' '흥얼거림 3' '조금 격한 흥얼거림(라스트)' 네 개로 나뉘어 올라 온 트윗은 배달 어플로 삼겹살을 주문한 뒤 저녁 식사를 기쁘게 맞이하는 정국이의 자작곡, 무려 삼겹살 송이었다.


    아미 지금 뭐 하고 있나요. 저는 지금 밥 먹으려 해요. 삼겹살을 시켰어요. 여러분도 같이 삼겹살 해요. 

    이거 먹고 나서 인증샷 남길게요. 여러분도 한 장씩 남겨줘요. 저는 이것 다 먹고 트윗하고 바로 자러 갈 

    거예요 여러분도 맛있게 먹고 꿀잠 자세요오오오. 꿀잠 자~ 세요.


 그리고 그 이후 올라온 사진 한 장. 숟가락으로 두 입 정도 파먹은 계란찜과 삼겹살 세트, 사이드로 추가한 듯한 꿀떡 튀김과 칡물냉면이 가지런히 놓인 사진이다. 인증샷을 생각하지 못하고 계란찜을 먹다가 아차차 하곤 열을 맞춰 사진을 찍었을 정국이가 자연스레 상상됐다. 사진을 찍고 난 뒤 볼이 터지게 삼겹살 쌈을 먹었을 정국이의 모습까지. 


 지난 설. 맛있는 것 많이 먹고 즐거운 설 보내라는 짧은 메시지와 함께 정국이 방에서 찍은 것으로 보이는 영상이 함께 올라왔다. 카메라를 켜놓고 상추에 쌈무, 삼겹살, 마늘을 야무지게 올린 큰 쌈을 입 안에 구겨지게 넣곤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심각한 표정으로 우걱우걱 쌈을 먹는 정국이의 영상이었다. 가족들과 설음식을 먹기는커녕 숙소로 추정되는 곳에서 배달 음식을 먹는 것이 안쓰럽기는커녕, 맛있는 삼겹살이 있어서 마냥 행복해 보였다. 정국이에게 삼겹살은 일상의 기쁨 같은 메뉴다.


 작년 영국 현지 인터뷰에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묻는 질문에 오겹살과 삼겹살이라고 진지하게 말했던 정국이는 부산 매직샵 공연이 끝난 뒤 다시 한번 국내 배달 서비스와 삼겹살을 찬양하기에 이르렀다. 자신의 고향인 부산의 곳곳이 보라색으로 물들었던 그 날, 호텔방으로 돌아온 정국이는 잔뜩 상기된 얼굴을 한 채 라이브 방송을 시작했다. 축배를 들자며 챙긴 와인을 마시며 라이브 방송을 시작한 정국이는 지금껏 봤던 그 어떤 모습보다 수다스럽고 귀여운 막둥이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였는데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은 삼겹살이며, 일주일 내내 먹을 수 있다고, 스마트폰만 있으면 이런 삼겹살이 내 눈 앞으로 배달이 되는 마법 같은 일이 있을 수 있냐며,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게 자랑스럽고 뿌듯하다고 몇 번이고 강조하며 말을 했다. 이쯤 되면 정국이에게 삼겹살은 소울푸드라고 할 수 있다. 


 행복하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생일을 보낸 다음날 주문한 삼겹살을 기다리며 기분 좋게 흥얼거렸을 정국이를 향해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동. 


 자, 배달 어플을 켠다. 검색창을 열어 삼겹살을 검색한다. 정국이가 시킨 메뉴도 괜찮고 아니어도 괜찮다. 삼겹살이면 된다. 결제를 완료한 뒤 배달이 올 때까지 정국이처럼 흥얼거린다. 정국이가 마셨던 비고르 와인이 함께 하면 더욱 좋고 없어도 무관하다. 삼겹살이 도착하면 맛있게 먹는다. 우리는 정국이와 영혼이 통했다. 다이어트는 내일부터 하자, 뭐 까짓 껏.



매거진의 이전글 32. Happy JK Day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