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 독립 일기 07
오픈 시간에 딱 맞춰 도착했으나 웨이팅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식당 대기 공간에서 더위를 피하던 중 인스타그램을 통해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인테리어 앱 <오늘의 집> 매니저 누구임을 밝히며, 집과 관련된 사진과 정보를 <오늘의 집> '온라인 집들이'에 게시해 볼 생각이 없냐는 제안의 내용이었다.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게시물엔 간단히 제이쓰홈이란 태그 하나만 쓰고 있어서 검색이 될 리는 없는데. 어쨌든 나도 리모델링하기 전에 제일 먼저 찾아볼 정도로 대중화된 곳에서 '소개하고 싶고', '가구와 소품 하나하나 감각적이고 예쁜' 집으로 보였다니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리고 '요즘 가장 영향력 있는 사이트에서 연락이 오다니, 우와' 보다 '아, 지인들이 집을 예쁘다고 한 게 빈말은 아니었구나, 친분 없는 시선으로 객관적으로 봐도 괜찮은 구석이 있구나' 했다.
브런치에 독립 일기를 다섯 편을 썼고, 랜선 집들이 라방이나 인스타그램 게시물 등을 통해 집에 관한 얘기를 많이 늘어놓은 터라 글 자체의 분량이 많지 않은 <오늘의 집> 온라인 집들이 글은 쉽게 작성할 수 있을 것 같아 제안을 수락했다. 마감일도 머지않은 날짜로 잡았다. 차례가 되어 들어간 식당에선 주문한 와규 솥밥을 게눈 감추듯 먹었다. 남들은 식욕을 잃어가는 무덥고 습한 여름이라는데, 나는 독립한 이래로 잠도 입맛도 부쩍 늘었다.
회사로 돌아왔더니 직원 한 명이 고열 증상으로 코로나 19 검사를 받으러 갔으며 모두 조기 퇴근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밥 먹을 때 빼곤 줄곧 착용하고 있던 마스크를 괜히 한 번 만지작거리곤 바로 짐을 챙겨 집으로 향했다. 차창 너머의 행인들은 모두 눈만 빼꼼 내민 채 마스크를 쓰고 있다. 하얀 이를 드러내며 복작복작 시끄럽게 웃고 떠들던 세상이 정말 옛날 일 같다.
문 앞에 배송된 식재료를 챙겨 집 안으로 들어왔다. 사람을 접촉하는 일을 줄여야 하는 이런 때, 독립이 좋긴 좋다. 창문을 열어 일정 시간 환기를 한 채 간단히 반찬을 만들었다. 휴대폰 속 레시피를 중간중간 확인하는 서툰 손길로 감자채 볶음과 멸치볶음을 만들고 나니 거의 40분이 흘러 있었다. 햇반 하나를 데우고, 동생이 가져다준 미역국을 한소끔 끓였다. 아직 점심이 채 소화되지 않은 것 같지만 갓 볶아진 음식 냄새에 식욕이 돌아 이르게 저녁을 차려 먹었다. 힐끗 배를 내려다봤다. 확실히 밥 양이 늘었다.
소화도 시킬 겸 숙제도 해결할 겸 노트북을 챙겨 테이블에 앉았다. 식은 죽 먹기일 줄 알았던 <오늘의 집> 집들이 글은 글 첫머리에 필수로 들어가야 하는 자기소개란 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쓰고 지웠다가, 다시 쓰고 지웠다. 취향을 내포하면서도 개성을 드러내는 단어는 머리를 싸매도 떠오르지 않아 쓰고 또 지웠다. 취준생일 땐 어쩜 그렇게 있어 보이는 척 후루룩 자기소개를 잘도 썼을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이 같은 상투적인 문장을 쓰고 말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지역의 한 방송국에서 근무 중인 30대 직장인입니다.
자괴감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손가락을 수습해 다시 노트북 키보드 위에 놓았다. 글빨보단 정보성 내용이 더 중요한 글이다, 마인드 컨트롤하며. 독립을 결심한 계기, 각 공간을 꾸밀 때 생각했던 마음, 짧은 소회 그리고 각 가구와 소품의 구입처 리스트를 정리했다.
다듬을 새 없이 문장들을 계속해서 써 내려갔다. 현관이나 거실, 침실이나 욕실 등 공간을 특정하고 나니 '내가 어떤 생각으로 이 가구를 골랐더라', '왜 이렇게 배치했더라'에 대해 쓰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냥 내 얘기를 쓰면 되었다.
오탈자나 문장을 다듬는 건 내일 하기로 하고 노트북을 덮었다. 짧은 글인데 마무리하고 나니 벌써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다. 와인 한 잔의 유혹보다 몸을 뉘이고픈 욕구가 나른하게 휘감는다. 팔을 위로 쭉 뻗어 스트레칭을 한 뒤 그대로 침실로 돌아왔다.
그래도 어쨌든 일단 쓰겠다는 마음이 있고, 의자에 무겁게 앉은 엉덩이만 있으면 글은 써진다.
아래는 그렇게 작성을 완료한 <오늘의 집> 온라인 집들이 게시글 중 일부다. 고료를 받은 건 아니지만(고료는 따로 없고, 사용 가능한 포인트 5만 점을 아이디에 넣어준다. 뭐, 어차피 뭘 바라고 쓴 글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에디터가 숙고하여 일부 수정하고 편집했을 게시물이니 내가 쓴 글은 일부만 이 곳에 남겨두고 나머지는 <오늘의 집> 링크로 대신한다.
이 깔끔한 상태의 집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기를. 생활감과 로망이 적절히 섞인 상태를 쭉 지속하기를 언젠가의 내게 간절히 요청하며.
(중략)
지금의 집을 찾게 된 과정은,
일 년에 서너 번 해외여행을 다니는 것과 덕질이 유일한 취미였던 저는 풍족한 라이프 스타일을 유지하기 위해 최대한 오래, 본가에서 버틸 생각이었습니다. 바이러스로 세상이 마비되기 전까지는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업무들이 줄줄이 캔슬되는 바람에 업무는 지지부진하지, 여행은 기약이 없지, 외부에서 지인을 만나는 것도 부담스럽지, 덕질마저 순탄치 않지, 맨날 붙어있는 집과 가족은 지겹지... 그렇게 답답한 일상 속의 돌파구로 저는 독립을 결정했습니다. (꽤 그럴싸해 보이는 이유지만 이제 '혼자 좀 살아야지' 하는 나이가 되긴 했어요.)
원래 살고 있던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고 싶진 않아 집 근처 부동산을 찾은 당일, 저는 단박에 이 집을 찜했습니다. 비포 사진을 보면 '대체 왜?'란 생각이 들진 모르겠지만, 소형 마트가 내려다보이는 뷰와 환한 채광, 그리고 작은 평수에 비해 넓게 빠진 침실이 무척 마음에 들었어요. 20년 가까이 된 구옥이다 보니 처음부터 전체 리모델링은 생각하고 있었기에 전체적인 느낌을 봤습니다. 이미 짐이 다 빠진 빈 아파트라 확인이 편했던 것도 있었어요. 그리고 독립 한 달 차 소감은, 탁월한 선택이었다-입니다. 그냥 집에만 있어도 행복해요.
집 콘셉트를 잡을 땐,
여러 여행지에서 사 온 기념품과 소품이 자연스레 드러나는 공간, 여러 색감과 텍스쳐가 지루하지 않게 믹스 매치되면서도 오랫동안 지루하지 않을 공간으로 꾸미고 싶었습니다. 포인트는 가구나 소품으로 줄 예정이었기에 리모델링 콘셉트는 화이트와 우드, 가장 베이직한 톤으로 진행했습니다. 앞, 뒷 베란다를 모두 확장해 사용 공간을 넓히고 오래된 등 박스를 뗀 거실 천장은 목공사로 보강한 뒤 매립등으로 교체하고, 주방에 연결된 작은 방의 미닫이 문과 전체 문턱을 없애고 강마루를 이어지게 깔아 넓어 보이고자 했습니다. 계약 전부터 업체와 충분한 대화를 나눴고, 리모델링이 진행되는 동안 제가 고른 가구와 가전 사진을 공유하여 그에 맞춰 의견을 주고받는 등 만족스럽게 전체 공정을 마무리했습니다.
(중략)
https://ohou.se/projects/36456/detail?affect_type=ProjectSelfIndex&affect_id=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