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 독립 일기 09
우리가 알고 있는 신데렐라의 결말은 이렇다.
"신데렐라는 왕자님과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출판사별로 번역이나 단어 선택의 차이로 문장이 조금씩 다를 수 있어도 답은 똑같다. 백마 탄 왕자가 짠 하고 나타나 지옥 같던 삶에서 신데렐라를 구원해냈다는 것. 그것도 왕자가 살고 있는 부유한 삶의 터전으로. 신데렐라 콤플렉스란 단어는 여기에서 비롯됐다. 아름다운 왕자님이 여기 있는 나를 발견하고 선택해주었으면, 이 세계에서 나은 저 세계로 옮겨주었으면 하는 일종의 복권 당첨 기대.
그런데 과연 신데렐라는 왕자님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을까.
왕자의 백마에 함께 올라 타 성에 내리는 순간, 마법이 풀린 평범한 차림새를 멋쩍게 내려다보며 만지작거리게 되진 않았을까. 익숙한 걸음으로 성을 걸어 나가는 왕자의 등을 낯설게 바라보진 않았을까. 팔 닿을 일 없이 멀리 떨어져 앉은 식탁에서 복잡하고 어려운 식사 예절을 따라가지 못하진 않았을까. 내 의지와 상관없이 참석해야 하는 외교 자리의 거추장스러운 드레스가 갑갑하게 느껴지진 않았을까. 아주 가끔 쯤은 새언니가 뭐하고 사는지 궁금해지진 않았을까. 살아온 환경이 달라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쌓여 왕자와의 대화가 줄어들진 않았을까.
신데렐라뿐이 아니다. 외딴 성의 야수를 선택한 벨도, 난쟁이와 떨어진 백설공주도 마찬가지다. 모든 동화가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류로 끝을 맺는 건 그 이후 지루하게 이어질, 지지고 볶는 삶의 대서사시를 감히 그려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신데렐라가 왕자와 말다툼을 하는 순간, 야수와 백설공주가 각각 갇힘과 음식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해내지 못하는 순간, 각 동화는 '어린이를 위하여 동심을 바탕으로 지은 이야기'란 본질에서 벗어나게 된다. 신데렐라와 왕자가 지지고 볶고 지낼 유구한 생활의 역사는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란 문장 속에 영원히 갇히고 말았다.
3개월 전, 나는 독립 6개월 차의 소회를 글로 풀어낸 뒤 제목에 완전할 완(完) 자를 붙였다. 볼 장 다 봤고, 생활에 안정을 찾았으니 이쯤이면 독립 일기를 마무리해도 되겠단 생각에서였다. 집을 알아보고, 고치고, 꾸미고, 살기 시작한 스토리를 쓰고 나니 이제 더 쓸 말이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지난 독립 일기를 마무리했다. "독립 일기 첫 편에 썼던 문장을 다시 가져와 변형하며 <제이 독립 일기>를 마무리한다. 독립? 까짓 거, 했다. 했다, 까짓 거, 독립!" 하고.
신데렐라의 삶이 왕자와 성에 입성한 순간부터 제대로 시작이듯 내 독립도 '까짓 거'라고 생각한 이후부터 진정한 시작이었다. 매일 조금씩 새롭게 발견한 독립 이야기를 인스타그램이나 메모장에 기록해오다가 결국 다시 브런치를 찾았다. 이전 글의 완전할 완(完) 자를 슬며시 삭제하고.
독립에 완결이 있을 리가 없고 나는 신데렐라가 아니며 내겐 백마 탄 왕자도 없다. 한마디로, 지지고 볶는 제이 독립 일기를 이따금씩 기록해 나가겠다는 말이다. 본론에 비해 서론이 참 길었다.
1. 혹시와 유난
독립 직후 지인들이 보내 준 축하 메시지들을 정수기 옆 타일에 가지런히 붙여두었다. 정수기 앞에서 물을 내려받고 잠깐 서서 물을 마실 때, 나는 엽서에 촘촘하게 적힌 그 문장들을 읽고 또 읽는다.
첫 정수기 점검을 위해 중년 여성 직원이 집을 방문했다. 고인 얼음을 빼내고 필터를 교체하는 것은 다소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틀어놓은 뉴스 채널의 소음에 의지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점검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점검이 마무리되고 간단한 설명을 해주던 직원이 "집이 깨끗한 게 신혼부부 집인 줄 알았는데, 독립한 거였네요" 라며 요즘 젊은 여성들은 멋진 삶을 살아가는 것 같다며 이런저런 말을 이어갔다.
적당히 대꾸했지만 내 이름과 전화번호, 집 주소를 아는 사람이 내가 '혼자 사는' 것까지 알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못내 께름칙했다.
퇴근 후 옷을 갈아입고 넷플릭스 목록을 넘기던 어느 저녁,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정수기 점검을 위해 방문 가능한 일정을 묻는 전화였다. 이번엔 젊은 남성 직원이었다. 평일의 환한 점심시간으로 날짜를 잡았고, 전화를 끊는 동시에 정수기 옆에 붙여놓은 메시지들과 내 단독 사진 액자, 방탄소년단 굿즈들, 그리고 현관에 놓인 신발들을 모두 보이지 않게 정리했다.
집 앞 상호명이 찍히지 않게 조심하고, 블라인드와 커튼을 꼼꼼하게 닫고, '혹시'란 두 글자가 주는 위협을 걱정하고, '유난'을 떨어야 하는 필수 불가결함을 내내 달고 살아왔음을, 그리고 집 앞 상호명이 찍히지 않게 더욱 조심하고, 블라인드와 커튼을 더욱 꼼꼼하게 닫고, '혹시'란 두 글자가 주는 위협을 더욱 걱정하고, '유난'을 더욱 떨어야 하는 필수 불가결함을 내내 달고 살아야 함을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2. 사람, 못 고친다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 한 달간 혼자 살았던 적이 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마당이 있는 2층 주택에서. 더 나은 생활을 위해 아파트로 이사가 결정되었는데 땅에 발 붙이고 살고 싶다던 할머니 덕에 집을 그대로 남겨놓은 덕이었다. 당시 나는 집에서 멀지 않은 전시장에서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고, 아르바이트 계약이 끝날 때까지 그대로 살기로 했다. 살아온 2층 주택을 '집'으로, 이사 갈 아파트는 '아파트'로 확실히 분리해 말하던 시절이었다.
30년이 넘게 살아온 동네를 떠나고 싶진 않았다지만 막상 식구들이 빠진 집에 머무는 게 싫으셨던지 할머니는 집과 멀지 않은 고모네 댁에 대부분의 생활을 의탁하셨고, 나는 혼자 밥을 챙겨 먹고 집과 마당을 정리하고 꼼꼼히 문단속을 하는 날들을 보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름 독립의 프리뷰였다.
집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전시장과 멀지 않은 것도, 혼자 지내보는 것이 신난 것도 사실이었지만 마지막까지 혼자 집에 남아있었던 건 태어난 순간부터 이사 한 번 없이 지내온 터를 훌훌 떠나는 것이 영 섭섭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정을 떼어내는 속도가 늦되는 편이라 우리 집과 이별하는 애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가족들은 편리한 아파트에 익숙해져 이사 후 집에 한 번도 찾아오지 않는 동안, 나는 필요 없는 짐과 꼭 챙겨가야 할 짐과 다시 찾아올 빌미를 위해 남겨야 할 짐을 정리했다.
익숙함에 안주하는 것이 편안한 사람에게 도전을 강요할 수도,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에게 단체생활을 주입할 수 없는 것이다. 타고난 성정과 자라난 성장이 세월에 다듬어져 온 인간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독립을 마음먹기까지 오래 걸린 사람이 내 집에 정을 주기 시작하자 본가를 방문하는 숫자가 현저히 줄었다. 내 집을 '집'으로, 엄마 집을 '본가'로 확실히 분리해 말하기 시작한 시점이다.
잠들기 전 현관문 2중 잠금 하기, 출근하기 전 보일러 외출로 돌려놓기, 마신 다음날 아침 와인잔 세척하기, 매일 반신욕 하기. 내 집에 맞춘 새 생활 습관들이 하나씩 생겨난다. 대문이 잘 잠겨 있는지 확인해야 잠에 들었던 그때처럼 현관문 2중 잠금을 하고 나서야 잠에 들 나의 집. 내 집에 맞춘 새 생활 습관을 만들어, 이 습관들에 익숙해지면서 살아갈 것 같다.
사람, 고쳐 쓰지 못한다지. 다만 새 방식을 붙여나갈 뿐이다.
3. 아파트는 로또다
아파트는 로또다. 요즘 모든 사람의 관심이 초집중된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층간소음 없는 윗집, 무덤덤한 아랫집, 곰팡이와 결로 없는 벽지, 이중주차 스트레스 없는 주차장, 가벼운 목례를 하고 지내지만 익명성은 보장되는 이웃 등. 모든 것이 마음에 쏙 드는 아파트를 구하는 확률이 로또와 같아서다.
집을 구하면서 가장 신기했던 점이 속도였다. 모든 게 빠르고 빨랐다. 보통 금액을 쓰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여러 집을 둘러보고, 그중 마음에 드는 집을 고르고, 집주인과 상의하고, 가계약과 계약을 진행하고, 전입신고를 하고, 등기 이전을 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고작 한 달 남짓. 집값이 오를 동네인지, 저녁에 주차 난은 없는지, 근처에 편의 시설은 충분한지 등은 조금만 발품 팔면 알 수 있는 정보들이나 밤늦게 층간소음이 들리는 건 아닌지, 생활에 불편함이 있는 건 아닌지, 가구를 빼고 나면 곰팡이가 잔뜩 슬어있는 건 아닌지, 아파트 계단 청소는 주기적으로 되는지, 옆집엔 누가 사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니까 일단 계약을 하고 돈을 지불하고 입주를 해야만이 알 수 있는 진실들이다.
집을 리모델링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내 돈 쓰고 스트레스받는 일이 리모델링, 인테리어란 말이 허튼 말이 아니다. 실리콘 마감이 제대로 되었는지, 조명 위치가 제대로 잡혔는지, 내가 요구한 자재들이 들어온 건지 현장에 한 번씩 들러 체크도 해주어야 한다.
하는 것 없이 피곤해 일찍 침대에 누웠다. 옅은 협탁 조명 하나를 켜고 깨끗한 천장을 멍하니 바라봤다. 당초 리모델링 예상 기간보다 마무리까지 일주일 늦춰진 것, 문턱 아래 홈에 실리콘 마감이 안 되어 있어 두 번 더 사람을 불렀던 것, 파란 펜 자국을 대충 실리콘으로 발라놓은 도배지를 새 도배지로 변경해달라 요구한 것을 제외하면 그나마 리모델링이 수월하게 지나갔고, 가끔씩 구슬이 굴러가는 것 같은 소음과 분기에 한 번 정도 어린아이들의 발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제외하면 아주 조용한 위층에 주중엔 집을 대부분 비우는지 주말이 되어서야 문에 붙은 전단지가 치워져 있는 옆집과 이사를 나가 조용하게 비워진 아래층을 생각하면 로또까진 아니어도 스피또 복권 정도 당첨되었다 쳐도 될까.
엘리베이터나 계단, 아파트 기둥이나 아래층 등을 제외해서 생각하면 공중에 떠 있는 사각의 불안정한 공간, 이게 집인가도 싶다. 문을 열면 땅이 아닌 난간이 보이는 부유浮遊한 위치.
그런데 집에서 운동 하나 안 하고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 보거나 혼자 와인이나 마시고 일찍 잠드는 나를 만날 아래층이 제일 로또 아닌가?
4. 와인에 진심이에요
코로나 시대에 독립을 하니 혼자 있는 시간이 무척 늘었다. 여럿이서 모여 떠들썩하게 저녁을 먹는 일도 거의 없고, 여행을 하거나 카페를 찾거나 산책을 하는 일도 거의 없다. 원래도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 집순이였는데 진정 파워 집순이로 거듭났다.
원래부터 좋아했던 와인을 그래서 더욱 좋아하게 됐다.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글도 쓰고 만화책을 봐도 시간이 남으니 자연스레 와인을 꺼내오는 것이다. 홈술 열풍에 와인 수입액이 최고를 달성하는 중이니만큼 와인을 예전보다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곳들이 주변에 많아졌고, 맛집으로 유명한 식당들은 웬만해선 배달이 다 가능하니 와인 한 잔을 꼭 곁들이게 되는 것이다. 또 와인이냐며 잔소리하는 엄마도 없고, 취기가 오르면 바닥에 그대로 드러누워도 괘념치 않을 수 있으니. 최근 발매된 어느 책 제목 그대로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70병 정도 보관이 가능한 와인 셀러가 포화 상태가 되었다. 나무 렉 하나를 뺐는데도 와인 쌓이는 속도가 더 빠른 탓이다. 최근엔 직구도 시작했다. 열흘이면 프랑스 론 지방의 와인 셀러에서 내 집 앞으로 와인이 도착한다. 세금과 배송료를 포함한 와인 가격과 국내 판매가를 비교하며 직구가 이득인지 아닌지를 계산하는 것이 하나의 재미가 되었다.
언젠가 있을 좋을 날을 미리 상상하게 하는 샴페인도, 진한 오크향이 매력적인 부르고뉴 샤르도네도, 묵직하고 기름지지만 육류와 최상의 마리아쥬를 표현하는 나파 밸리 카베르네 소비뇽도, 달달한 리치 향이 매력적인 알자스 게뷔르츠트라미너도, 언제 어디든 실패 없는 말버러 소비뇽 블랑도, 옅은 루비 색부터 오감을 자극하는 피노 누아도 와인 셀러에 차곡차곡 쌓여간다.
월급의 대부분을 대출금 상환과 와인 구입에 쓰고 있다. 다음 달엔 더 큰 용량의 와인 셀러를 구입할 예정이다. 아무렴, 대출과 카드값 빵꾸만 안 나면 되는 거지 뭐.
5. 모순의 공존
집에 지인을 부르고 싶다가도 마냥 혼자 있고 싶다. 혼자 마시는 와인이 지겹고 영양가 없는 수다가 그리워 사람을 초대해놓곤 고요를 만끽하고도 싶다. 음성 통화로 10분이 넘게 통화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 는 조카가 너무 보고 싶다가도 장난감을 잔뜩 담은 가방을 메고 찾아온 조카가 얼른 돌아갔으면 하기도 한다.
모든 기준이 나의 '내킴'에 달려 있다. 점점 더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간다.
신데렐라와 관련해 몇 해 전, 짤막하게 글을 쓴 적이 있다. 신데렐라가 왕자를 다시 만나게 한 건 신데렐라의 미소도, 함께 춘 춤도, 신데렐라를 데려 온 마부가 아닌 흘린 유리구두였다고.
인생은 예기치 않은 흘림으로 인해 예상치 못하게 흘러간다.
모든 것이 완벽하지 않을 때, 물꼬가 트인다.
음, 신발을 조금 헐렁한 걸 신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