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 독립 일기 06
역시 아인슈타인이다. 시간은 상대적이다. 분명 어제 같았는데 독립한 지 어느덧 한 달이 되었다.
가장 큰 변화는 목적지가 집으로 수렴하는 일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일단 퇴근 후 곧장 집으로 직행한다. TV를 켠 뒤 욕조에 물을 틀어 따뜻한 물이 욕조의 반쯤 차게 기다린다. 그다음 옷을 갈아입고 창문을 연 뒤 청소기를 돌린다. 반신욕을 마치고 나오면 열어놓은 문을 닫고 에어컨을 튼 뒤 간단히 밥을 챙겨 먹는다. 이따금씩 문 앞에 배달돼 있는 식재료들을 정리하기도 한다. 인터넷 가입 특전으로 한 달간 무료 시청이 가능한 영화 목록 중 하나를 선택해 보거나 유튜브를 연결해 시청한다. 그마저도 질리면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그러다 보면 벌써 잠에 들 시간. 사실 별 거 없는 일상이지만, 그 별 거 없는 일상을 즐기려고 독립을 했다.
퇴근 무렵, 여동생이 저녁 준비를 많이 했다고 본가에 들러 밥을 먹고 가라는 연락을 해왔다. 맛집으로 유명한 집 앞 족발집에서 김치를 샀고, 수육으로 오겹살을 삶았단다. 아직 밥솥을 사지 않아 집에 가는 길에 간단히 샌드위치라도 사서 들어가야 하던 차에 반가운 연락이었다.
무심하기도 하지. 독립한 이래로 처음 오는 본가였다. 이랬었나 싶다. 내 방은 이렇게 좁았고, 욕실은 이렇게 정돈이 안 돼 있었나 싶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조카 장난감에, 쏟아져있는 책들까지. 식사가 준비되는 동안 팔을 걷어붙이고 청소에 나섰다. 욕실 타일 사이사이를 솔로 문지르고 휴지통을 비웠다. 부산스럽게 나를 따라다니는 조카를 조수로 부르며 책과 장난감을 정리했다. 김치냉장고 위에 어지러이 놓여 있는 물건들을 치웠고, 베란다에 쌓여있는 짐들을 한쪽에 모아 정리했다. 새 종량제 봉투 하나가 꽉 묶여 나왔다. 일단 현관문 앞에 놓아두고 씻고 나오니 막 삶아 나온 수육이 김을 모락모락 내며 식탁 위에 세팅됐다. 제대로 입맛이 돌았다.
식사를 얻어먹은 대신 설거지를 했다. 포르투갈에서 사 왔던 뽈뽀 통조림이나 와인 마개, 시카고에서 사 왔던 마요네즈 소스통 등 내가 아니면 누구도 손대지 않는 것들 몇 가지를 챙겨 집으로 돌아왔다. 고작 한 달만에 거기가 아닌 여기가 내 집이 되었다. 손댈 필요 없이 깔끔하게 정돈된 집을 둘러보니 안정감이 느껴진다.
몇 번의 집들이와 SNS를 통해 독립에 대한 감상을 묻는 질문을 꽤 받았다. 그때마다 나는 똑같이 얘기했다. '그냥 원래부터 이렇게 살았던 것 같다'라고. 그냥 퇴근해 집에 돌아와 이렇게 혼자 시간 보내는 내 집이 원래부터 있었던 것 같다고. 정수기에서 뽑아낸 얼음에 찬물을 가득 담아 시원하게 들이키며 거실과 침실의 옆면을 바라봤다. 커튼 뒤에서 은은하게 비추는 저녁 어스름의 빛에 포인트 등의 노란 색감이 집 전체를 따뜻한 빛깔로 감싸고 있다. 본가에서 잔뜩 땀을 빼고 바라보는 내 집이라.
"와, 나 진짜 오지다"
뿌듯한 마음 금할 길 없어 발을 동동 굴렀다. 독립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자기만족이다.
물론 현실은 현실이고, 독립에 마냥 장점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독립 한 달 차, 내가 느낀 독립의 장점과 단점을 생각해본다. 지난 주말 실컷 마신 와인병을 한 곳에 정리하며.
장점 하나, 자유
독립을 결정한 가장 큰 이유. 내가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내가 밥을 먹고 싶을 때 밥을 먹고, 내가 책을 읽고 싶을 때 책을 읽고, 내가 영화를 보고 싶을 때 영화를 보고, 내가 와인을 마시고 싶을 때 와인을 마시고 싶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완벽히 내 수중에 놓는 것'. 독립은 자유를 갈망할 때 일어난다.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그 자유가 현실로 실현 중일 때, 그리고 그것을 불현듯 자각할 때 '독립 정말 잘했구나', 실감 나게 와 닿는다.
원래도 집순이였지만, 요즘 들어 독립을 안 했다면 어땠을까 싶을 정도로 파워 집순이가 됐다. 출근에의 부담이 없는 금요일 저녁. 퇴근 후 집으로 곧장 돌아와 이미 봤지만 또 봐도 좋은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영화 하나를 선택해 틀고 간단히 안주거리를 준비한다. 화이트 와인에 먹기 좋은 치즈와 구운 빵, 올리브 등이다. 씻고 나온 개운한 얼굴로 와인 셀러에서 와인을 하나 꺼내와 소파 테이블에 자리를 잡는다.
영화가 좀 지지부진하면 유튜브를 연결한다. 이 기분이다, 싶으면 노트북을 무릎에 올려놓고 앞 뒤 문장 재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글을 적어둔다. 열대야 기능으로 타이머를 설정한 에어컨의 소음이 잦아드는 밤, 식사 대신 선택한 와인으로 취기가 살포시 오르면 여행 프로그램을 돌려보거나 다녀왔던 콘서트 영상을 다시 본다. 추억으로 찔끔대기도 하고, 좋아서 깔깔거리기도 한다.
여행지에서 맞이하는 주말을 제외하곤 나는 보통 뒹굴거리는 편인데, 그렇게 몸 편안히 지내놓곤 일요일 밤이 되면 대부분 찝찝해했다. 책을 한 권 집중해서 읽는다거나 운동을 한다거나 그것도 아니면 제대로 잠을 자거나 하는 것도 아닌, 비생산적으로 보낸 주말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었다. 그런 기분을 얘기하던 중, 어느 선배가 내게 말했다. "그렇게 비생산적으로 지내면 안 되는 거냐"라고. 주중에 내내 일하고 고작 얻는 이틀의 쉼인데, "그냥 쉬면 뭐 어떠냐"라고.
그때의 선배 말이 깊숙이 박힌다. 온전히 쉼으로써의 시간. 그 시간을 몸뿐 아닌 맘까지 편안하게 보낼 수 있는 공간. 독립은 그간 나를 옥죄어왔던 어떤 질긴 압박으로부터의 해방도 가져왔다. 독립 후 맞이하는 주말 내내 나는 집에서 뒹굴었다. 자유롭고 비생산적으로.
장점 둘, 아지트화
조금 괜찮아지는 듯하더니 매일 수십 개의 재난 문자가 쏟아진다. 오히려 더 심해진 듯도 하다. 친구들과 식사 약속을 안 잡은 지도 벌써 몇 달이 되었다. 이제 막 출산을 한 친구도, 아이 둘 육아에 정신없는 친구도, 학업에 정신없는 친구도 모두 다수의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만남을 갖는 게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그나마 선생님인 한 친구와는 방학을 이용해 널찍한 홀이 있는 식당에서 만나 한 끼 식사를 겨우 같이 했다. 약속과 취소를 번갈아 하며 지내오다 넉 달 만에 만난 자리였지만, 그마저도 커피 한 잔 제대로 더 하지 않고 자리를 파했다. 스멀스멀 끼어드는 '혹시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지루한 장마가 지났고, 바이러스는 일상에 완연히 자리 잡았다.
밖에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부담인 때. 자차를 이용해 집으로 곧장 돌아와 여타 접촉자 없이 우리끼리 밥 먹고, 우리끼리 떠들 수 있는 집들이는 모두에게 환영받는 이벤트였다. 자취하는 집에서 필요가 없어졌다며 전자레인지를 손수 들고 온 친구와, 집들이를 처음 와 본다며 뭘 사야 될지 몰라 내 인스타그램을 뒤져 취향에 맞을 듯한 와인을 사 온 동료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식당에 있는 화장실이 혹시나 남녀 공용일까 싶어, 혹은 열쇠를 들고 멀리 돌아가야 하는 외부 화장실일까 싶어 하던 걱정과 목소리가 격양되는 옆 테이블에 신경 쓰이던 긴장을 느낄 필요가 없는 공간에서 음식을 나눠 먹으며 편히 나누는 대화는 편안함 그 자체였다.
동기들과의 모임과 옆 부서 언니들과 집들이, 그리고 몇몇 친구들과의 집들이가 더 남았다. 집들이라는 명분이 흐릿해질 때면 다른 이유를 찾아 집으로 초대를 해야겠다.
모두 즐겁게 먹고 집에 돌아가고 난 뒤 졸린 와중에 청소나 설거지를 끝마쳤을 때의 홀가분함을, 그렇게 몇 발자국 떨어지지 않는 걸음으로 당도한 침실에 그대로 누울 수 있다는 편리함을 나는 진심으로 즐기고 있다.
장점 셋, 안정감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동료들과 동기들을 제외하곤 회사 내에 독립했단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청약 통장에 몇 회차를 넣었는지, 유동이 가능한 현금이 얼마 있는지를 아무렇지 않게 질문하는 부서 분위기에 독립 얘기를 꺼내면 '왜 그곳을 샀느냐', '집은 투자 가치를 보는 거다', '조금만 있으면 좋은 매물들이 나올 텐데', '어디 어디에 대형 아파트 단지가 곧 들어오는 거 모르느냐', '부동산 정책 때문에 집값을 지켜봐야 한다' 등 자칭 부동산 전문가 선배들의 왈가왈부가 끝없이 이어질 게 뻔했기 때문이다.
내게 그 모든 이야기는 쓸데없고 부차적인 것들이다. 나는 오랜 시간 거주할 공간이 필요했고 그걸 찾았다. 그것도 아주 만족스럽게 쓸고 닦은.
"여기 곧 분양 시작되니까 꼭 넣어 봐"
"아.. 네..."
"경험이다 생각하고 해 봐. 다 나중에 너한테 도움될 거야."
고급 기밀을 건네는 양 파티션 너머에서 속닥이던 선배가 자신의 자리에서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그제야 자리에 앉았다. 나이를 먹고, 가정을 꾸리고, 노후가 조금씩 걱정되는 순간이 오면 모든 관심이 재산 증식에 쏟아지는 걸까. 셋 이상 모였다 하면 대화 주제가 주식과 부동산이다.
사실 선배들의 부동산 타령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는 경우가 많았지만, 가끔씩 흘려보낸 말들이 되돌아와 내게 고일 때가 있었다. 정말 이 나이쯤 되면 얼마쯤 모아놓아야 했고 어느 정도의 투자를 해놓아야 했던 것일까. 부동산 정책에 예민하게 관심을 갖고 있어야 했던 걸까. 입사하자마자 대출을 받아 소형 매물이라도 사놓아야 했던 걸까, 내 경제적 상식은 그렇게 부족한 것일까 하고. 선배들의 대화를 듣고 있다 보면 내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뒤처지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도리어 쿨한 척했다. '저 그런 거 다 관심 없고, 저 좋을 대로 돈 쓰고 살래요'
자리로 돌아가 전화를 받는 선배의 옆얼굴을 힐끗 바라보다 고개를 내렸다. 웃음이 나왔다. '저 사실 독립했어요. 저도 집이 있다고요.' 말하지 않아도 뿌듯한 이 한 문장.
더 비싸고 좋은 아파트는 내 현실에 맞지 않다는 걸, 내가 마음 놓고 지낼 공간이면 충분하다는 걸 안 사람의 안정화. 쫓기는 듯한 마음은 사라졌고, 선배들의 부동산 타령에 완벽히 초연해졌다. 독립은 내게 뜻하지 않은 안정감을 선물했다. 물론, 피치 못할 때가 되기 전까지 독립했단 얘기를 꺼내지 않을 생각이지만.
단점 하나, 역시 지출.
적적한 집 안의 말동무가 되어주는 텔레비전도, 적절한 온도를 만들어주는 에어컨도 전기가 없으면 돌아가지 않고, 발전소에서 만들어내는 전기는 지불금이 없으면 효력이 없다. 매일 물을 쓰고,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고, 이따금씩 쓰레기를 버리거나 분리수거를 한다. 독립의 가장 큰 단점은 역시,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간다는 점이다.
내 지출에 가장 큰 부피를 차지는 건 단연코 와인과 배달음식. 지출을 손보기 위해 일단 일주일에 두 번 혹은 세 번씩 배달음식을 시키던 횟수를 크게 줄였다. 한 번 먹고 나면 크게 쌓이는 일회용품도 부담스럽고, 특히 혼자 지내는 집이란 게 드러날까 싶어 배달을 최대한 삼가게 됐다. 게다가 와인을 포기 못하니 배달음식만큼은 꼭 줄여야 했다.
그러나 신기하게 전체 지출 비용은 크게 줄지 않았다. 역시 내 지출의 대부분이 식비였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배달 음식을 줄이고 밖에서 사 먹는 음식 값을 줄였지만, 새로 채워 넣는 식재료 값이 딱 그만큼 들었다. 소금이나 고추장, 멸치와 감자는 4인 가족이라서 더 비싸게, 1인 가구라서 더 싸게 책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본가에 살 땐 속도가 달랐다. 소금과 고추장, 대파와 후추가 한 번에 톡 떨어지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독립은 소금과 고추장, 대파와 후추, 거기에 거기에 발 매트, 욕실 실내화, 면봉, 휴지통을 한꺼번에 사는 일이 선행되어야 했다. 사람이 사는 데에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어야 할 것들을 채우는 것부터 시작하는 독립엔 정말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간다.
가계부를 쓰지 않는 습관을 이제야 반성했다. 매달 대출금을 갚아나가는 동시에 적당히 돈을 모으며 생활까지 적당히 하려면 적절한 지출 습관은 필수다. 우선 나는 이것부터 시작이다.
단점 둘, 모든 집안일.
삐삐 빅.
'등록된 비밀번호가 없습니다.'
음식물 쓰레기 분리 배출 통에서 흘러나오는 경쾌한 목소리. 동과 호수를 입력했더니 비밀번호를 누르라고 해 생각나는 네 자리를 눌렀더니 위와 같은 메시지가 나왔다. 한참을 배출 통과 씨름하고 있었더니 옆 라인에서 음식물을 버리던 한 주민이 여기 뚜껑 닫히기 전에 얼른 처리하라고 자리를 비켜주셨다. 감사하단 인사를 건네고 허둥대며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를 마쳤다.
본가에선 집안일이 완벽히 분리 체계였다. 화장실 청소와 분리수거, 빨래와 내 방 청소는 내 몫, 집 청소와 요리는 동생 몫,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는 엄마 몫, 종량제 봉투를 버리는 건 먼저 출근하는 사람의 몫. 그렇게 자신의 역할에만 충실하면 됐다. 현 본가에서 10년을 살았는데, 나는 그동안 음식물 쓰레기를 한 번도 버린 적이 없었다. 10년을 산 아파트면서 음식물 쓰레기 분리 배출을 할 줄 몰라 아침부터 쩔쩔매며 그 사실을 깨달았다.
그 날 저녁, 음식물 배출 카드를 챙겨 비밀번호 설정을 마쳤고, 종량제 봉투를 버렸다. 앞으로 이 모든 집안일이 온전히 내 몫이다.
손을 닦을 때마다 먼지가 묻어 나오는 새 수건을 또 빨아 널고, 청소기를 돌린 뒤 걸레질을 했다. 먼지는 어디서 이렇게 날아와 또 쌓이나 싶다. 직접 반찬 몇 가지를 해보겠다고 부산을 떨었더니 주방도 지저분하다. 조미료통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한 뒤 음식물 쓰레기를 봉투 하나에 모았다. 이것만 했는데 벌써 반나절이 지난 기분이다.
삐삐 빅.
'등록된 비밀번호가 없습니다.'
나란히 놓인 두 대의 음식물 쓰레기 분리 배출 통. 지난번에 등록한 왼쪽 통에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려고 했더니 용량이 꽉 찼단다. 오른쪽 통으로 옮겨 동 호수와 비밀번호를 눌렀더니 등록되지 않았다는 경쾌한 목소리가 또 나온다. 두 개의 통이 연동되어있지 않다는 걸, 통마다 비밀번호를 일일이 설정해놓아야 한다는 걸 오늘 또 새로 알았다. 음식물 쓰레기를 한 손에 든 채 배출 카드를 가지러 다시 한번 집에 올라갔다 내려오면서, 귀찮은 내색은 가끔씩 냈지만 그럼에도 10년이나 이 행위를 반복했을 엄마를 향해 진심으로 리스펙을 외쳤다.
끝없이 부지런해야할 것. 독립한 내게 내내 따라다닐 문장이다.
단점 셋, 그리고
조금 보다 말고 보다 말고 했던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를 제대로 봐야겠다 싶어 자리를 잡았다. 배경이 일본이어야 했던 이유가 저거였겠지. 일본만이 가지고 있는 문화, 낯선 언어, 이해할 수 없는 영역 등 그 안에서 섞이지 못한 채 겉도는 밥 해리스와 샬롯을 본다. 묵고 있는 호텔에서 화재 경보등이 울린 어느 밤, 몸만 급하게 빠져나온 밥 해리스는 호텔 앞 걱정스레 모여있는 사람들 중 외따로 서 있는 샬롯을 알아챈다.
그때 슬리퍼에 삐져나온 샬롯의 발가락을 클로즈 업하는 쇼트. 발보다 조금 작은 슬리퍼에 끼운 맨발에서 느껴지던 건 자신의 몸을 오롯이 홀로 건사하고 나온 다급함, 그 홀로 마주한 생의 사투였다. 나는 별 거 아닌 이 쇼트를 보다 좀 울었다. 와인을 조금 마신 탓으로 모든 이유를 돌리며.
혼잣말이 늘었다. 잠들기 직전까지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조카에게 괜히 영상 통화를 건다. 외롭다기보단 막연하다. 앞으로 혼자 잘 살 수 있겠지, 잘 살아갈 수 있겠지.
그러나 확실한 건 단점 전체가 장점 하나를 상쇄할 만큼 크지 않다는 것이다. 끝도 없는 집안일을 마치고, 공과금을 납부하고, 멍하게 앉아있다가도 그 어떤 만족감 하나가 불쑥 스며들면 그 단점들이 모두 까맣게 잊힌다. 지금까지 해 온 만큼만 하면 된다. 뭐가 문제랴.
경험했고, 이제 경험하고, 곧 경험할 이야기는 한참 남았다. 쓸 시간이 많아진 만큼 자주 기록해야겠다. 최근 독립 일기를 1편부터 다시 읽었다. 그새 생소한 이야기다. 누가 아닌 나를 위해 써야겠다. 이 과정을, 이 생각을, 이 일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