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 독립 일기 08
1. 살이 쪘다
그것도 6개월도 안되어 3kg이. 곧잘 운동하러 나갔던 하천이 조금 더 멀어졌단 이유로, 코로나 19로 집콕을 해야 한단 이유로, 최소 배달 기준을 채우기 위해 2인분 이상의 음식을 주문해야 한단 이유로, 낮부터 와인을 꺼내는 즐거움으로 주말을 보내야 한단 이유로 등. 독립은 너무 달콤했고, 단 거는 역시 위험(danger)했다.
2. 가계부를 샀다
짐작은 했다. 세일하는 와인 더미 앞에서, 여행의 충동 앞에서, 특정 금액 이상 사야 배송비가 무료라는 말에서 곧잘 이성이 마비되어 왔으니까. 그런데 이 정도로 대책 없을 줄은 몰랐다. 매달 자동 이체되는 대출금과 6개월 할부인 가전 결제 금액은 까맣게 잊고 와인이며 배달음식이며 러그며 꽃다발을 신이 나서 구매했다. 그래 놓곤 도시가스며 아파트 관리비, 정수기와 인덕션 렌탈비를 '맞다, 얘도 있었지' 하며 그제야 부랴부랴 생활비에 포함시키는 머저리가 나였다니.
본가에서 뻗대느라 가능했던 내 터무니없는 금전 감각이 더 이상 내 것이어선 안 되었다. 손으로 써야 머리에 기록되는 아날로그형 인간인 내게 가계부 작성은 필수였다. 갑작스러운 폭설로 타게 된 시내버스 요금과 멜론 정기결제 금액을 기록하며 가계부는 지출 규모를 파악하는 동시에 미래의 지출을 가늠하고 그 범위를 설계하는 용도로 꼭 필요했던 것임을 깨달았다.
내 인스타그램은 구멍 뚫린 내 주머니에서 쏟아져 쌓인 여행과 음식과 와인과 문화생활의 결과물로 가득하다. 2021년은 달라질 것이다. 갚고, 모으고, 우선순위를 둔 생활을 해야지.
일단 다짐은 했다. 다짐을 했으니, 뭐라도 될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3. MBTI는 과학인가
"혹시 혈액형이 어떻게 되세요?"란 물음이 "혹시 MBTI가 어떻게 되세요?"로 대체되었다. 혈액형별 성격 분류가 MBTI별 성격 분류로 바뀌었고, 인프피니 엔프제니 하는 말이 어색하지 않게 들린다. 혹시나 하고 시간차를 두고 MBTI 성격 검사를 두 번 해 본 나는 두 번 다 용감한 수호자인 ISFJ-A 형으로 나왔다. (나중에 알았다. 남들보다 뒤늦게, 그것도 혹시 몰라 두 번이나 한 것도 'ISFJ'형 인간이라는 것을)
타인을 향한 연민이나 동정심이 있으면서도 가족이나 친구를 보호해야 할 때는 가차 없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조용하고 내성적인 반면 관계술에 뛰어나 인간관계를 잘 만들어갑니다. 안정적인 삶을 지향하지만 이들이 이해받고 존경받는다고 생각되는 한에서는 변화를 잘 수용합니다. 이처럼 수호자형 사람은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 힘든 다양한 성향을 내포하고 있는데, 이는 오히려 그들의 장점을 승화시켜 그들 자신을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여기까진 대부분 모든 사람에게 비슷하게 해당되는 모호한 말들이 아닌가 싶었는데 좀 더 디테일하게 분석해놓은 어느 블로그에서 본 두 문장을 보고 MBTI에 항복했다.
ISFJ-A들은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큰 가치를 두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ISFJ-T들만큼 다른 사람들의 말을 주의 깊게 듣지 않을 수도 있다. ISFJ-A들은 누군가에게 요구하기보다는 그들이 필요로 하거나 원하는 것을 안다고 자신 있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을 수 있다.
취향과 욕구에 있어 답정너 기질이 다분한 나는 독립을 실현하는 모든 과정에 남들의 의견과 조언을 철저히 배제했다.
입지조건이나 브랜드, 세대 수나 교육 요건 등 남들이 말하는 아파트 조건이나 에어 드레서, 식기 세척기, 드롱기, 발뮤다 등 남들이 좋다고 하는 살림살이들은 처음부터 선택 범위에 들어있지 않았다. 본가와 회사에서 멀지 않고 내가 갚아나갈 수 있는 집에 채광 좋은 집을 선택했고, 그 집을 전체 리모델링할 땐 도배와 타일 등의 색감과 크기, 스타일 등을 직접 골랐고, 리모델링이 완료된 집엔 화이트 와인 칠링을 위한 얼음 정수기와 책꽂이, 스타벅스 시티 머그를 모아둘 수 있는 장식장을 그 어느 것들보다 먼저 골라 채웠다. 인스타그램과 블로그, <오늘의 집> 등이 길잡이는 되어주었지만 선택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주방에 상부장을 떼어 선반 하나만 놓은 이유는 와인잔은 수십 개이면서 그릇은 열 손가락 안에 들어올 정도로 적기 때문이었고 싱크대 반대편에 액자 걸이를 설치한 이유는 몇 해 전 뉴욕에서 사 온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익사하는 여자>를 이 곳에 걸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좋고 예쁜 인테리어를 위해 일부러 무언가를 더 넣거나 떼어내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 무언가를 더 넣거나 떼어냈다. 괜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들이 필요로 하거나 원하는 것을 안다고 자신 있게 생각하는 경향'에 '다른 사람들의 말을 주의 깊게 듣지 않은' 내가 앞으로 계속될 독립생활에 명심할 문장은 하나. 좋아 보이는 것보다 내가 필요한 것이 우선일 것.
혹시 지금 다시 검사하면 다른 MBTI가 나오진 않겠지? 설마 정반대인 ENTP 같은.
4. 넷플릭스에 진심이 되었다
인터넷을 설치하니 두 달간 B-TV가 무료였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와 에어컨을 켜 집안의 온도를 낮춘 뒤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나와 화이트 와인 한 병을 가져온 뒤 볼만한 영화를 검색하는 게 작년 여름의 일상이었다. 왠지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 것 같아 언젠간 봐야지- 하고 미뤄왔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타인의 삶> 등을 이맘때 챙겨봤고, 닳고 닳게 보는 <미드나잇 인 파리>,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비긴 어게인> 등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배경음악처럼 틀어놓기도 했다. 그렇게 두 달은 영화였다.
B-TV 무료 기간이 끝나자 이번엔 유튜브였다. 55인치 인터넷 TV의 뽕을 뽑겠다는 듯, 그동안 작은 핸드폰 화면에 의지해온 설움을 폭발시키겠다는 듯 그랬다. 호흡이 짧은 예능 클립을 두서없이 넘기며 깔깔거렸고, <맛있는 녀석들>이나 <입 짧은 햇님>의 먹방을 보며 밥을 먹었다. 분위기를 낼 땐 'Paris Driving', 'Hongkong sunset drive' 같은 영상들을 틀었고, 신이 나고 싶을 땐 방탄소년단 콘서트 직캠 영상을 검색해 봤다. 그렇게 세 달은 내내 유튜브였다.
그리고 현재의 나는 넷플릭스에 진심인 사람이 되었다.
사내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구독해 온 신문과 매거진 정기 결제를 해지하고 그 금액으로 넷플릭스 공용 아이디를 여러 개 만들어 노조원들에게 배포한 이래로다. 매주 본방 시간을 지켜가며 호흡이 긴 드라마를 챙겨보는 걸 잘 못하는 덕에 보지 않은 국내외 드라마에 넷플릭스 자체 제작물에 안 본 영화들까지. 나는 넷플릭스 도장깨기에 돌입했다.
<킹덤>, <퀸스 갬빗>, <상견니>, <브리저튼> 등을 지나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슬기로운 의사생활>, <비밀의 숲>을 봤고(보고 있고) <에놀라 홈즈>, <로맨틱 홀리데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도 봤다. 퇴근하면 10분간 환기를 시킨 다음 집안의 온도를 높인 뒤 따뜻하게 샤워를 하고 나와 화이트 와인 한 병을 가져온 뒤 리모컨의 '넷플릭스' 버튼을 눌러 가장 최근에 보고 있는 영상의 이어 보기를 시작한다.
그렇게 좋아할 줄 알았으면 본인 아이디로 같이 보자고 할 걸 그랬다는 어느 지인의 말에 손사래 쳤다. 욕구는 계기가 있어야 되고, 그 계기는 회사가 제공한 기결제된 넷플릭스 아이디였으니. 두 달 전까진 킹덤 새 시즌이니 2021 넷플릭스 라인업이니 하는 것에 별다른 욕구 없이 지나칠 수 있었으나 지금은 다르다. 꼭 봐야 한다는 넷플릭스 추천작만 60편 넘게 적어놓았다.
퇴근하면 어차피 집에만 있는 때. 이런 타이밍에 넷플릭스라면, 진심이 될 수밖에 없다.
5. 엄마랑 대화하기 시작했다
커피 한 잔을 마신 뒤 소파와 한 몸이 되어 넷플릭스에 접속한 일요일 오전 11시. 화살표를 눌러 오늘 하루 쭉 달릴 만한 시리즈 없나 검색하는데 전화가 왔다. 엄마다.
"뭐해? 집이야?"
"내가 어딜 가. 그냥 집에 있지."
"점심은? 같이 먹을래?"
"그럼 엄마가 여기로 올래? 추우니까 국밥 시켜서 먹자. 쓰레기 여기서 분리수거하는 게 훨씬 낫잖아"
"알았어 12시쯤 그리로 갈게"
전화를 끊고 배달 어플에 접속해 국밥 두 개에 왕만두 하나를 시켰다. 엄마랑 일요일 점심을 이렇게 먹은 지도 한 달이 넘어간다.
사소한 말다툼이 원인이 되어 엄마랑 서로 말 한마디 없이 지내던 중에 독립을 진행했다. 엄마는 여동생의 입을 통해 내가 집을 구입한 소식과 리모델링 시기, 대략적인 입주 시기 등을 전달받았고, 나는 리모델링이 완료된 시점에 손수 짐을 옮겨 나르며 '곧 집을 나간다'는 뉘앙스로 말을 대신했다. 독립 첫날엔 가족들이 함께 모여 자장면을 먹었는데 이때도 모든 대화는 조카를 통해 이루어졌다. 촌극이었다.
엄마와 말을 트게 된 특별한 계기는 없다. 그냥 내가 독립했기 때문이다. 매번 붙어 있다가 떨어졌고, 떨어져 있다 보니 과거를 되짚게 되고, 되짚다 보니 그렇게까지 할 일은 아니었는데 싶고, 그렇게까지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보니 앙금이 사라졌다. 그간 엄마와 거리적으로 또 심리적으로도 너무 가까웠던 탓이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쓱- 문자메시지로 안부를 전하게 됐고, 조심히 통화가 이루어졌고, 한 번씩 집을 오가게 됐다. 그리고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은 함께 식사를 하는 모녀 사이가 됐다.
엄마랑 매일 붙어있는 여동생이 집에 찾아와 이따금씩 볼멘소리를 한다. 엄마랑 같이 못 살겠다고, 자기도 나가 살아야겠다고. 그럴 때마다 나는 솔로몬 인양 이런저런 해결책을 제시한다. 어차피 네가 먹은 것을 설거지할 테니 엄마가 담가놓은 그릇 하나 더 씻는 거 뭐 어떠냐고, 어차피 샤워하는 거 겸사겸사 욕실 청소하면 되지 않냐고.
"뭐래. 너 나보다 원래 더 심했어. 지금 따로 살아서 그렇지 같이 살면 너도 똑같이 이럴걸?"
맞다. 해결되지 않고 원점으로 돌아와 매일 같은 이유로 트러블을 냈을 나는 독립이란 수단을 통해 엄마와의 관계를 되돌렸다. 눈이 좀 녹으면 이번 주말엔 배달이 아닌 집 근처 식당을 좀 찾아볼까. 옛 속담에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했다던가.
눈에서 멀어지니 마음이 애틋해지기도 하더라.
독립 첫날. 낯선 기분에 오래 잠들지 못하고 뒤척였던 나는 위잉- 달그락 거리며 자동 청소되는 얼음 정수기의 뜬금없는 소음에도 놀랄 일 없이 꿀잠 자는 사람이 되었고, 가족 식사를 위해 들른 본가가 남의 집에 온 듯한 불편함에 금세 집으로 돌아오는 처지가 되었다.
독립한 이래로 회식 후 얼콰한 얼굴로도 본가로 향하는 실수 한 번 없이, 퇴근 후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집에 매번 "아, 드디어 돌아왔다" 안심하며, 이렇게 사는 것이 원래였던 것처럼 살아가고 있다.
독립을 결정하고 추진했던 과정, 집을 닦고 꾸몄던 이야기, 독립 6개월 차의 소회를 담았던 독립 일기는 이쯤에서 정리한다. 부족하고 모자라지만 회피할 수 없는 본래의 내 모습을 발견해 언제 다시 독립 일기를 쓰게 될 진 모르겠지만, 그 부족하고 모자라지만 회피할 수 없는 본래의 내 모습에 익숙해져 가느라 당분간은 시간이 모자라지 않을까 싶다.
독립 일기 첫 편에 썼던 문장을 다시 가져와 변형하며 <제이 독립 일기>를 마무리한다.
독립? 까짓 거, 했다.
했다, 까짓 거, 독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