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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 세계에서의 두 시간

by 하늘나루

본 내용은 필자가 두 시간 전, 꿈속에서 겪었던 이야기입니다. 일어나자마자 작성하여 자세한 묘사가 가능했습니다.



진짜? 이게 다 진짜라고?


이런 장소는 정말 처음이었다. 거대한 저택부터 디즈니 캐릭터로 꾸며진 정원, 한 구석에서 지어지고 있는 가톨릭 성당까지. 솔직히 우리 사촌이 이렇게 부자인 줄은 몰랐다

그럼. 진짜 우리 집이야.


사촌이 말했다.


어디, 시험 삼아 들어가 볼까?


세상에. 온갖 르네상스풍 그림으로 가득한 실내. 바깥도 화려하지만, 안은 더 화려하다. 높다란 천장에 그림이 반짝여 은은한 분위기. 대박. 우리 집안이 이렇게 부자였다니! 거기다 집 안에 고층 빌딩까지! 얼른 인스타 스토리에 올려야겠다 생각하고 사진을 찍었다.

이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다시 장면이 바뀐다. 이곳은 대학교. 우리 고대는 아닌데, 그렇다고 연대도 아니다. 연대와 고대를 섞어 놓은 듯한 건물, 중앙광장의 열람실 같은 곳에서 나는 동기들에게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다.


"진짜라니까! 내가 증거로 사진 보여줄게"


허리춤에서 폰을 꺼내 아까 찍은 사진들을 보여준다. 그런데,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닌가? 저택은 그냥 낡은 집 사진이었다.


이상하다? 분명 열심히 찍었는데.


그러자 듣고 있던 동기 중 한 명이 웃으며 말했다.


너, 평행세계에 다녀온 모양이구나?


평행세계?


응, 거긴 우리가 실제 가진 것보다 더 멋있는 게 가득하고, 주변 사람들도 더 친절하고, 착하고 능력도 좋아. 잘도 다녀왔구나? 대신 어떤 것도 현실로 가져올 수 없지만.


넌 그걸 어떻게 알아?


난 평행 세계로 가는 포털을 열 수 있어. 네가 원한다면, 시범을 보여 줄게.


그 동기는 우리를 어느 구석진 계단으로 이끌었다. 그가 작은 장치를 두드리자 포털이 나타났다. 보라색이었다. 마인크래프트의 네더 포털과도 비슷했지만 어떠한 테두리도 없었다.


평행세계에 온 걸 환영해!


그가 말했다. 정말이었다. 새로 도착한 곳 역시 우리가 있던 식당이었다. 하지만 달랐다. 현실의 학교 식당은 먹을 것이 별로 없었지만, 여기는 랍스터부터 산해진미가 가득이었다. 음식뿐이 아니었다. 어느 식당 앞에서 누군가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


"안녕하세요?"


어디서 본 듯 한 지인이 손을 흔들었다. 누구였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키는 나와 작거나 비슷했고, 머리는 갈색이 도는 약간의 곱슬이었다. 푸른색 카디건에 흰 셔츠를 입은 그 지인은 나와 함께 평행 세계를 여행했다. 다른 동기들도 저마다 짝을 지어 돌아다녔다.


너무나도 행복했다. 뭐라고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꿈속에서도 시간이 흘렀다. 적어도 10년쯤 지났으리라. 그 지인은 나와 함께 살 집을 골라 살게 되었다. 창문이 많은, 나무가 포인트인 집이었는데 우리는 꼭 가족처럼 행복하게 살았다. 정확히 어떻게 살았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꼭 영화처럼, 그 사람과 함께한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조신의 꿈에 나오는 일장춘몽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여긴 평행세계인데, 원래 가족이 사는 세상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지인은 웃으며 내 손을 잡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잊고 있었던 휴대전화가 울렸다. 잊고 있었던 그 동기가 단톡에 보낸 메시지였다.


지금 당장 돌아와.

결계가 무너지고 있어.


읽음 표시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나를 비롯한 동기들은 저마다 짝을 데리고 처음 이 세계로 들어왔던 입구 앞에 모였다.


그 동기가 말했다.


자, 이제 작별 인사를 할 시간이야.


그건 안 돼.


난 이 세계에서 알게 된 지인을 있는 힘껏 끌어안았다. 그녀 또한 헤어지기 싫어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 누군가 나를 억지로 떼어 내어 포털로 넣었다. 그리고 포털이 닫히며 평행 세계 역시 사라졌다.


사라졌다고?


내가 물었다.


그래. 다시 포털을 열어도 거긴 다른 평행 세계일 뿐, 너와 추억을 나눈 그 사람은 없어진 거야. 그냥 새로운 세계가 다시 생기는 거지.


그럼 그 지인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나는 절망감에 주저앉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선물이나 반지라도 주고받고 올 걸. 그녀가 선물로 준 흰 가죽 가방이 하나 있기는 했다. 하나 그것은 포털을 넘자마자 평범한 핸드백으로 변했다. 마치 처음부터 그랬다는 듯이.


또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포털이 붉게 변하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 이럴 리가 없는데.


그 동기가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 포털은 안에서 무언가 뛰쳐나오려는 듯 계속 흔들렸다.


결국 포털은 깨지고 맹수나 다름없는 괴물들이 튀어나왔다. 난 즉시 알아보았다. 그것이 한때 다른 동기들이 평행 세계에서 만난 짝이었다는 것을.


난 과감히 포털로 들어가 그 지인을 찾으려고 했다. 정말로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참을 찾았더니, 여우와 기린이 섞인 모습으로 변한 그녀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녀는 눈이 부실 정도의 노란빛을 내고 있었다.


왜 이제 와?


그녀는 거의 죽을 듯 달려들었으나 필경에는 내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우린 한참을 그 상태로 있었다. 그러고 있으니 다시 휴대폰이 울렸다.


너무 위험해. 이번에는 아예 세계를 파괴해야 해.


뭐라 말하기도 전해 지인과 함께 있던 집은 허허벌판으로 변했다. 다시 정신을 차리니 처음에 보았던 그 사촌의 부잣집이었다. 그렇게 몇 단계를 거치니 내 방이었고 침대였다.


꿈에서 깨어난 것이다. "끝났다"라는 느낌이 명확히 드는 꿈이었다.


필자는 일어나자마자 컴퓨터 앞으로 가 이 글을 썼다. 두 시간 잤다. 그러나 꿈속에서 난 백 년을 살았다.

흰머리가 안 돼서 다행이다. 이렇게 대사까지 다 기억하는 이유는 바로 글을 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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