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아이유 씨의 <네버엔딩 스토리>가 공개되었다. 별다른 언급은 없지만 필자는 그것이 모의고사에서 마주쳤던 <8월의 크리스마스>의 패러디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푸른 하늘과 사진관, 일부러 2000년대 느낌을 낸 듯한 자동차까지 말이다. 다만 사진관이 만화방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제 지나간 시절의 영화가 되어버린 <8월의 크리스마스>는 기존의 로맨스 영화, 드라마와는 궤를 달리한다. 많은 작품이 집안과 고부간의 갈등, 삼각관계등을 다룬다면 본 작품은 '시한부의 사랑'이 주요 소재가 된다. 주인공들은 사진관 주인과 교통단속원으로 재벌이나 귀족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인물들이다. 드라마에 흔히 나오는 '사랑해'나 '보고 싶다' 같은 대사도 거의 없다. 전혀 모르던 남남이 연인이 되어가는 모든 장면을 편집 없이 보여주는 롱 테이크 영화다.
여주인공은 사진관 주인 '정원'이 찍어 준 사진이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어쩌면 기계로도 감출 수 없던 촬영자의 마음을 느껴서일까. 배경이 된 시기에는 요즘처럼 Ai 촬영 가이드도 없었을 것이기에 사진은 오로지 찍는 사람의 몫이 된다. 사진의 각도, 구도와 미세한 빛에서 특별함을 느꼈을 것이다. 오늘 예능 프로그램을 보니 같은 사진도 찍어 준 사람마다 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꽃잎을, 다른 사람은 줄기를, 또 다른 사람은 꽃을 든 사람을 찍었다. 따라서 사진 속에 담긴 마음을 알아차리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요즘 10대, 20대들 사이에는 폴라로이드와 '스티커 사진'이 유행하고 있다. 처음에는 그 이유를 몰랐다. 그런데, 찍은 사진을 다시 보러 앨범에 들어간 적이 있었던가? 아마 없었을 것이다. 필자도 그렇다. 꼭 필요한 비밀번호나 안내문을 캡처한 것을 제외하면 금방 잊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벽에 붙어 있는 스티커 사진은 거기 있는 한 잘 잊어버리지 않는다. 또 무언가 손에 쥘 수 있는 추억으로 남는 것이다. 종이 사진을 본 적 없는 젊은 세대들은 기억을 손에 쥘 수 있다는 것에 특별함을 느끼는 것이 분명하다. 거기에는 디지털 사진이 줄 수 없는 감성이 있기도 하다. 만약 정원이 사진을 이메일로 보내 주었다면 영화는 시작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진에서 발전한 두 사람의 관계는 너른 공원을 거니는 느낌이다. 뚜렷한 사건과 발단도 없이 그저 잔잔하게 흘러갈 뿐이다. 놀이 공원에 가거나 사진을 찍고, 연인들이라면 누구나 할 법한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공원도 언젠가 끝이 나듯이 그들의 사랑도 막을 내렸다. 정원의 불치병 때문이었다. 그러기엔 너무 건강해 보이지만.
이 요소는 극의 처음부터 등장한다. 즉, 처음부터 시한부 인생임을 알고 시작한 것이다. 절대다수의 연인들은 그들이 헤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처음부터 헤어짐을 전제로 한 만남이라면 어떨까. 그것도 정확히 언제 어느 날 헤어지는지 미리 아는 사랑이라면. 그것이 본 작품이 주는 특별함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편리함과 빠름이 난무하는 시대, 이런 스토리는 또 나올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