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현 Nov 19. 2024

제5화. 구름으로 만들어진 새

제5화. 


수정이 말했다.       


‘네가 온 세상에 대해 알려줘. 이 우주는 좁아서 이미 다 둘러보았거든. 너희로 치면 아직 아기 같은 거니까. 내가 보고 들은 게 모여 이 숲과 열매를 만들어 가는 거야. 난 이 숲을 더 키우고 싶어. 넌 별을 보는 사람이니까, 아는 것도 많지?’ 

    

난 그에게 태양계와 행성들에 대해 알려 주었다. 달이 뜨는 풍경이며 지구에 관해서도 입이 닳도록 이야기했다. 우리 은화와 안드로메다에 대해서도. 하지만 그는 불만족한 눈치였다.      


‘그런 건 여기에도 많잖아. 조금 더 작은 거. 너희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해 줘’     


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명문대를 향한 경쟁, 결혼과 사랑, 부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 병과 노화, 죽음, 그리고 전쟁이나 종교처럼 심오한 이야기까지. 그럴 때마다 거대한 나무에 갖가지 열매가 열리고 빛났다. 수정은 몹시 혼란스러운 게 분명했다.      


‘단 한 명의 행복을 위해 셀 수없이 많은 생명을 없애다니. 인간은 참 어리석구나. 백 년도 살지 못하면서’  

   

세계에서 벌어지는 분쟁에 관해 말할 때는, 나무가 빨갛게 변하면서 숲이 뜨거워졌다.    

  

‘음악이란 건 참 아름다워. 보이지 않고도 즐겁게 만들 수 있어.’      


예술에 대해 들은 나무에는 마치 보석처럼 빛나는 열매가 열렸다. 열매들은 저절로 진동하며 선율을 연주했다.     


‘너희 인간들은 대체로 어리석은 것 같아. 하지만 실수를 반복하며 계속 고쳐 나가니까, 희망은 분명히 있는 거야.’    

  

생명체는 나름의 결론을 내린 듯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너도 내 돌을 훔치러 온 건 아니지? 이런 건 너희한테 중요하잖아’ 그가 수정으로 된 숲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혼자서는 힘이 부족해 가져갈 수 없으니 안심하라고 했다.      


‘누가 훔치러 온다면, 제가 이 손으로 다 쫓아버릴 겁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손을 흔드는 시늉을 했다.


'사람이 무서운 게 아니야. 새들이지'. 

      

수정은 슬프게 웃었다. 이번에는 혜성처럼 반짝이는 열매가 가득 열렸다. 수정은 열매가 맛있으니 하나 먹어보라고 했다. 이미 전에 호되게 당한 적이 있는 난 먹지 않으려고 했지만 수정의 슬픈 느낌이 그대로 전달되어 안 먹을 수가 없었다. 


입 안에서 웃음과 즐거움이 터지며 은은하게 퍼져 나갔다. 그 사이로 따뜻한 알갱이가 씹혔다. 그건 인간들이 행복, 아니 사랑이라고 부르는 무엇이었다. 정확히는 첫사랑에 가까운 부분이었다. 처음에는 아무 맛도 없지만, 그 사이에 단맛이 점점 강해져 마침내에는 열매 전체가 달콤해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회오리 소리가 들렸다. 


하늘을 보았다. 또 그 새들이었다. 이번에는 어둡게 빛나는 번개까지 두르고 있어 전보다 더 음침한 분위기를 풍겼다. 컴컴한 어둠이 숲으로 엄습해 온 것이다. 그 새들은 반짝이는 곳이 아니라 아니라 숲의 가장자리로 가고 있었다. 그곳의 열매들은 아주 날카로운 수정 조각이었다. 그걸 맞는다면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어 보였다.


'저기요. 이제는 어떻게 하죠?'

내가 절박하게 물었다. 하지만 수정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저 울면서 흐느낄 뿐이었다. 


새들은 더 가까이 다가왔다. 연기로 된 부리에는 날카로운 수정 조각을 하나씩 물고 있었다. 한 눈에도 그것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기름 바다가 죽는 순간, 물 바다의 품 속에서 사라지는 순간을 담은 조각들이었다. 그 처절한 고통과 이별의 슬픔이 수정을 그토록 날카롭게 만든 것이었다.  


시간이 없었다.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만약 그리움이 문제라면 기름 바다를 다시 만나게 하면 해결될 일 아닌가? 하지만 내 힘으로 그건 역부족이었다. 


'쿵'


내 옆으로 새가 조각을 떨어뜨렸다. 얼마나 세게 박혔는지 단단한 바닥에 금이 갈 정도였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 검은 액체가 흘러나오는 걸 보았다. 기름이었다. 다른 열매에도, 심지어는 나무속에도 기름이 조금 남아 있는 것이 보였다. 어쩌면 기름이 남긴 수증기가 시간이 흘러 다시 기름으로 변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리로 와라'


나는 손을 흔들면서 새들을 유인했다. 그러면서 빠른 속도로 숲을 사이를 돌아다녔다. 뾰족한 수정이 나무와 열매를 쓰러뜨리고, 그 자리에서는 기름이 흘러나왔다. 사실상 모든 수정 조각이 마찮가지였다. 


기름이 흘러 웅덩이가 되고, 강이 되고 마침내는 바다가 되었다. 하지만 부족했다. 그런데 멀리서 무언가 쓰러져 있는 걸 보았다. 그 고래였다.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 




이전 04화 제4화. 숲의 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