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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현 Nov 19. 2024

제6화. 재회?

'일어나. 지금 당장 일어나라고'


내가 고래에 귀에서 소리쳤다. 하지만 고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나는 포기하는 심정으로 근처 열매에서 흘러나온 기름을 고래에 조금 부었다. 큰 떨림이 있더니 고래가 눈을 떴다. 


'혹시.. 너야?' 


고래가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사방에 부서진 수정 조각들을 흡수하면서 이내 원래 덩치로 돌아간 것이다. 


'얼마나... 십... 만... 년.. 아니..."


이어서 고래가 빛을 뿜으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가 지느러미를 한 번 휘두르자 연기 새들이 흩어졌고, 그가 부순 열매와 숲에서 엄청난 양의 기름이 쏟아져 나왔다. 이제는 바다를 이룰 정도였다. 다만 그것들이 내 아래 수정 막에 갇혀 있어서 솟게 할 방법이 없었다. 난 옆에 있는 마지막 수정 조각으로 그 막을 내리쳤다. 마치 새 생명이 태어나듯 우렁찬 소리를 내면서 막이 무너졌다. 


하지만 새들이 있었다. 연기로 된 새들이 기름을 불로 태워 다시 수증기로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기름이 되기까지는 상상도 못 할 시간이 필요할 테니, 저들을 막지 못하면 기름 바다를 되살릴 수 없었다. 그럼 난 뾰족한 수정 조각에 맞아 죽어버릴 운명이었다. 


'쿵' 


마치 지도자처럼 보이는 커다란 새가 뾰족한 수정 조각을 고래 위에 떨어뜨렸다. 내가 미처 손을 쓸 새도 없이 고래가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그 새들은 아마 바다의 기억 속에 서린 일종의 트라우마인 모양이었다. 이별과 동시에 생겨난 슬픈 기억들 말이다. 이제 그 기억들이 바다를 집어삼키려고 한다. 수정에서 나온 기름은 거의 다 증발했고, 숲도 가장자리부터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이제 뛰어야만 했다. 그런데 누가 등 뒤에서 잡아끄는 느낌이 들었다. 


'이쪽이에요.' 


작은 나무였다. 뛸 수 있는 모양이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몰랐으나 그 나무를 따라 바닷속에 뚫린 구멍으로 뛰어내렸다. 어차피 거기 아니면 찔려 죽을 판이었으니까. 


구멍 아래에는 조그만 마을이 있었다. 그들도 나무였지만 수정 열매가 아니라 물방울을 가지고 있었다. 바다가 키운다는 생명들이 아마 이것들이었나 보다. 그중 가장 푸른 물방울을 단 나무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우리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랑을 나눌 적에 만들어진 나무들이에요. 물과 기름이 반반씩 섞여 나무가 되었죠.' 


'그 새들은 도대체 뭐지? 바다는 어디로 간 거야?' 

내가 안정을 취하며 말했다. 


'그분은 이 세계 전체나 다름없어서 어디든 계셔요. 단지 옛 생각이 주는 괴로움에 숨어들었을 뿐. 새들의 정체가 뭔지 저희는 몰라요. 아버지가 증발한 다음 날, 그 수증기 일부가 모여 새들이 되었죠. 이렇게 가끔씩 나와서 숲을 파괴한답니다.' 


나는 찬찬히 마을을 둘러보았다. 수정으로 이루어진 바다와 달리 여긴 모두 물방울이었다. 물방울을 하나 따서 먹어보니 이상한 느낌이 없는 평범한 주스 같은 맛이었다. 


'난 원래 세계로 돌아가고 싶어. 여기 온 뒤로 정신이 하나도 없으니까.' 


조금 더 작은 나무 하나가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그건 어려울지도 몰라요. 바다님은 너무 외로워서 늘 누군가가 곁에 있어 주기를 원했으니까요. 순순히 놔주지는 않을 거예요. '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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