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나루 작가 사무소 1일 차!

내 이름은 하늘나루

by 하늘나루

본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허구이나, 지명, 시설명의 경우 이름만 따올 뿐 실제와는 전혀 다른 것임을 사전에 알려 드립니다. 또한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일러스트와 사진은 Ai를 사용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과 촬영물인 만큼 무단 복제를 엄금합니다!


나는 하늘나루. 올해로 31세가 되는 작가다. 내가 글을 쓰는 방식은 좀 독특하다. 완전히 지어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사연을 말하면 내가 그걸 다듬어 글로 쓰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작은 상가 건물 3층에 있는 사무실이 바로 내 작업실이다. 물론 찾아오는 고객이 없으면 내가 직접 나가 이야기를 찾아다니기도 한다. 고달픈 작가의 삶이지만 사람들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오는 걸 보는 게 내 삶의 낙이다.


KakaoTalk_20250118_143107596.jpg 블로그 옆 건물 3층에 입주한 하늘나루 사무소. 내 MBTI인 INTJ 로고가 선명하다.


'빙수.. 그 가게의 빙수가 꼭 먹고 싶단 말이야..'


'아저씨, 그만 진정하세요. 이제 그 빙수 가게는 없어요. 대신 연애도 하고 가족도 생기셨잖아요? 그거면 된 거죠 뭐. 기분 좀 푸세요.'


지난번에 쓴 글 '눈물로 만든 빙수'의 주인공 이 모씨다. 이제 주인 할아버지가 은퇴하셔서 빙수 가게가 없는데도 가끔 우리 사무소에 와서 술을 마시며 그리워하곤 하는 것이었다. 그 빙수의 맛을 잊을 수 없다나 뭐라나. 이번에도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간신히 돌려보냈다. 휴, 정말 힘든 하루였다. 어제는 산타가 찾아오더니 오늘은 빙수 아저씨였다. 그런데 노크 소리가 들렸다.


-똑똑똑-


'저기요, 이번 달 블로그 챌린지는 다 하셨나요? 오늘까지 완료하셔야 경품으로 스티커를 받을 수 있습니다!'


또 왔다. 네이버 블로그다. 분명 작년에 다 했는데 오류가 났는지 계속 찾아오신다. 사무소 입구에 '404 에러' 팻말을 걸어 두니 그제야 돌아가신다. 세상엔 왜 이렇게 이상한 사람들이 많은지 원. 표 족한 로고의 푸른 불빛을 끄고 이제 퇴근할 준비를 했다. 여기서 일해온 지 어언 십 년이 넘었다. 낡은 책상, 구석에 놓인 중문과 졸업장, '하늘나루'라는 빛바랜 명함까지 모든 게 나에게는 그저 추억이다. 마지막으로 인터넷을 끄고 집으로 가려는 찰나 밖에서 누군가 걸어왔다. 젊은 학생이었다.


옷차림이 조금 특이하기는 했다. 놀이공원에서나 볼 법한 옛 정장에 희한한 모자까지 쓰고 있었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무언가 특별한 사연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하늘나루, 침착하자. 글감을 놓치지 않으려면 최대한 친절하게 맞이해야 한다.


'안녕하세요! 하늘나루 작가 사무소입니다. 무슨 일 때문에 오셨나요?'


과잠을 보아하니 근처 나루대학교에 다니는 학생인 모양이다. 그는 그 특이한 옷 위에 과잠을 덮어쓰고 있었다.


'저는 저 아래 개포동 사는 사람입니다. 지금은 나루대학교 국문과에 다니고 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시절에 겪은 이야기가 있는데, 좀 이야기로 만들어 주시면 안 될까요?'


'어떤 이야기인데 그러죠?'


'그... 다른 세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말해도 믿는 사람이 없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그 학생은 갑자기 소심한 어조로 말했다. 다른 세계라니 이건 또 무슨 말인가. 그래도 사람 일은 내일도 모른다. 지난달에 말하는 음료들과 경기고의 요리스타가 찾아왔을 때도 푸대접하다 그대로 보낼 뻔하지 않았는가? 이번에는 절대 그냥 보내면 안 된다. 어떻게든 주제를 잡아 내야 한다.


'괜찮습니다! 사실이 아니어도 글의 소재가 될 수 있다면 대환영입니다. 마침 찾아오시는 분도 없어 심심했었는데 이야기나 들어 봅시다.'


나는 우리 로고가 들어간 블루 레모네이드를 한 컵 타와 그의 앞에 놓았다. 그는 에이드를 한 컵 들이키고 입을 열었다. 난 연필을 깎기 시작했다.


'2022년 겨울 무렵이었죠 아마. 오늘처럼 달이 밝은 어느 날에...'


제 이름은 장서현, 하나고등학교에 다니는 2학년 학생입니다. 유명한 학교에 다니긴 하지만 그와 별개로 제 실력은 그다지 좋지 못합니다. 반에서는 늘 하위권이고 소심한 성격에 외모도 평범합니다. 그래서 소개할 것도 거의 없습니다. 집은 멀리 개포동에 있는 터라 기숙사가 아니었다면 정말 큰일 날 뻔했습니다. 그건 저와 함께 통학하는 제임스도 마찬가지였죠.


우리가 사는 곳은 조금 특이한 곳입니다. 분명 서울시 강남구 소속이지만 묘하게 다른 분위기를 풍기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자면 양재천 구석구석에 있는 범선 잔해나 대모산에 흩어진 유럽식 건물 같은 것들, 그런 잔해들은 이곳에 아파트 단지가 세워지기 훨씬 전부터 이곳에 있었다고 합니다. 저도 한 번 본 적이 있습니다. 마치 서울역을 연상케 하는 작은 돔이나 성벽 같은 것이 이끼 낀 채로 버려져 있더군요. 그래서 관광객들이 종종 찾아오곤 했습니다. 밤을 새 가며 찾아보기도 했지만 그것들이 무엇인지는 아직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KakaoTalk_20250118_175612180.jpg 대모산 언저리에 있는 고풍스러운 건물들.


'언젠가 들었어. 1년 어느 날이 되면 양재천의 폭이 엄청 넓어지고, 그 사이로 배들이 오간다고 말이야. 그 배들은 그대로 바다로 나간데.'


'설마. 거긴 폭이 좁아서 배가 못 다녀. 그건 그냥 전설 아니야?'


'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 우리 족발이나 먹자'


다현의 말에 제임스가 대답했습니다. 제임스는 오스트리아계 미국인이지만 사투리를 쓰는 친구고, 다현은 우리 집에서 네 블록 정도 떨어진 거리에 사는 키가 아주 큰 친구입니다. 지금은 혼자 살고 있지요. 원래 할아버지와 함께 살다가 실종되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다는군요. 다른 가족들이 있기는 하지만 전 이제까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습니다. 서류상에도 있고 집에 갈 때마다 가족사진도 늘어나는데 제가 직접 본 적은 없습니다.


혹시 귀신일까요?


아마 아닐 겁니다. 최소한 전 그렇게 생각해요. 다현은 너무 밝고 활발해서 흔히 생각하는 음침한 귀신과는 거리가 멀 기 때문입니다. 코로나가 터지고 동네에만 있게 되자 우리는 대모산의 유적을 하나 개조한 카페에서 자주 만났습니다. 실종된 다현의 할아버지는 우리나라에서는 드문 탐험가였기에 저에게 왕왕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제임스는 먹을 걸 얻어먹으려고 따라왔고요. 셋이 모이자 다현이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너, 개포(開浦) 동에 왜 포(浦, 물가)가 들어갔는지 알아? 여긴 바다는커녕 조그만 양재천이 전부잖아. 그런데 그런 이름은 인천이나 부산 같은 큰 항구 도시에나 붙는 이름이야.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길 그렇게 불러.'


전 그 애가 왜 그러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이름쯤이야, 한자로 적당히 옮겼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친구가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습니다. 물빛이 투명한 물가 마을의 사진이었습니다. 뒤로는 유럽식 건물이 있고, 앞으로는 고개잡이배와 여객선이 빼꼭한 넓은 강이 있었습니다. 곳곳에 꽃과 정원이 있어 무척 아름다웠지요. 그 사진 아래에는 휘갈긴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개포동, 1994년'


다현은 들뜬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이 사진, 실종된 우리 할아버지가 보내신 사진이야. 할아버지가 대모산에 오르시고 3년이 지난 어느 날 우리 집에 도착했지. 분명 할아버지는 행방불명되셨는데도 우편이 왔어. 우리 가족이랑 경찰은 그 편지가 어디서 왔는지 몇 달을 찾았지만, 뭐, 결국 찾지 못했어. 사실 비슷한 곳조차 없었지 뭐니. 간판이랑 한글로 보아서는 우리나라인데, 한국에는 그렇게 집 가까이 여객선이 드나드는 도시 자체가 없다는 거야. 그리고 여기 이 부분을 좀 봐'


'거 입맛 떨어지는 이야기구먼'


그는 사진의 한 구석을 가리켰습니다. 비행선이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익숙히 보았던 것이랑은 조금 달랐습니다. 5층 건물 정도 되는 높이의 곤돌라가 붙어 있었던 것입니다. 뒤에는 알 수 없는 기계 장치도 한가득이었습니다. 마치 교과서에서 보았던 증기 기관차 같기도 했습니다.


'세상에 저런 비행선은 없어. 저렇게 많이 붙어있으면 당연히 추락하거든. 그래서 경찰에서는 누군가가 장난으로 보낸 합성사진으로 판단하고 수사를 끝냈지. 하지만 만약 저런 곳이 있다면 저기야말로 진짜 우리 동네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글쎄, 너희 할아버지는 조금 독특하신 분이셨으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정말로 친구의 할아버지는 기행으로 유명했거든요. 맨몸으로 한강을 건너고 아프리카에서 표범의 공격을 받은 것은 물론, 벌집을 멋대로 건드셨다가 병원 신세를 진 적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하지만 친구가 보여준 사진은 흥미롭기는 했습니다. 저런 곳이 있다면 열린 포구라는 개포(開浦)라는 이름도 잘 어울릴 것 같았습니다. 다현은 우리를 둘러싼 낡은 유적을 가리켰습니다. 마침 해가 질 무렵이라 더 신비로워 보였죠.


'말도 안 되잖아. 여기 왜 이런 유적이 있어? 한옥도 아니고. 분명 무언가 있지 않을까?'


다현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습니다. 제임스는 방금 나온 족발 세 점을 통째로 삼켰습니다.


'맛있노'


'내가 보기에는 대한제국 때 건물 같은데? 아니면 일제 때 생겼거나. 양재천의 범선은 일본인들이 유람하던 잔해겠지'


제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다현은 제 표정이 우스웠는지 한참 웃고는 계산대로 갔습니다. 사실 이런 성격 때문에 학교에서는 다현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친구들이 잘 없었습니다. 저와 제임스를 빼면 말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족발 얻어먹으니 좋다.'


제임스가 말했습니다. 다현, 성격은 이렇게 이상해도 엄청난 부자입니다. 아파트가 가득한 동네에서 하나밖에 없는 저택에 살고 있으니까요. 개포동, 아니 강남 전체를 통틀어도 이만한 집은 정말 드물 겁니다. 집 입구에는 일어날 흥(興) 자가 네 개 쓰인 �이라는 한자가 있었는데 성씨로 보였습니다. 저는 이런 성씨는커녕 비슷한 글자도 본 적 없어 다현에게 물었습니다.


KakaoTalk_20250118_173235285.jpg 그 중에서도 가장 좋은 집이었다.


'이건 무슨 뜻이야? 세상에 이런 글자가 다 있어?'


'그건 우리 가족 성이야. '정'이라고 읽어. 그래서 내 이름이 정다해잖아?'


'넌 진짜 특이하구나. 이름값 하는구먼.'


집 안에는 호랑이 동상이 꽤 있었습니다. 다현은 그 동상들이 할아버지 아프리카에서 사 온 것들이라고 했지만, 이상한 건 그것뿐이 아니었습니다. 호랑이들이나 먹을 법한 생고기들이 냉장고에 가득이었기 때문이죠. 저는 그것들이 뭐냐고 물어보았지만 다현은 족발 만들어 먹을 고기라고 했습니다.


족발? 아무래 보아도 1등급 소고기인데. 뭐, 그거나 그거나 다 맛있는 음식이죠. 다현은 코로나 동안 집으로 절 초대해 고기를 구워주기도 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저한테 관심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게 고기를 좋아하는 제임스는 한 번도 데리고 온 적이 없는 걸 보면 말입니다. 제임스는 그걸 늘 아쉬워했습니다.

깜빡했습니다. 여기 사는 친구는 제임스와 다현 말고도 한 명 더 있습니다. 이름은 김서경, 하나고의 학생회장이었습니다. '었습니다'라고 하는 이유는, 실종되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하나고에 급식을 운반하던 트럭이 실종됐습니다. 운전사가 잠시 자리를 떠난 사이 주자창에 있던 트럭이 사라졌는데 CCTV에도 말 그대로 '번쩍'하면서 사라진 것 외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았습니다. 나름 경찰이 와서 조사했는데도 아무런 흔적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도둑의 소행으로 일단락되어 그대로 묻혔죠. 급식 회사에서는 거세게 항의했지만 보험 처리가 되어 그냥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몇 달 후에 학생이 실종되었습니다. 2학년 학생회장을 맡던 김서경이 갑자기 사라진 것입니다. 역시 트럭처럼 아무런 흔적도 없었고 CCTV에도 기록이 없었습니다. 지역 경찰과 형사들, 그리고 공무원들까지 동원되어 근처를 수색했지만 찾을 수 없어 미제 사건으로 남았습니다. 서경은 공부도 잘하고 외모도 뛰어났기에 처음에는 '드디어 가출했구나'라고 생각하며 내심 통쾌했지만, 모두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저도 우울해졌습니다. 회장 자리는 일 년 내내 공석으로 남았고 몇몇 행사도 취소되었습니다. 워낙 존재감이 컸던 친구라 허전함이 배가 되었지만 우리가 달리 할 수 있는 건 없었습니다.


겨울방학 동안 주차장에 있던 차들이 전부 사라지는 일이 또 벌어졌습니다. 일하던 경비 한 명까지 실종되었고요. 이번에는 학교에 특별 위원회가 열려 1년 간 학교가 폐쇄되었습니다. 마침 코로나가 터져 저는 기숙사를 떠나 본가가 있던 우리 동내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지요. 평소처럼 제임스, 다현과 동네를 산책하던 어느 겨울밤에 그 애가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이 역 엄청 깊은 거 알지? 아래에서만 보이는 그림이 있어'


구룡역 지하였습니다. 사실 저도 승강장이 있는 지하 6층만 이용했지, 폐쇄 상태인 8층에는 내려 본 적이 없었습니다. 내려가서 보니 과연 다현이 가리키는 천정을 보니 조그만 그림이 있었습니다.


'저게 뭐야? 여기서는 잘 안 보이는데.'


다현이 가방에서 쌍안경을 꺼내서 저에게 주었습니다. 이런 걸 가지고 다니다니 그 할아버지에 손녀가 분명했습니다. 그걸로 천장을 보니 과연 작은 그림이 하나 있었습니다. 사진처럼 작은 항구가 그려진 마을 그림이었습니다. 조금 달랐지만 분명히 비슷했죠. 그런데 더 물어보려고 보니 다현은 이미 위층에 올라가 손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안녕! 다음에 학교에서 보자! 나 먼저 간다!'


'쟤 오늘 단단히 돌았나. 그 코로나 블루인가 하는 게 저건고?'


제임스가 말했습니다. 정말 종잡을 수 없는 친구였습니다. 그 순간 역 위의 그림이 반짝인 것 같았습니다. 마치 우리를 노려보는 것 같았죠.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