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을 나갔다가 그대로 실종되었다.
2022년의 겨울, 달이 유독 밝은 날이었습니다. 저는 재건축과 이사를 앞두고 동네를 마지막으로 돌아보려고 마음먹었는데 대모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눈에 띄었습니다. 장비는 따로 없었지만 동네 뒷산이라 충분히 올라갈 수 있었죠. 저는 지난번 올라갔을 때처럼 경치를 구경하리라 마음먹고 산길로 올랐습니다. 곳곳에 널린 유럽식 유적들이 신비로움을 더했습니다.
처음에는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늘은 눈이 시릴 정도로 파랬고 나무 그늘도 무성해 걷기에는 그만한 날씨가 없었습니다. 공기도 상쾌했지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갈림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에도 와 본 적이 있지만 갈림길은 없었습니다. 간혹 샛길 같은 건 있었지만 그렇게 포장이 잘 된 갈림길은 전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호기심이 들어 그쪽 길로 가 보기로 했습니다. 마침 공사 표지가 붙어있기에 새로 지은 산책로인 줄 알았지요. 휴대전화도 있었기 때문에 걱정이 없었습니다.
갈림길의 입구는 특이한 점이 없었습니다. 짚을 엮어 만든 길이 있었고, 여타 산책로처럼 통나무가 놓여 있었습니다. 조금 지나자 공기가 달라졌습니다. 단순히 상쾌한 공기가 아니라 무언가 탁 트인 듯한 조금 다른 분위기의 공기였습니다. 풍경은 그대로였지만 저는 무언가 미묘하게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산의 저녁 공기 사이로 석탄 타는 냄새가 풍겨왔다고 해야 할까요. 그리고 한참을 걸었습니다. 무려 평지에서요. 대모산은 그저 동네 뒷산이고 평지는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전 한참을 걸어가고 있었지요. 무언가 이상했습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휴대전화를 보았습니다. GPS가 전혀 잡히지 않더군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혹시 저도 서경이와 하나고 경비처럼 실종되어 버리는 것 같아 심장이 철렁했지요. 대모산이라지만 엄연히 서울 한복판이었는데 전파가 안 잡힐 리 없었습니다. 그건 마치 뉴욕의 센트럴 파크에서 전화가 안 되는 그런 류의 일이지 않겠습니까? 다행히 전화는 되어 얼른 산 입구에서 보았던 강남구 녹지관리과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얼마 뒤 전화국 교환원이 전화를 연결해 주어 구 사무소에서 데리러 가겠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전화국 교환원이요. 그런 건 없어진 지 한참이 지났습니다. 요즘은 스마트폰 시대입니다. 교환원이 있을 리가 없지요. 그런데도 분명히 교. 환. 원이라고 했습니다. 구 사무소도 이상한 명칭입니다. 우리는 그걸 '구청'이라고 부르기 때문입니다.
멀리서 경쾌한 트럭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런데 조금 낯설었습니다. 그 트럭은 우리가 아는 전기 트럭이 아니라 희한 장치가 달린, 역사책에서나 나올 법한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직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커다란 중절모와 화려하게 장식된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제가 사는 시대에는 놀이 공원에서나 그런 옷을 입었습니다. 게다가 사람이 아니라 동물의 모습이었지요. 그들은 저에게 다가와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걸었습니다.
'헉. 어떻게 동물들이 자동차를 운전..'
전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나 동물들은 별 이상한 사람 다 본다는 표정으로 제 말을 무시했습니다.
'연락하신 분이신가요?'
내가 그렇다고 말하자, 나는 산에서 길을 잃었으니 집으로 데려가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제가 말한 주소에는 시 사무소가 있지 주택은 전혀 없다고 말입니다. 우리들은 한참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구 사무소에서 논의하는 걸로 합의를 보았습니다. 저는 그들의 트럭에 타서 빠른 속도로 대모산을 내려갔습니다. 그들의 옷과 트럭에 새겨진 문양을 자세히 보았습니다. 분명 강남구의 로고였지만 어딘가 조금 달랐습니다. 강남구 로고 위에 독수리와 왕관이 있었고 아래는 한자로 '迎新龍皇'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저는 그게 뭔지 한참을 물었지만 그들의 대답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죠.
'글쎄, 거기에는 시 사무소밖에 없어요. 아파트는 또 뭔가요? 혹시 외국에서 오셨나요?'
'아파트. 아파트 몰라요? 서울 곳곳에 있는 건물들요.'
'허 참. 시골에서 올라오셨나. 여긴 그런 거 없어요.'
그런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주위의 변화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산속의 나무들이 점차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죠. 거의 모든 나무에 별과 같은 것이 달려있어 화려하게 빛났습니다. 마침내 산에서 내려오자 이제껏 보지 못한 광경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산 아래에는 진짜 개포(開浦) 동이 있었습니다. 한강보다 수 배는 폭이 넓어진 양재천에 무수히 많은 증기선과 범선이 오가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다현이 보여준 사진이 정말이었던 겁니다.
양재천가에는 커다란 수산 시장이 하나 있었는데 장어를 비롯한 처음 보는 민물고기가 가득이었습니다. 저는 꿈에서 깨어나기 위해 볼을 때리고 혀를 깨물었지만, 여전히 눈앞의 풍경은 그대로였습니다.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던 거죠. 다만 시장의 사람들이 모두 동물이었습니다. 엄청나게 긴 금붕어는 물론이고 다리가 달리고 눈이 여러 개인 물고기도 있었죠.
'오늘을 고기가 쌉니다! 시리팩스 30kg이 들어왔으니 많이들 사가세요!'
앞치마를 맨 펠리컨이 소리쳤습니다. 그와 동시에 다른 펠리컨들이 그 다리 달린 물고기를 사갔습니다.
하늘에는 거대한 비행선 몇 대가 떠 있었습니다. 현실의 비행선과 비교하자면 승객이 타는 곤돌라가 압도적으로 컸습니다. 프로펠러도 몇 중으로 달려 있었고, 모두 달의 그림을 새기고 있었지요. 거리에는 트럭과 비슷한 탈것들이 가득했습니다. 교과서 속 옛날 런던이나 일제 강점기의 경성과 차라리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분명 그곳은 강남이었습니다. 타워팰리스도, 코엑스도, 대치동과 학원까지 모두 그대로였습니다. 물론 제가 알던 것들과는 전혀 달른 형태였지만요.
'뭘 그렇게 신기하게 보시나? 서울 처음 와 보오?'
트럭에 탄 직원이 말했습니다.
구 사무소의 트럭이 거리를 질주하는 동안 저는 행인과 건물들을 유심히 보았습니다. 마침 제가 잘 타던 '401번 버스'와 '강남 01'번이 학생들을 가득 태우고 대치동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다만 학생들이 옷차림이 19세기에나 볼 법하다는 걸 빼고요. 버스라지만 사실 증기관차에 가까웠습니다. 광고도 물론 있었습니다. '대성학원'은 '대성 월급소(月習所)'로 바뀌어 있었고 학생들은 등에 가방 대신 처음 보는 달 모양 물건을 매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아이들이 어디로 가는 거죠?'
제가 직원에게 물었습니다. 직원은 월습소에 간다며 뭘 그럴걸 묻냐는 듯한 표정으로 절 쳐다보았습니다. 11월에 두 번째 달이 뜨는데, 그날을 대비하여 열심히 공부하는 중이라는군요. 코엑스도 물론 있었지만, 거대한 비행선 정류장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영어로 'COEX'라 적힌 대형 비행선이 수시로 손님을 나르고 태우러 갔습니다. 그 사이에는 증기기관이 달린 택시, 버스들이 열심히 돌아다녔지요. 마침 행사를 하는지 무대 위 사회자의 말이 들렸습니다.
'오늘은 새로 뽑힌 시황(市皇)님께서 집무를 시작하는 날입니다. 시황께서는 성민(城民) 여러분들의 삶에도 달의 기운이 함께하기를 바란다고 축사하셨습니다'
도대체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 직원이 '도착입니다!'라며 경쾌한 목소리로 저를 불렀죠. 저는 트럭에서 내려 그들을 따라 구 사무소로 들어갔습니다. 벽에 걸린 지도를 보았는데 분명 강남구의 지도가 맞았습니다. 그러나 구청, 아니 구 사무소는 마치 성처럼 변한 상태였습니다. 육중한 문을 열고 들어가니 누군가 저를 맞이했습니다.
'어서 오소! 집을 찾으신다고?'
담당자가 말했습니다. 저는 기겁했습니다. 그건 거대한 까치였거든요. 물론 붉은 제복과 모자를 쓰기는 했지만요. 제가 저의 집 주소와 연락처를 말했더니 그는 고개를 절래 절래 저었습니다. 거긴 집이 아니라 시 사무소가 있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저는 무서워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지만 그는 저를 화려한 방으로 데려갔습니다. 더 자세한 지도가 있는 방이었죠. 그가 지도 한 구석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여기가 얼마 전에 시 사무소가 새로 신축된 곳이라네. 그전에는 그냥 밭이었고. 자네가 말하는 그런, 그 아파트란 건 처음부터 없었네'
제가 우겼지만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저는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스마트폰을 본 까치의 눈빛이 흔들리더니, 급히 어딘가에 연락했습니다. 뭐라고 하는지 잘 듣지는 못했지만, '외부인'이라는 단어는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날개 달린 강남구 문장으로 장식한 까치 병사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는 저를 알 수 없는 곳으로 끌고 갔습니다. 방 문에는 '구류소'라고 적혀 있었죠. 거기서 며칠 밤낯이 흘렀습니다. 저는 자다가 깨고 또 자기를 반복했습니다. 도무지 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 수 없었죠. 까치들은 음식과 물을 주었지만 제가 묻는 질문에는 거의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말하길,
'시 사무소장님의 명령입니다'
라고만 하는 것입니다. 감옥에서 지내는 동안은 햇빛을 거의 볼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제 손을 보았는데, 세상에나, 사람 손이 아니었습니다. 온 몸을 뒤덮은 흰 털과 개처럼 보이는 발이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언제부터 이렇게 변한 것인지는 전혀 알 수 없었으나 얼굴을 만져 보니 아마도 늑대로 변한 모양이었습니다. 어쩌면 그들의 짓일지도 몰랐죠. 끌려 들어온 것도 억울한데 모습까지 마음대로 바꾸다니 정말 분통이 터졌습니다.
'이게 무슨 짓이야? 이 괴물들아, 날 당장 원래대로 돌려놔!'
저는 목청이 터져라 감옥 밖으로 외쳤습니다. 그러나 감시를 서는 까치들은 오히려 미소를 띠고 바깥문까지 잠가버렸습니다. 저는 그만 실신하고 말았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요. 제 옆 방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목소리는 남자라기보다는 여자 목소리에 가까웠습니다. 익숙하기까지 했죠.
'당신 어디서 왔어요?'
'아, 사람이군요! 전 서울시에서 온 하나고 출신 학생이에요. 아무런 죄도 지은 게 없는데 여기 갇혔어요. 제발 살려주세요! 전 아직 대학도 못 갔다고요.'
제가 벽을 긁으며 애원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몇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은 아파트가 무슨 뜻인지 알고 있나요?'
저는 당연한 걸 묻냐며 집들이 모인 곳이라고 했지요.
'서경아? 도대체 어떻게 여기서...'
몇 분 정도가 흐르자 상대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녀는 교복 차림이었는데, '하나고등학교'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변형된 모습이 아니라 진짜 교복이었습니다. 전 그녀가 몇 년 전 실종되었던 저희 반 회장 서경이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습니다. 도대체 여기서 무얼 하고 있었던 걸까요?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