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소굴에 걸어서 들어갔다.

by 하늘나루

본 글을 '낭만술집 달빛주점 시리즈'의 일부입니다. 모든 일러스트는 하늘나루의 창작물입니다.



저와 서경은 도시를 돌아다녔습니다. 어지간한 꿈이 아니고서야 달고기를 잡을 수 없기 때문에 저희는 도시를 다 뒤졌습니다. 하지만 누가 꿈이 큰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며칠 새 아무런 진척도 없었습니다. 애초에 꿈을 먹고사는 고기가 있을 리가 없는데 괜한 짓을 한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서기도 했습니다.


'꿈이 큰 곳은 어디일까? 아마도 조금 젊은 쪽이 좋지 않을까?'


'허.. 또 인문학도 버릇 나왔구먼. 너도 여전하구나?'


서경이 괜히 철학자처럼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말에도 일리가 있었죠. 대부분 새로운 시작을 젊을 때 하니까요.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했습니다. 달고기의 먹잇감이 될 만한 꿈은 젊음 그 이상이어야만 했습니다.


'학교. 학교... 대학교는 어떨까? 거기야말로 '열정이 넘치는 곳'이라고 왕왕 홍보하잖아? 난 잘 모르겠지만, 아마 아직 이룬 게 아무것도 없는 편이 꿈을 가지기에는 더 좋을 것 같아. 흰 종이에는 뭐든지 그릴 수 있으니까'

'그건 수능특강 표지에나 적혀 있는 말이잖아. 뭐, 방법이 없으니 일단 가기나 해 보자.'


저와 서경은 그 나라에서 가장 커다란 대학교로 향했습니다. 입구에는 호랑이 동상 대신에 옛 전설에서 나오는 늑대와 인간의 동상이 대신 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는 어김없이 호랑이 동상이 가득했습니다. 또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이곳의 학생들 중에는 정말로 호랑이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아기 호랑이 환영' 같은 광고를 사용해도 아무런 위화감이 없었죠. 하지만 저희가 학생이 아닌데 무엇을 알 수 있겠습니까. 우선 그저 잠시 구경 온 외부인이었을 뿐입니다. 저는 이 상황이 너무 어이가 없어 그만 주저앉아 허허 웃었습니다.


'허허... 허허.... 그나저나 점장님, 호랑이로 변신하셨는데 혹시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여기 호랑이들이 이렇게 바글거리면 아는 사람이라도 있겠지.'


난 무심코 서경에게 말했습니다. 그녀는 잠시 저를 이상한 사람처럼 쳐다보았지만 이내 주점에서 연락을 받고 얼굴이 밝아졌습니다.


'점장님이 이쪽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우리를 교환학생 신분으로 보내줄 수 있다고 하셨어.'


김이 신이 나서 소리쳤습니다. 하지만 며칠 뒤 수강 신청을 할 때가 되자 할 말이 없어졌습니다. 이렇게 과목을 고르는 게 신기하기도 했지만 시간대가 그야말로 엉망이었거든요.


'허... 허허..'


'여기 애들은 잠도 안 자나 봐. 새벽 한 시에 시작하는 수업이 세상에 어디 있냐?'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이건 세시에 시작해서 다섯 시에 끝나니까.'


불평을 해도 소용없었습니다. 밤이 되자 저희는 개포동에서 출발하는 배를 타고 갔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이 세계에서는 개포동에 페리 터미널이 있어서 증기선을 타고 그대로 학교 근처까지 도착했습니다. 가는 길에 본 유럽식 타워팰리스와 코엑스는 정말 멋있었죠. 한 시간 정도 지나자 학교에 도착했습니다.

KakaoTalk_20250118_143022872.png 밤에 본 학교 건물이다.


와, 한밤중에 보는 학교는 새로웠습니다. 옛날 대학 탐방 때 보았던 건물들이지만 크기가 기존의 몇 배, 아니 몇십 배는 되어 보였습니다. 본관 건물 뒤로는 마치 유럽의 성당을 방불케 하는 거대한 탑이 있었습니다.


거기 꼭대기에서는 신입생 환영회와 더불어 모든 교직원이 모이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거기서 적당히 포부가 커 보이는 사람을 데려가면 작전 성공인 거죠. 달빛주점에서 준 돈도 있으니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닐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도 없는 탑을 올라가는 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이걸 무슨 수로 올라가지? 계단도 하나도 안 보여'


결국 저희는 환영회 시작 시간도 놓칠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뒤에서 말을 걸었습니다.


'혹시 너희 달빛을 쓸 줄 모르는 거야? 내가 도와줄게'


처음 보는 키가 큰 곱슬머리의 백호 학생이었습니다. 뭐랄까, 그 눈빛과 말투가 다현과 닮은 듯했지만 여기 다현이 올 리가 있겠습니까. 저는 서경에게 작은 소리로 속삭였습니다.


'너 달빛 쓸 줄 몰라? 전에 집에서 만든 병들은 어떻게 했어?'


'집에 두고 왔지! 이럴 줄 누가 알았겠어?'


'저기 얘들아, 식이 얼마 안 남았는데 일단 같이 가자. 너희도 거기서 나누어주는 안내서가 필요할 거야.'

그 호랑이가 말했습니다.


우린 당황했지만 다른 수가 없어 그 애의 달빛에 타고 같이 학교로 올라갔습니다. 마치 배와 비슷한 기구였는데 이 세계에서는 그런 걸 타고 다니는 모양이었습니다. 역시 목소리와 말투가 어디서 본 듯했지만 그저 우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난 지리학과 출신 제인이야. 너희랑 같은 신입생이지. 만약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연락해!'


그 학생은 순식간에 인파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연락처도 안 주고 연락하라니 어디 이상한 게 분명했습니다. 어찌 되었든 우리는 환영회장에 간신히 도착했습니다. 거기에는 교수와 학생들이 아주 많았지만 오히려 한 명도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식장을 헤매고 있으니 총장이 연설을 시작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탑 전체를 울릴 만큼 우렁찼지만 '꿈이 크다'라고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이미 총장의 자리에 올랐으니까요. 이어서 참석한 학계의 주요 인사들, 정부 관계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미 높은 자리에 오른 동물들이라 미래에 대한 기대감은 그렇게 커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부 관계자?'


머릿속에 까치와 독수리가 스쳤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무대 위로 그 독수리가 오르고 있었습니다. 도서관에서 마주쳤던 독수리였습니다.


'서경! 서경아! 그 독수리야. 지금 당장 도망쳐야 해!'


서경은 밤에 일어난 탓인지 졸고 있었죠. 저는 그런 서경을 억지로 깨우고 강당을 가리켰습니다.


'학생 여러분들은 여우와 인간 전설을 알고 계시죠? 저희는 그 여우의 정신을 본받아, 더욱 부강한 세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철저한 감시와...'


연단 위에 오른 독수리가 눈을 반짝이며 저희를 바라보았습니다. 이제 끝났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덕분에 눈에 띄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아슬아슬했죠. 독수리 밥이 될 뻔했습니다.


KakaoTalk_20250118_143024054.png 현실의 K대를 모델로 만든 환영회장.

그 뒤로 며칠을 학교에서 보내며 누가 꿈이 가장 큰 학생인지 찾아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게 보일 리가 있나요. 우리는 점차 본래의 목적을 잊고 학교 생활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학교에서는 달빛을 쓰는 방법과 다른 생물로 변신하는 방법, 구름으로 도넛을 만드는 방법 등 현실의 학교에서는 상상도 못 할 것들을 많이 가르쳐 주었지요. 우리 세계에서는 전혀 할 수 없는 것들이야 흥미 만점이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건 역시 요리 수업이었습니다.


'이 성초 주스는 세상에서 가장 귀하다는 남아메리카 고산 지대에서 직접 공수해 온 주스지. 혹시 맛보고 싶은 학생 있나?'


'저요!'


'혹시 평을 말해줄 수 있겠나? 학생은 문학적 묘사가 뛰어나더군.'


'남미의 고산 지대에 뜬 차가운 달밤, 이에 굴하지 않는 성초에 맺힌 이슬로 만든 청량함이 온몸에 전해졌습니다. 아, 도대체 누가 이걸 주스로 만들 생각을 다 했을까요. 한 모금만 마셔도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기분이 듭니다.'


'학생은 외국에서 왔는데도 한국어 실력이 보통이 아니네요. 상으로 이 병을 통째로 드리겠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감사합니다!'


'잘한다'


서경이 비아냥거렸습니다.


학교 축제도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솔직히 하나고 축제랑 비교도 안 되었지요. 하늘을 나는 축제가 말이 됩니까. 우리가 직접 날아다니며 캠퍼스에 숨겨진 성초 열매들을 많이 모은 팀들이 이기는 경기였습니다. 독수리들이 끼어들었지만 달빛 날개를 자르면 그만이었습니다. 괜히 그 독수리 생각이 나서 통쾌하기까지 했죠.

결국 우리는 달빛주점에서 받은 노트와 자료들은 사물함에 처박아두고 상품으로 받은 음료를 들고 돌아다니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하나고에서 겪은 일과 여기서 이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낮이 되었습니다. 여기서는 한밤중인 셈입니다.


'하나고 때 공부하느라 밤을 새운 적은 있는데 놀면서 새기는 처음이구나. 아, 밤이 아니라 낮을 샌 건가?'

서경이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제 손에 사진 한 장을 쥐어 주었습니다. 예전에 서경이 실종되기 전에 찍은 사진이었습니다. 손에는 흰 여우 인형이 들려 있었습니다. 얼핏 보면 지금 변장한 모습이랑 완전히 같았습니다. 한 구석에는 다현과 제임스가 빙그레 웃고 있었지요. 저는 잠시 다현이 보고 싶었습니다만, 차마 그런 말을 할 용기는 없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서경이 어떻게 이 세계로 오게 되었는지 저는 들어 본 적이 없었네요. 저는 사진을 돌려주고 이야기 듣기를 청했습니다.


'그때 환경에 관한 발표를 했잖아? 학교 뒷산에 사는 동물들을 조사한다고 몰래 기숙사에서 나왔어. 물론 간식을 사 먹으려는 명분이었지만 말이야. 뒷산에서 한참을 헤매다 다시 산을 내려오니까 여기로 왔어. 마침 서울로 올라가는 증기 버스가 있길래 그걸 타고 갔지. 그 버스의 종점이 달빛주점이었는데, 점장님이 바로 데려가 날 구 사무소에 소개해 주셨어. 너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야.'


그러면서 저에게 웃음을 지었죠. 그러나 뭐라 답하기도 전에 누군가 끼어들었습니다.


'지금 그 말 사실이니?'


우리는 말없이 깜짝 놀라 뒤를 쳐다보았습니다.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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