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소설 시리즈 '낭만술집 달빛주점'의 일부입니다. 모든 일러스트와 사진은 하늘나루의 창작물입니다!
'제발 꿈이어라!'
마음속으로 빌며 눈을 떴습니다. 하지만 어림도 없었죠. 푸른 잎이 어른거리는 창문 너머로 햇살이 눈부셨고, 서경은 아침을 준비했으니 어서 내려오라고 했지요. 저는 조금 설레는 기분으로 계단을 내려갔습니다. 접시에는 처음 보는 음식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것들은 은하수를 품은 얼음 조각들 같았습니다. 서경은 모두 달빛으로 만든 음식이라고 했습니다. 먹어 보니 달콤하고 톡 쏘는 맛이 났습니다. 여태껏 먹어 본 적 없는 맛이었지만 굉장히 맛있었죠. 한 켠에는 빵 같은 우리 세계의 음식도 있었습니다.
'진수성찬이구먼. 배고팠는데 잘됐다.'
'도대체 이 음식들은 다 뭐야? 먹어도 되는 거야?'
'나도 여기 온 지 일 년이 넘었으니 특별히 설명해 줄게. 여기는 쌀이나 밀 대신 성초(星草)라는 특별한 작물을 키워. 식물은 햇빛을 먹고 자라지만 성초는 달빛을 먹고 자라지. 별처럼 빛나는 성초 열매로 빵도 만들고 술도 만들어. 물론 먹을 수 있는 거야. 내가 보장해.'
서경의 말투가 괘씸했지만 구석에 놓인 성초 피자는 정말 먹음직스러워 보였습니다. 한 입 먹어보니, 세상에, 지금까지 겪은 모든 고통이 보상되는 맛이었습니다. 습관처럼 감탄이 나왔죠.
'달달하고 짭조름한 맛! 우리 세상의 피자와는 비교도 안 되네. 고소함과 별처럼 빛나는 치즈의 오케스트라가 내 입에서 펼쳐지는구나. 백주원 셰프를 데려왔으면 지금쯤 유명한 식당이 되었을 텐데.'
'또 시작이다. 문학 동아리에서 그렇게 글을 써대더니 아주 시(詩)가 입에 발렸구나? 그러지 말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얘기나 해 보자.'
아차, 지금 음식 감탄할 때가 아니었죠.
'그럼 여기에는 실종된 사람들이 다 있는 거야?'
'그럼. 그때 사라진 경비 아저씨랑 급식 트럭, 자동차들도 있어. 아저씨는 종업원으로 위장하셨고 차들은 술집 지하에 몰래 세워두었지. 내가 안 들키게 몰래 숨긴 거야.'
'헉. 너 지난번에 달리기 할 때도 꼴찌 아니었어? 어떻게 옮긴 거야?'
'네가? 그렇게 힘이 장사인데 왜 여태 말 안했노?'
서경은 싱긋 웃더니 구석으로 가서 주문을 외웠습니다. 동시에 테이블이며 피자가 공중으로 솟았다가 가라앉았죠. 저는 그만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제임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떻게 한 거여?'
'이걸 마시면 돼. 달빛을 농축시킨 음료인데, 이걸 마시면 날 수도 있고 이렇게 물건도 옮길 수 있어. 주점에서 만든 술의 일종이지.'
그녀가 구석에 놓인 병들을 가리켰습니다.
'완전 대박이잖아. 몇 병만 가져가서 팔면 부자 되는 건 식은 죽 막기겠다.'
'긍께 진짜 신기허다'
'그전에 너희들 돌아갈 방법부터 찾아야 할걸?'
서경이 말했습니다.
'걱정마라이. 내가 있응께 이 집에 아무도 못 들어오노.'
우리는 아침을 먹고 제복을 입고 길을 나섰습니다. 제임스는 남아서 집을 지키기로 했지요. 우리는 여전희 흰 여우로 변장한 상태였는데, 집 앞에서 가장 먼저 오는 버스를 탔습니다. 증기가 많이 나오고 덜컹거렸지만 그런대로 괜찮았습니다. 한참을 달려 내린 곳은 시 도서관이었습니다. 날개가 달린 도서관은 금빛 도금과 대리석으로 마감되어 웅장했습니다.
입구에서 조금 떨어진 낡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제법 내려갔습니다. 그녀가 날개 달린 훈장을 가져다대니 문이 저절로 열렸습니다. 오래된 고문서를 보관하는 방이었습니다. 문에는 여우와 인간의 모습이 새겨진 부조가 있었죠.
'여긴 고문서를 보관하는 도서관이야! 너에게도 보여주고 싶은 자료가 있어서. 이 말도 안 되는 세상의 역사를 보관한 도서관이지.'.
서경이 제 손을 잡고 도서관 구석으로 저를 이끌었습니다.
'3A DHC.'
그녀가 작게 중얼거렸습니다. 그러더니 책 중 하나에 날개가 생겨 마치 비둘기처럼 우리에게 날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저절로 책장을 펼쳐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우리가 읽는 게 아니라 책이 스스로 말했던 것입니다. 책이 입을 여니 구석에 있던 날개 달린 피아노도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마치 한 편의 뮤지컬을 듣는 것처럼요.
-띠리리링-
'내 살다 살다 별 걸 다 보는구나.'
'아주 오래전 어느 날, 한 여우와 어린 인간이 우연히 이곳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어린 인간은 산을 헤매다가, 여우는 먹이를 찾다가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원래라면 둘은 대화할 수 없었지만, 달빛을 받은 덕분에 서로 말할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이곳으로 오는 동물들이 늘어났습니다. 그들은 함께 농사를 짓고, 마을을 만들고 도시를 번성시켰습니다. 모두 서로 말이 통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 마을 안에서 동물은 서로 의지하고 배워가며 살아갔습니다. 인간이 가져온 책들로 학교를 세우기까지 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여우와 인간은 점차 친해졌습니다.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결국 사랑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불가능했던 일이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았습니다. 아이를 가지는 대신 길을 잃은 동물들을 기르며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주인에게 버림받은 동물, 살 곳을 잃은 동물들이 모여들며 주민이 늘었고 마을은 점점 커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물들의 뒤를 밟던 사냥꾼이 마을에 들어왔습니다. 옛날 여우와 들어온 인간을 납치하고 그들이 기르던 동물들을 사냥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여우는 살아남았지만 이미 인간에 대한 증오심으로 뒤덮이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불타는 마을 위에서 인간에 대한 복수를 다짐했습니다. 독수리와 용들은 여우를 도와 인간을 용맹하게 내쫓았습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용감하게 인간들을 무찔렀습니다.
어느 날 여우는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독수리와 용들은 용맹하게 여우를 이어 세상을 다스렸죠. 그 둘의 이야기는 잊혔지만, 인간에 대한 증오심은 후손들에게도 전해져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인간 세계를 모르는 동물들이 대다수입니다. 이 무지한 동물들을 대신해 용족과 독수리들은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건 이것뿐이야. 다른 책은 이미 불태워졌어'
그녀가 말했습니다.
'완전 애들 동화네. 그런데 이야기에 나오는 여우랑 사람이 누구지?'
'나도 몰라. 그런데 이거 생각보다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더라. 우리 주점에서 알아봤더니 짧아야 이백 년이래. 그럼 누가 만들어 낸 가짜일 수도 있지.'
'사람들이 이걸 믿어? 이렇게 단순한 걸?'
'시정부와 황실에서 동물들에게 계속 가르치고 읽히니까 결국 다들 믿더라. 거기 나오는 용족과 독수리들이 이 세계를 다스리고 있어.'
'저.. 이야기 잘 들으셨죠? 전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책은 말을 마치자 꽂혀 있던 서가로 날아갔습니다. 그런데 책이 사라지자마자 누군가 나탔습니다. 한 명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천천히 우리 쪽으로 걸어왔습니다.
'여기 있었군. 여태까지 잘 속였네. 나쁘지 않은 솜씨였다. 이런 기밀 자료를 열람하는 걸 보면 평범한 공무원은 아닐 텐데?'
자세히 보니 정장을 입은 독수리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전에 주점에서 보았던 독수리였습니다. 옆에는 그때 보았던 제복 입은 까치도 있었습니다. 그들의 머리에는 한자로 새긴 '警察'이라는 글자가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이제 시황님께 보고드릴 일만 남았군. 우리 중 첩자가 있었다고 말이야. 이렇게 오래 일했으니 정보를 많이도 빼돌렸겠구나.'
'달빛주점으로 가'
그녀가 속삭였습니다.
처음 보았던 까치가 날카롭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정말이지 그런 소름 끼치는 웃음은 살면서 처음이었습니다. 이내 한 무리의 까치 병사들이 김(金)을 체포하러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호락하게 당할 그녀가 아니었습니다. 그녀가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뿌리자 도서관에 있던 책들이 모두 날아갔습니다. 그 틈을 타 우리는 도망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까치 한 마리가 그녀의 발목을 잡았고, 결국 그녀는 저에게 쪽지 하나만을 남기고 저를 환풍구로 밀었습니다. 이곳의 환풍구는 바람이 나오는 시스템이었습니다. 전 순식간에 지상으로 올라갔습니다. 길 가던 동물들이 신기한 듯이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안녕... 안녕하세요?'
까치들이 더 오기 전에 그곳을 떠나야 했습니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니 멀리서 누군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집에서 음식과 책들, 그리고 보석과 사진들을 모아 상자에 담았습니다. 증거를 없애야 했지요. 마침 구석에 낡은 비행선 하나가 보였습니다. 그런데 시동을 걸 줄 몰랐지요. 아쉬운 대로 석탄 덩어리와 나무판자를 뜯어내서 화로에 넣었습니다. 그러더니 이상한 소리와 함께 비행선이 지붕을 뚫고 날아갔습니다. 저는 천천히 비행선을 몰고 달빛 주점으로 갔습니다. 마침 공중 플랫폼에는 수많은 비행선들이 서 있었기에 그 틈에 껴서 조용히 내렸습니다.
'점장님! 점장님!'
저는 전에 보았던 호랑이를 떠올리며 홀의 문을 열었습니다. 서경을 포함한 동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귀신같이 빠져나온 모양이었습니다. 홀 안의 TV에서는 낮에 있었던 도서관 사건이 방송되고 있었습니다.
'큰일이야. 이번엔 용케 빠져나왔지만 정체가 탄로 났으니 다른 동물로 바꿀 수도 없다네. 이제 어쩌면 좋은가?'
'제임스는? 제임스는 어떻게 되었어?'
서경이 TV를 가리켰습니다. TV에는 독수리들에게 묶인 제임스가 감옥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제임스까지 잡히다니..'
우리는 몇 시간이고 회의를 거듭했습니다. 하지만 결론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미 경찰이 깔렸을 테니 집으로 갈 수도 없었죠. 언제 그 독수리와 까치가 습격할지 모를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점장님은 사태가 일단락될 때까지 달빛주점에서 머물라고 했습니다. 서경은 종종 정보를 모으러 밖으로 나갔지만 저는 그럴 수가 없었죠. 대신에 달빛주점에서 몇 달간 일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술 만드는 기계를 멍하니 쳐다보는 저에게 점장님이 말했습니다.
'여기에만 있으면 심심하지? 내가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겠네.'
'얼마든지요.'
'우리가 알아본 바로는 지금 황실에 있는 용은 진짜가 아니야. 다른 존재들의 힘을 빌려 늙지도 죽지도 않는 것이지. 이 세계에서 용의 수명은 끽해야 팔십 년인데 그 용은 이백 년째 살아있거든.'
'어떻게 그럴 수 있죠?'
'달고기들의 힘을 훔쳤으니까. 그 달고기를 잡아 술로 만들면 용도 어쩔 수 없을 거야. 용의 최대 약점이지. 그 술을 마시면 달고기의 비늘이 용의 몸속에 들어가 힘들 다시 되찾고 용은 죽어버릴지 몰라. 어쩌면 우리도 현실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고.'
'네. 그렇지만 어떻게 달고기를 구하죠? 그 술을 먹이는 것도 힘들 거예요. 수행원들도 많이 데리고 올 테니까요. '
'자네랑 서경이 이 일을 해 주었으면 하네. 서경은 똑똑해서 달고기들이 어디 살고 있는지 잘 알고 있거든. 그건 원래 극비리지만 서경이 시정부에서 일하는 동한 알아내었네. 어때, 자네도 해 보겠는가?'
저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힘들 것 같았지만 어차피 못 돌아갈 바에야 무엇이라도 하는 게 나을 테니까요. 그 달고기라는 건 인천 해역에 서식하는 물고기였습니다. 물론 이곳 세상에서 뿐이지만 말입니다. 저와 김은 그 달고기를 잡아 주점으로 돌아오기로 했습니다. 그 달고기란 건 사람의 꿈을 먹고사는 물고기였습니다. 잠자면서 꾸는 꿈이던, 아니면 말 그대로 미래에 대한 꿈이던 상관없다고 했습니다. 아무도 그 위치를 모르지만, 일단 꿈이 큰 사람을 알아보면 저절로 모인다고 했습니다.
어찌 되었는 그 고기는 너무 귀해서 항상 감시 중이라고 했습니다. 그 달고기를 잡으려면 도시에서 가장 꿈이 큰 사람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우리는 이 도시 어딘가에 그가 있기를 바라며 주점을 나섰습니다.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