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족발 파티

금강산도 식후경이여

by 하늘나루

본 글은 '낭만술집 달빛주점' 시리즈의 일부입니다. 본문의 일러스트, 삽화는 하늘나루의 창작물입니다.



'누군가 기체 탱크에 구멍을 냈어요. 이대로 가다간 방향을 바꾸기 전에 회관이랑 부딪히고 말 겁니다. 빨리 탈출 준비를 하세요!'


창문 밖을 보니 손님들이 줄지어 달빛 날개를 만드는 주문을 외우고 있었습니다. 다른 승무원들은 화물들을 바다로 버리고 있었고요. 하지만 회관에 충돌한다면 모두 폭발할 것이 분명했습니다.


'장(張)! 내 가방 좀 던져 줘.'


제인이 포효했습니다. 제인은 가방에서 거대한 스페너를 꺼내 비행선의 밸브를 잠갔습니다. 그리고 공기 주입구에 호스를 연결해 다시 공기를 채웠지요. 비행선의 고도가 다시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제인의 스페너는 미국 회사 것이었습니다. 우리 세계에서 온 물건이었죠.


'정말 고맙다. 덕분에 큰 사고를 피했구나.'


승무원과 조종사들은 앞다투어 제인을 칭찬했습니다. 저와 서경은 그런 모습을 그저 입만 벌리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죠. 그러나 제인은 심각한 표정으로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서경이 다짜고짜 물었습니다.


'언제 그런 연장을 챙긴 거야? 대단하다.'


'우리, 빨리 내리는 게 좋을 것 같아. 아까 뛰어내리는 손님 중에 그 독수리가 있었어.'


'그럼 쫓기고 있다는 거야?'


'아마도. 정 안되면 변장이라도 해야 해. 분명 하늘나루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니까.'


우리는 객실로 돌아가 짐을 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가방에는 마땅히 변장할 만한 옷이 없었습니다.


'이건 어떨까? 승무원님께 한 번 물어보자.'


서경이 구석에 놓인 코트와 모자를 가리켰습니다. 승무원들은 어차피 남은 옷들이라면서, 은인들에겐 그 정도는 아깝지 않다고 손사래를 쳤습니다. 그런데 저와 대화했던 승무원이 이야기했습니다.


'비행선에 누가 수소를 채워 놓았다. 이건 테러에 가까워. 범인이 일부러 사고를 내고 도망간 것 같다. 너희도 수상한 사람이 있으면 연락해 다오.'


그가 말하며 전화번호를 주었습니다. 아주 오래된 형 식였지만요. 저는 번호를 코트에 넣고 두꺼운 모자를 썼습니다. 제인은 한 손님이 두고 간 물감을 이용해 흰 털을 주황색으로 칠했고요. 저와 서경은 검은 분을 발라 줄무늬 여우처럼 분장했습니다. 정말 다른 동물 같았습니다.


'혹시 그 스패너 어디에서 구한 거야? 여기 물건은 아닌 것 같은데.'


'그 여우와 인간 전설 알지? 우리 선조 중 한 명이 그때 여우와 함께 이 세계로 들어왔다고 해. 마을에 불이 난 뒤에 통로는 폐쇄되었지만 우리 호랑이 일족은 그 길을 드나들 수 있었어. 물론 우리도 결국 금지되었지만, 이건 오래전 인간 세상에 다녀오신 할아버지가 남긴 유품이야.'


'그래서 우리를 신고하지 않았구나. 그런데 말이야, 혹시 그 할아버지는 어디 살고 계셨어? 내가 들어 본 이야기 같은데.'


제가 물었습니다. 어쩐지 다현의 이야기와 닮았기 때문입니다.


'이제야 알았어? 사실 난 다현이야.'


제인이 웃었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변장을 풀었죠. 가방 구석에서 하나고 교복을 꺼내 손에 들여보였습니다. 전에 사진을 보여 준 다현이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옷에도 정(�) 자가 들어간 배지가 달려 있었습니다.


'네가 여길 어떻게?!'


'일부러 그렇게 한 거야. 일부러 널 여기 데려오려고 정보를 흘렸지. 사실 우린 현실과 이곳을 오가며 살아. 원래 호랑이지만 인간으로 변신할 수도 있고, 그 반대도 가능해. 인간들은 나갈 수 없지만 우리는 원래부터 동물이라 통로로 다시 나갈 수도 있어. 네가 대학에 찾아온 걸 조금 놀랐어. 진짜로 올 줄은 몰랐는데. 너도 내가 보고 싶었구나?'


'저기 제인, 도대체 그 한자는 뭐야? 전에 집에서도 본 적 있었던 것 같은데.'


제가 급히 화제를 돌렸습니다.


'이건 우리 호랑이 가문을 나타내는 상징이야. 지금은... 지금은 나 혼자뿐이지만..'


제인이 얼버무렸습니다.


'그럼 우리랑 점장님,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원래 세계로 보내주면 안 될까? 우리는 그것 때문에 인천으로 가고 있는 거야.'


서경이 말했습니다.


'미안하지만 그건 불가능해! 모종의 이유로 경계가 인간에게는 막혀 있거든. 점장님 말이 맞아. 시황(市皇)이 그 주문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걸 빼돌려야 방법이라도 찾을 수 있어. 우리가 동아리라고 만든 건 사실 그걸 연구하는 모임이었고. 그래서 경찰이 계속 찾으러 다니는 거야.' 제인, 아니 다현이 말했습니다. '난 가두는 건 잘못되었다고 생각해. 어디에 살고 싶은지는 자유잖아? 게다가 세뇌까지 시키며 잡아두는 건 정말 못할 짓이야.'


'누군가 온다!'


우리 셋은 재빨리 여우와 호랑이로 돌아왔습니다. 객실의 문을 연 건 비행선 승무원들이었습니다.


'손님 여러분, 이제 도착입니다! 하늘나루에 다 왔습니다.'


KakaoTalk_20250118_143030476.jpg 하늘나루의 모습. 소형 플랫폼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뛰어내렸다.


조종사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모자와 코트를 푹 눌러쓰고 비행선 뒤쪽으로 나왔습니다. 마침 많은 인파가 몰려 있어서 저희는 그 틈에 섞여 승강장을 나왔습니다.


'저길 봐.'


다현이 한 구석을 가리켰습니다. 독수리가 눈을 부라리며 승강장을 둘러보고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망토까지 두르고 아래층을 모조리 살펴보고 있었죠. 그곳은 국제 터미널이었는데, 승무원이 말한 10층짜리 비행선도 가득 있었습니다. 제복을 잘 차려입은 승무원들이 호화로운 음식들을 나르고, 심지어 엔진실에서 일하는 직원들까지 정장을 입은 걸 보면 보통 비행선은 아닌 모양이었습니다. 우리는 독수리가 알아차리기 전에 하늘나루에서 내려 다른 배로 옮겼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무것도 못 먹었네. 너무 배고프지 않니? 우리 뭐 좀 먹자. 근처에 내가 자주 가는 식당이 있어.'

다현이 말했습니다. 마침 '나루식당'이 가까이 있어 들어갔습니다.


KakaoTalk_20250118_201920213.png 나루식당 전경. 고급스러웠다.


인테리어도 나쁘지 않았고 음식도 맛있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물 샌드위치'라는 것이 식사로 나왔습니다. 내용물은 일반 샌드위치랑 비슷했지만, 빵이 투명한 색깔이었습니다. 식감은 진짜 빵처럼 부드러웠습니다.


'나중에 원래 세계로 돌아갈 때 여기 음식을 다 포장해 가야겠다. 너무 맛있어.'


서경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정신없이 음식을 먹으며 배를 채웠습니다.


'너희가 아는 그 전설은 잘못된 거야. 용과 독수리 일족들이 바꾼 이야기니까.'


다현이 말했습니다.


'우리 호랑이 일족들은 그 일을 독수리와 용들이 꾸몄다고 믿고 있어. 사냥꾼들을 불러들여 무기를 빼앗고 그 힘으로 이 세계를 지배하려고 말이야. 물론 인간들이 위험한 건 맞지만 이제는 아니야. 오히려 그걸 이용해 황실을 운영하는 용과 독수리들이 위험하지.'


'그럼 왜 납치한 인간들을 돌려보내주지 않는 거야?'


'그들의 지식과 기술을 얻으려고. 그래서 이곳을 최대한 인간 세상과 비슷하게 꾸밀 수 있었던 거야. 늘 경계하면서 오히려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셈이지.'


제인이 무거운 얼굴로 말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요리사 한 명이 달려 나와 말을 걸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여러분들을 모시게 된 셰프, 세드릭이라고 합니다!'


'네...?'


'저희 식당의 추천 메뉴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매콤 짭짤한 마파두부가 있습니다! 중국 현지에서 직접 공수해 온 고추기름 소스에 산초, 그리고 1등급 돼지고기와 두부를 넣고 볶은 음식입니다. 저희가 직접 준비한 녹차와 함께 맛보시면 더욱 맛있습니다!'


그러더니 저희 앞에 순식간에 마파두부 요리가 펼쳐졌습니다. 한 입 먹어서 입에 넣으니 그야말로 살살 녹는 맛, 고슬고슬한 흰쌀밥과 매콤한 두부가 입 속에서 맛의 하모니를 이루더군요. 같이 준 녹차로 입가심까지 하니 그야말로 천상의 식사였습니다. 그런데 요리사가 계속 말했습니다.


'벌써 가시렵니까? 그건 이 셰프 세드릭이 용납할 수 없습니다. 저희 식당의 특별 요리, 족발입니다! 족발과 쌈의 환상적인 조화가 여러분들에게 황홀한 경험을 선사해 드립니다. 저희가 특별히 구매한 한방 약재와 푹 고운 돼지고기를 사용해 아주 쫀득하고 맛있는 족발을 즐길 수 있습니다!'


소란스러운 소리에 거리에 있던 동물들과 다른 손님들까지 모여들었습니다. 저는 떨리는 손을 잡고 족발 한 점을 맛보았습니다. 부끄러웠지만 주변 동물들의 응원 덕분에 힘을 내서 끝까지 삼켰습니다.


'헉. 이럴 수가. 이 세상 쫀득함이 아니야! 서경아, 이건 너도 무조건 먹어봐야 해!'


저는 정신없이 세드릭 셰프의 족발을 흡입했습니다. 다른 손님들도 한 점씩 맛을 보았고, 그걸 지켜보고 있던 사장님이 오늘은 서비스라며 테이블 당 족발 하나씩을 선물했습니다. 제인도 처음에는 거부하다가 이내 저와 함께 마파두부와 족발을 먹었습니다.


'이 마파두부 중국 쓰촨 성에서 온 거지? 진짜 맛있네.'


'그럼. 청나라 때 진마 파란 할머니가 만들었는데, 지금은 중국 10대 요리 중 하나에 드는 밥도둑이지. 와, 이 두부 부드러운 것 좀 봐! 거기에 고추기름까지 완벽하구나. 인천에 중국집이 많다더니 여기도 마파두부 맛집이네. 족발도 수준급이고. 여기요, 공깃밥 하나 추가요!'


서경이 한심하다는 투로 말했습니다.


'야, 너희들 여기 먹으러 왔냐? 얼른 바닷가로 가야지 여기서 족발, 마파두부 먹을 시간이 어디 있어?'


'그렇지?.. 미안,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아휴 참, 너도 못 말려.'


저희는 서둘러 음식 값을 지불하고 식당을 나왔습니다. 아, 이런 유혹에 넘어가면 안 되는데. 음식을 먹는 동안은 달고기도, 독수리 경찰도 다 잊어버리고 그만 먹는 것에 정신이 팔리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그들의 스파이일지도 모르지요?


'너희... 너희 수영할 줄 아니? 인천은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야. 풉... 진짜 족발 셰프님 때문에 미치겠네.'


제인이 웃음을 간신히 참으며 말했습니다.


'수영?'



저와 서경은 서로를 쳐다보았습니다. 입에 묻은 족발 소스가 아직 남아서 서로 쳐다보는 것도 부담스러웠지요. 얼른 닦았습니다.


'물론 그냥 수영을 말하는 건 아니야. 이 약을 먹어봐.'


제인이 먼저 약을 먹었습니다. 그랬더니 물로 이루어진 지느러미와 꼬리가 몸 뒤에 생겨났지요. 저희도 같은 약을 먹고 지느러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방금 밥을 먹고 잠수해도 될지는 몰랐지만 일단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하나, 둘, 셋!'


'뚜식아, 지만 맛난 거 묵었노?'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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