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내게 가져온 변화
나는 미술을 배워본 적도 없고 그림을 취미로 가져본 적도 없다.
미술 전시를 싫어하지 않지만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도슨트를 듣고 오 이런 그림이구나 이해하는 정도였다.
미술에 무슨파 무슨파가 있다는 것도 내가보기엔 그냥 그림인데 왜 저렇게 복잡하게 생각해서 학파를 나누고 자기들끼리 북치고장구치고 하나 생각했다.
그러던 내가 그림을 그린다. 매일매일 그린다.
그러면서부터 나는 그림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고
나 스스로를 더 잘 알게 되었다.
요즘의 나는 그림을 통해 나를 알아간다.
어떤 방식으로 그릴까 하다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표현들은 내가 은연중에 품고 있던 마음들이다.
모양새를 갖추고, 점점 완성되어 갈수록 그것들을 더욱 좋아하게 된다.
그리며 대상을 떠올릴수록 더욱 생각하고, 내 느낌에 가까운 색깔과 표현을 찾으려 할수록 그것에 대한 내 마음에 더 집중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우리 가족이 자주 찾던 바닷가를 그릴 땐
직장생활에 실패해 바닷가를 찾았을 때의 패배감,
마침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전해왔을 때의 씁쓸함,
일본 유학을 끝내고 가족과 여행을 왔을 때의 반가움,
저 멀리 새로 들어선 펜션과 대조되는 이제는 남의 집이 된 엄마가 태어나 자란 집,
밀려오고 쓸려가는 모래알갱이의 허무함과 같은 많은 기억이 교차했다.
타인에게 그림 한 장일지라도 나에게는 한 장의 앨범을 만드는 일과 같다.
그림을 취미로 갖게 되어 무척이나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