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아닌 그 무엇이 이 가르침을 줄 수 있을까
당시 큰 우울에 잠식당해 있을 때였다.
동경해 마지 않던 일을 하면 행복할 거라 생각했는데, 나는 점점 병들어갔다.
친한 지인은 그런 회사를 간 내 잘못이라 했고
부모님은 거기서 나오면 내가 지는 거라 했다.
노동청에 소송까지 진행했으나,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은 내 편이 되어주지 않았다.
어리숙한 사회초년생은의 패배감과 단절감은 나 스스로를 공격하게 했다.
자취생활을 접고 부모님집으로 들어가던 날, 집으로 들어가는 용달차에서 엉엉 울었다.
내 일을 하찮게 여기던 부모님 앞에 보란듯이 잘 살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노년의 용달 기사님이 나같은 사람도 먹고사는데 아가씨 힘 내요, 라고 했다.
한 취미 어플에서 5천원만 내면 전문가가 차량을 대절해 강원도까지 모셔가 트레킹을 인솔해준다는 사기 같은 상품이었다. 막상 가보니 아주 좋은 호스트였고.. 그렇게 나는 정말 십몇년 만에 산에 가게 되었다.
인솔자는 여러가지 몸 푸는 방법, 걷는 방법, 스틱 쓰는 방법 등을 알려주었다.
일기예보를 보고 산악 날씨를 예측하는 방법을 알려주었고 내 몸을 지키는 법, 자연을 지키는 법을 알려주었다. 가령 산길에서 나무뿌리를 만나면 밟지 말고 피해가달라고 했다.
우리는 나 스스로의 주인일뿐이지 이 땅과 나무의 주인은 아니기 때문에 나무나, 땅과 같은 자연을 자기 것처럼 여기면 안 된다고 했다.
호스트는 우리가 만나는 자연 모든것들의 개별성을 존중해달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으며 산을 걷다보니 산에 터전을 잡고 있는 다양한 식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자작나무밭은 하얗고 곧고 아름다웠다.
내 삶은 왜 저렇지 못할까.
생각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아름다운 것만 볼 수 있어서 갔다.
가서도 항상 내 삶과 비교했다.
내 삶은 왜 저렇지 못할까.
그렇게 한 번 두 번.. 여러차례 반복이 되다보니
어느순간 비교를 멈추고 아름다움의 에너지가 내게 전달되기 시작했다.
무기력하던 내게 욕구가 생기고 있었다.
새로운 코스가 가고 싶어졌으며 오늘 다녀온 곳보다 더 높은 곳도 가고 싶어졌고
남쪽과 북쪽과 바닷가에 접해있는 산의 생김새도 궁금해졌다.
높고 새로운 곳에서 맞이하는 오늘 처음 보는 또다른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어졌다.
그래서 1박 2일로 나홀로 원정산행을 가기 시작했다.
하루는 산에, 하루는 그 지역에 머물며 사람 살아가는 다양한 모습을 보았다.
지역마다, 산마다 사는 모습들도 생김새도 다 달랐다.
이렇게 각자 다른 것을, 나는 패배자도 별난 사람도 아닌 그냥 나일 뿐임을 알았다.
산 정상에 올라 내려다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손톱의 때 같은 자본주의의 산물들
그 손톱의 때보다도 작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하찮은 것들로 매일 고민하고 싸우는 미개한 인간들
그런 미개함을 얼싸안고 의미부여를 하며 자신의 소중함으로 살아가고자 발버둥치는 눈물겨운 우리 존재들.
우리는 작고 하찮지만 태어나 '나'라는 의식을 갖고 살아가기에 힘겹고 또 소중한 것이었다.
나라는 존재가 잘 뿌리딛을 수 있으면 그만인 것이다. 부모가 뭐라고 하든 회사가 뭐라고 하든 나를 뿌리딛게 할 수 없다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면 된다. 고통받을 것도 없다.
내게 산은 선생님이자 안식처이자 의사이다.
내가 작고 하찮음으로써 느끼는 위안을, 산이 아닌 그 무엇이 줄 수 있었단 말인가.
가르침은 산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