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잘 살아가야겠다고 마음 먹은 계기는 별 게 아니다
가령 나만 보고 살아온 부모님.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부모님이 짊어질 슬픔을 상상만 해도 감당할 수 없다. 노쇠한 몸에 마음에 품은 누군가마저 떠나갔을 때 더욱 폭삭 늙어갈 부모님의 모습이 생각만해도 슬프다.
가령 지금의 남편.
내가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누군가를 다시 만나 사랑에 빠질 테지만 요즘의 나는 신랑과 보내는 시간이 가장 즐겁다. 가장 많이 대화하고 웃고 장난을 친다.
부모님에게 즐겁게 잘 사는 딸이 있다는 안심을 심어주고 싶은 것이고,
남편에게 함께 있을 때 시너지가 나는 와이프이고 싶은 것이다.
사회초년생이 되어 첫 자취를 시작하며 그렇게 몇 년이 흘렀을 때 비로소 보이는 부모님의 나이든 모습과
자식이 떠난 뒤의 남겨지는 어딘가 공허할 부모의 삶을 보며 내가 잘 사는 모습을 보여야 부모 또한 행복하다는 것을 느낀 순간이 있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생길 때마다 부모님을 떠올렸다.
아마 그 마음의 시작은 나를 잘 인정해주지 않는 부모님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었을테지만, 지금에 와서는 가족이 행복하기 위해서 내가 잘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결혼을 하고부터는 누군가에게 힘을 줄 수 있는 인간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가끔 드러나는 나의 모질이 같은 모습을 고치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남편과 함께 보내는 일상이 즐겁기에 이 사람 또한 나와의 삶으로 인해 즐겁길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내 삶은 나 스스로 고쳐먹는 것이지만, 실행하게끔 끌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운임에 틀림없다.
그림 속의 쓰러지고 있는 나의 모습은, 아직 바닥에 주저 앉지 않았다.
나를 지탱해주는 사람들로 인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