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소 긴 계절이 끝났나보다
결혼을 하고부터 혼자만의 여행을 하지 않아서일까
무엇이든 다 잘 해내고 싶던 나였는데 어서 이 인고의 시간이 끝나기만을 바라서였을까.
패딩으로 뚱뚱해진 몸을 싣고 바시락바시락 소리내기 눈치보이는 지하철은 참으로도 빨리 도착했다.
사무실에서의 시간은 참 길었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결과들은 나를 어찌나 채찍질하는지
어제도 오늘도 세포는 늙어가는데 정신은 멈춰있는 나날이었다.
히터로 텁텁해진 공기가 여기서 추운곳으로 나가지도 못하게 한 채 코만 바시락바시락 말라갔다.
나는 분명 칼퇴를 했음에도 밖은 깜깜했던 이 계절
코로나로 스산한 명동 거리에 햇빛 하나 없는 퇴근길이 참 괴롭고 무기력했던 이 계절
예쁜 패딩은 제쳐두고 발목까지 오는 패딩속으로 나를 더욱 움츠러들게 했던 올해의 겨울이 참 길었다.
겨울이면 언제나 눈덮힌 산에 가곤했는데
여름엔 가을을, 가을엔 겨울을 기다리던 나였는데
올해의 나는 계절을 기다리지 않았다. 내일이 오지 않길 바랬다.
마음이 여유롭지 않을 땐 아름다운 풍경도 다 부질없는 것이다.
나는 조심스레 퇴사를 요청했다.
몇주간의 의견조율이 끝맺었을 무렵 집앞에 개나리가 피기 시작했다.
지난주 마지막 근무를 하러 가는 길, 집앞의 개나리가 만개했다.
비로소 긴 계절이 끝났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