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친할머니는 말이 별로 없으셨다. 가끔 할머니 손을 잡고 어딘가 다녀올 때면 무뚝뚝한 할머니가 어린 내게도 참 멋없어 보였다. 그래도 내 손을 꼭 잡고 계신 걸 보면 손주를 사랑하는 마음은 있으신 것 같았다. 어느 날 동네에 서커스가 들어왔다. 할머니와 작은누나, 나 이렇게 셋은 구경을 하러 갔다. 천막 안 허름한 무대에서 배우들은 열심히 연기했고 멍석이 깔린 관객석에서는 때론 조용했다가 때론 박장대소했다가 때론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마지막엔 약을 팔았다. 지금도 그 기억이 참 많이 남는다. 할머니와 정은 많이 없었지만, 남편 없이 자녀들을 힘들게 키웠을 할머님의 마음이 지금에서야 조금 이해가 간다. 억척스러워야 했고 강해야 했던 그 시절의 어머니. 그리고 나의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