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내가 많이 아프다

마음도 몸도 아팠을 아내에게

by 원석

아내가 암이란다.

암이란 말은 우리와 상관없는 먼 얘기, 해서는 안 되는 얘기, 듣고 싶지도 않고 입에 담고 싶지도 않은 얘기. 그런 병이 아내에게 들어와 버렸다.


슬픈 마음인지 두려운 마음인지 분간할 새 없이 아내는 급히 지역 병원에서 1차 수술을 해야 했고 결국 수술을 완전히 끝마치지 못하고 말았다. 조직검사 결과 자궁내막암이 나왔다. 생소한 병명, 들어본 듯하지만 듣기 싫었던 병명. 우리 부부에게 왜 이런 일이 닥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제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 살고 있는 파주와 가깝기도 하고 암 치료로 유명한 일산 국립암센터. 겨우 잡은 진료예약을 통해 다음 수술과 검사, 치료가 이어질 줄 알았는데 입원할 자리가 없단다. 의사는 일요일에 입원하라고 했는데 그날 아침 입원 자리가 없다는 연락이 왔다.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하루빨리 검사하고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진료받은 지 일주일이 다된 오늘 조바심이 난다. 입원을 기다리는 동안 병이 퍼지지는 않을까. 이전보다 고통을 호소하는 아내를 보며 마음이 무겁다.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암센터. 수많은 암 환자들이 있는 그곳엔 특히 산부인과가 바쁘단다. 산부인과 암환자들이 많다는 얘기다. 그저 여성으로, 아내로, 엄마로, 평범한 사회인으로 살았을 그들인데 왜 이런 고통을 당하는지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하늘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덕분에 식사 준비와 설거지는 내 몫이 됐다. 아주 가끔 식사를 준비하거나 설거지를 해봤지만 이렇게 약 2주간 해보지는 않았다. 평생을 해 온 어머니들 앞에서 명함 쪼가리도 못 내미는 며칠 안 되는 횟수임에도 이 일이 이렇게 바쁘고 힘들 줄은 몰랐다. 그저 차려주는 밥상, 깨끗하게 개어 놓은 빨래를 누리기만 했지 집안일이 이리도 힘들 줄은 몰랐다. 일이 끝이 없다. 그래 봤자 점심 준비 - 설거지 - 저녁 준비 - 설거지 - 가끔 청소기 이 정도인데. 뭐 했다고 이리 힘들어할까. 아무리 대단한 일을 하는 남자들이라도 삶의 원초적인 문제인 집안일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것이다. 아내는 매일 이런 일을 해왔다. 여성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그 중심에 내가 있었고.


입원은 아내만 하는 게 아니었다. 알아보니 대기자들이 있다. 그분들이 입원을 해서 차례가 되어야 아내도 입원할 수가 있다. 다급한 마음은 다 같을 것이다. 모두 가족이 있을 것이고 원치 않던 병을 발견했기에 애타는 마음은 다 같을 것이다. 누구 하나 급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터. 기존에 입원해 있던 분들이 잘 치료되어 퇴원하고 대기자들이 하루빨리 입원해서 치료하기를 바랄 뿐이다.


삶은 단 하루도 예상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암을 받아들이기엔 역시나 버겁다. 몸을 개복해야 하는 수술과 고단하고 힘들 치료를 기다리는 아내가 가엾다. 경제적인 여유를 주지 못한 나이기에 아내에게 한 없이 더 미안할 뿐이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오랜만에 연락해야 하는 일이나 연락이 오는 일들은 아주 좋거나 아주 나쁘거나. 좋으면 좋겠지만 그 나쁜 소식을 듣기가 참 힘들다. 이번엔 듣는 것이 아니라 전해야 한다. 기도해주는 많은 사람이 있다. 간절히 기도해주고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 기도한다고 하면서 그저 지나치는 사람도 있다. 마음이 복잡하다. 소식을 알리는 것이 가끔은 상처가 되어 돌아올 때가 있기에.


오늘 하루도 저문다. 내내 찌뿌둥했던 하늘이 내일은 개일까. 초여름 따뜻한 바람맞으며 바닷가를 걸을 날을 꿈 꾸어 본다. 가족 모두 이번 여름엔 꼭 지나치지 말고 여행을 가야겠다. 돌아보면 바쁘지도 않았던 날들이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우리 시간을 가지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아내의 병이 완치되면 좋겠다.

그러면 좋겠다.

그거면 된다.


IMG_3812.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하고 싶지않은 일을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