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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캔줌마 Aug 18. 2023

1. 아줌마. 캐나다 가서 치기공사 되기로 결심하다.

내가 캐나다 가서 치기공사가 되기로 결심했던 나이는 딱 마흔이었다.

나는 대학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했고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근무하는 등 마흔이 되도록 애니메이션 분야에 종사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나를 이상하다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단편 작품으로 해외에서 수상, 영화제 초청 등을 받는 등의 성과로 애니메이션 예술가로서 인정받아 2016년에 자영이민 카테고리를 통해 캐나다 영주권을 받았다. 하지만, 한국에서 했던 일이 그림을 그리는 일은 아니었다. 나는 대학에서 애니메이션 전공과목을 가르치면서 연구 프로젝트나 책 쓰는 일들을 했고, 제작 현장에서는 애니메이션 제작 관리와 이와 관련된 통역이나 번역을 했다. 한국에서는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영어를 잘하는 것이 더 돈이 되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해 왔다면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캐나다 취업에 도전하였을 테지만 (내가 재직했던 회사에서 실제로 캐나다나 영국으로 취업해 가신 아티스트 분들이 여럿 있었다.) 관리업무는 사실 사무직이기 때문에 말이나 서류작성, 이메일 등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이 99%인 일이었다. 한국에서야 내가 '영어를 잘하는 사람' 축에 속했지만 영어가 모국어인 나라에서 나는 '언어 장애인'에 불과하다는 현실을 호주 유학을 통해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영주권을 받고도 차일피일 캐나다 랜딩을 미루게 되었다. 영주권이 먹여 살려주지는 않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내 분야의 일을 하려고 부딪쳐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인터넷을 뒤져 캐나다에서 애니메이션 분야 사람들의 취업을 위한 웹사이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여러 회사들에 정성스럽게 정리된 이력서를 보냈다. 하지만 내가 캐나다가 아닌 한국에 있었기 때문인지, 캐나다 경력이 없는 이민자였기 때문인지(이유는 잘 알 수 없지만) 채용하겠다고 연락해 오는 곳은 거의 없었다. 정말 내 분야에서 취업을 할 수 있을지 막막하고 불안했다. 주변 사례를 들어보니 기술이 있는 경우에는 포트폴리오나 테스트 등을 통해 실력만 인정받으면 캐나다 경력이 없어도 그렇게 나쁘지 않은 조건으로 취업하시는 것 같았다. IT 프로그래머나 3D 애니메이션 아티스트, 캐릭터 디자이너 이런 경우 말이다. 하지만 그냥 관리업무를 했던 사무직이었던 나는 사정이 다른 것 같았다.


게다가 희망하는 대로 취업을 한다고 해도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들은 밴쿠버, 토론토 같은 대도시에만 분포하고 있어서 내가 받을 월급 정도로는 대도시 거주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왔다. 그때 당시 토론토의 방 하나짜리 아파트의 월세가 2000불이었다. (지금은 2600불 정도라고 한다) 내가 받을 월급으로 한화 200만 원 정도를 월세로 내고 나면 나와 딸아이는 공기만 먹고살아야 할 형편이었다. 주거비가 저렴한 소도시로 가면 내 분야의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대도시에서 애니메이션 일을 한다고 생활이 될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던 것이다.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남편이 보조해 주는 정도로는 대도시 생활비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 뻔했고, 무엇보다 저축을 해도 모자랄 판에 그렇게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식의 생활은 내 상식으론 허락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월세가 저렴한 중소도시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내 분야의 일자리가 전무한 그런 곳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해야 하나 막막했다. 나는 허리가 안 좋아 오래 서 있어야 하는 식당 웨이트리스 같은 것은 못할 텐데... 슈퍼마켓 캐셔는 나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호주 유학시절 새벽 청소 아르바이트에 도전했다가 3일째에 허리에 무리가 와서 갑자기 그만두고 미안한 마음에 그간 일한 보수를 달라는 말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 생각나기도 했다.


취업이 막막하기는 했지만 PR(영주권) 카드 유효기간은 점점 줄어들어가고..  아이는 점점 커가고... 영주권을 준비하는데 나름 큰돈을 들였으니 캐나다 땅을 밟아보기는 해야 할 텐데 영주권이 먹고사는 것을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차였다.

나의 고민을 들은 한 지인이 '자기가 아는 사람이 치기공을 한국서 몇 개월 "야매"로 배워 캐나다로 건너갔는데, 위니펙이라는 곳에서 취업을 해서 영주권 받아 2년 만에 가족들을 모두 데려갔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과거에 지방의 대학들이 사회교육원 프로그램으로 치기공에 관한 수업을 했었다고 한다. 물론 이 분이 그런 사회교육원에서 교육을 받은 것인지, 아니면 기공사들을 통해 비공식적인 교육을 받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에? 그게 말이 돼? 대학에서 전공해야 되는 거 아냐?"


나는 그냥 그 사람이 뭘 잘못 들었겠지.. 하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나의 기억에서 이 이야기가 잊혀 갈 때 즈음 남편이 갑자기 어떤 블로그 링크를 카톡으로 보내왔다. 함께 지인의 이야기를 들은 남편이 2박 3일 동안 인터넷을 뒤져 찾아낸 것이었다.

무엇을?

이민 예정자들을 대상으로 3개월 과정으로 치기공 기술을 가르쳐 준다는 학원이었다!

내가 학원에서 작업해 3D 캐드로 디자인 한 앞니!(노란색 이가 내가 만든 이다)


블로그와 카페의 글들을 샅샅이 읽어보기 시작했다.

일단! 캐나다는 치기공전공자 아니라도 기술만 배우면 치기공사 될 수 있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전공자들이 국가고시를 패스해야 자격증을 받고 기공소에 근무할 수 있지만, 캐나다에서는 치기공을 전공하고 자격증을 가진 사람(RDT)의 감독 하에 일반인들이 기술을 배워 일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교육생 한두 명의 간단한 취업 후기가 학원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었다.


남편과 함께 상담을 하러 갔다.

캐나다에서 치기공은 다른 모든 기술직군들처럼 한국보다 처우나 근무 환경이 좋다고 했다. 학원 원장님은 한국에서 대학을 나와 지방의 한 기공소에서 3년쯤 일하다가 캐나다에 넘어가 기공소에 근무하며 영주권을 딴 후 매니저까지 했었다고 했다.

수업료는 그때 당시 3개월에 500만 원 정도였다.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지만 너무나 뜬금없는 생소한 분야라서 '혹시 사기이면 어쩌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내 '안내받은 모든 정보들이 사실이라면 당연히 좋고, 만약 사기여서 500만 원이라는 돈을 날린다 해도 그 정도 액수는 감수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마디로 사기일 가능성을 안고도 도전해 보기로 한 것이었다. 5000만 원이라면 망설였겠지만 500만 원이기에 그 돈을 잃는다고 인생에서 큰 치명타는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게다가 예술분야 전공자였던 나는 만드는 것에는 자신이 있었고, 이곳에서 가르친다는 캐드 소프트웨어에 대한 두려움도 별로 없었다. 본래의 전공 때문에 그래픽 관련된 소프트웨어를 계속 사용해 왔었고 학창 시절 3D MAX 같은 프로그램도 사용해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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