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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캔줌마 Aug 31. 2023

캐나다 미대입시에서는 창의력만 볼까?

이곳 캐나다 런던에서도 미술 지도를 하다 보면 간혹 이렇게 이야기하는 학부모님들이 있다.


"우리 애는 미술에 소질이 있는데 일부러 미술학원에 안 보냈어요."

"자기 스타일을 지키려고 한 번도 미술학원에 보낸 적이 없어요."

"창의력을 위한 수업만을 고집해 왔어요."


이런 말을 들으면 늘 입이 근질근질 거리지만 한 두 마디로 설명할 수 없기에 늘 그러시냐 하고 지나치곤 했다. 또 어떤 분들은 마치 미국이나 캐나다 등의 미술대학은 창의력만 있으면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것처럼, 한국에서처럼 미대입시를 위해 시간을 투자할 필요가 없다는 것처럼 이야기하시는 분들도 본다.

정말 그럴까?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미대입시는 한국처럼 정해진 시간 동안 그림을 그려내는 시험이 아니라 학과별로 요구하는 가이드라인에 따라 학생이 미리 작품을 준비하여 제출하는 포트폴리오 제출 방식이다. 그렇다면 미술대학들은 이 포트폴리오에서 무엇을 요구할까?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로 '창의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들만을 요구할까?

답은 정확히 반대이다. 인체드로잉, 원근법, 소묘(데생 - 영어권에서는 쉐이딩 shading이라고 부른다) 등의 기본기를 볼 수 있는 작업들을 최우선적으로 요구한다. 예를 들면, 일러스트레이션 학과의 경우 인체 크로키, 인체 소묘, 정물소묘, 그리고 실내, 실외(건물), 자연물 풍경 등을 원근법과 명암의 원리를 적용하여 그린 그림 등이다. 이것들이 기본이고 여기에 추가적으로 학생의 개성을 엿볼 수 있는 개인작품을 몇 점 더 내라는 식이다.

이렇게 말하면 '아이들의 미술교육이라는 것이 대학 입시를 위해서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 '진정한 예술을 하기 위해서는 획일화된 입시교육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되물으실 수도 있다. 맞는 말씀이다. 미술교육은 다양한 목적과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입시 위주로 미술 교육을 하는 것이 옳다, 그르다는 토론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의 사교육 시장에서는 "미술교육"에서 기술적인 기본기를 가르치면 안 되는 것처럼, 그러면 마치 뒤떨어진 교육을 하는 것처럼 취급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마치 '창의력'만이 미술교육에서 추구해야 할 가장 가치 있는 것처럼 포장하기 시작했다. 또 어떤 프로그램에서는 유명 화가들의 페인팅 스타일을 가르친다고 하기도 하고, 어떤 프로그램에서는 미술사를 기반으로 하여 어린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친다고도 한다.

그렇다면 미국과 캐나다의 미대 교수들은 한국의 미술 사교육 업체들보다 수준이 낮아서 아직도 인체드로잉, 원근법, 소묘 등의 기본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일까?


이쯤 되면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다른 업체와 차별화되기 위한 몸부림으로써 포장된 것들이고, 전공 지식이 없는 '일반인' 부모들은 이런 업체들의 마케팅 덕분에 기본기 교육을 경시하는 일종의 편견을 갖게 된 것이다. 물론 각 업체들의 프로그램에 분명 장점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마케팅 전략 때문에 미술 교육이 산으로 가는 것은 곤란하다. '기본기 교육' = '획일화된 교육'이라는 이들의 마케팅 덕분에 창의력지키기 위해서는 기본기를 교육받으면 안 된다는 이상한 믿음을 가지게 된 부모들이 생겨난 것 같다. '원리'라는 시대나 문화가 변한다고 해도 변할 수 없다. 피아니스트에게 손가락 힘을 기르는 훈련이 19세기에는 중요했는데 지금은 중요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러한 기본기들이 '획일화된' 것으로 치부되어야 할까?

 

피카소 같은 화가가 평생 홀로 그림을 그렸기에 그러한 파격이 가능했다고 한다면 백번 양보하겠다. 그러나 그도 다른 미술학도들처럼 바르셀로나 미술학교를 다녔다. 인상파의 대가 세잔도 지역의 미술학교에서 다니다가 대학에 진학했다. 이들의 창의력은 제도권 교육을 벗어났기 때문이거나 획일화된 기본기 교육을 피해 갔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실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피카소의 경우 10대에 이미 기본기가 작가 수준을 뛰어넘었기에 그다음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기본기조차 갖추기 어려웠던 다른 예술가 지망생들과는 달랐던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며 초등학생들에게도 이러한 기본기- 인체드로잉, 원근법, 소묘-를 가르치고 있다. 물론 창의력을 위한 수업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주제, 다양한 재료와 기법 등을 체험하게 하고, 자기 고유의 아이디어는 언제나 환영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작업이 분명한 아이에게는 반드시 그것을 하게 한다. 그 아이만을 위해 재료를 준비해 줄 때도 있다. 평면 작업에만 치우치지 않고 조각이나 소조 등 입체물도 다루게 하며, 초등학생이라도 역량이 되는 아이들에게는 컴퓨터 그래픽까지 가르친다.

입시기초반에서도 기본기는 핵심이다. 내가 가르치는 '입시기초반'에서는 미대입시를 본격적으로 준비하는 포트폴리오 작품을 제작하는 수업이 아니라, 포트폴리오 작품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기본기 익히는 수업이다. 이곳 런던의 예술고등학교(Beal Art)에 진학하고 싶은 아이들은 이와 더불어 예고 입시를 위한 포트폴리오 작업을 하기도 한다. 작품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아이디어가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구현되었는지도 심사위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중요한 포인트이다. 대학입시 포트폴리오 채점 결과를 보면 창의력이 부족한 기본기가 본전이라면 기본기가 부족한 창의력은 마이너스인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기본기가 바탕이 된 훌륭한 창의력이다.


내가 기본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자신이 그리고 싶은 것을 그려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생각한 것을 그려낼 수 있는 순간이야말로 계속해서 그림을 그리고 싶은 가장 강력한 동기가 생기는 순간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그릴 수 있다면 그리는 것이 재미있다. 재미가 있으면 계속하고 싶고, 계속하면 잘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이런 시도, 저런 도전을 하게 되는 것이고 그것을 우리는 창의력이라고 부른다.

창의력이라는 것이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형태를 그리는 것이라고 오해하면 안 된다. 기본기는 창의적 표현을 가능하게 하는 바탕이라고 보면 된다. 창의적인 표현은 기본기가 튼튼할 때 인정을 받는다. 기본이 되어있지 않은 창의력은 부족한 기본기를 감추기 위한 꼼수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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